이미지 확대보기연준은 112년의 역사 동안 모두 16명의 의장을 배출했다. 지금 연준 의장을 맡고 있는 제롬 파월이 제16대 의장이다. 연방은행법상 연준 의장의 임기는 4년이다. 대통령이 상원의 인준을 거쳐 임명한다. 한 번 취임하면 대통령도 도중에 해임하기 어렵다. 연방정부의 장관들과 달리 독립기구로 임기가 보장된다. 정권이 바뀌어도 임기 내에는 교체할 수 없다. 그만큼 강력한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연임 제한도 없다. 임기가 만료됐을 때 대통령이 재임명하면 계속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창립 이후 의장으로 가장 오래 재임한 인물은 윌리엄 마틴이다. 1906년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출생한 그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제9대 연준 의장에 취임했다. 마틴을 의장으로 발탁한 이는 같은 미주리주 출신인 당시 민주당의 트루먼 대통령이었다. 마틴은 예일대를 졸업하고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증권사에 근무한 금융인 출신이다. 마틴 의장 시절 재무부와 연준 사이에 독립성 유지 협정을 체결한 것은 지금도 중앙은행 제도의 근간을 세운 큰 업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1951년 4월 2일부터 1970년 2월 1일까지 무려 18년 10개월 동안 연준 의장으로 재직했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케네디, 존슨, 닉슨까지 모두 5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도 계속 자리를 유지한 그야말로 처세의 달인이었다. 한국전쟁 때 트루먼 대통령이 연준에 금리인하를 압박했으나 마틴은 이를 거부했다. 베트남전쟁 때는 존슨 대통령이 금리인하를 요구하며 자기 목장으로 불러서 압력을 행사했음에도 끝까지 거부한 걸로 유명하다. 한마디로 연준 독립성의 화신이다.
마틴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 재임한 연준 의장은 제13대의 앨런 그린스펀이다. 1987년 8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재직했다. 18년 6개월로 최장수인 마틴보다 4개월 적다. 재임 기간 레이건, 부시 시니어., 클린턴, 부시 주니어. 등 모두 4명의 대통령을 거쳤다. 연준 의장 시절 그린스펀의 별명은 '금융의 마에스트로(Maestro)'였다. 마에스트로는 이탈리아어에 나왔다. 대가·거장·명인을 뜻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단원들을 이끌 듯 그가 미국 경제를 성공적으로 지휘했다고 해서 나온 별명이다. 미국이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저물가 속에 장기 호황을 이루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1987년 블랙먼데이 주식시장 붕괴와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과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 그리고 2001년 닷컴버블 붕괴 등 여러 차례 위기 상황을 재빠르게 수습해내 위기관리의 달인이라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 저금리 기조를 지속하는 바람에 주택시장 과열을 부추겼고, 급기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린스펀의 너무 자신감 넘치는 방만한 통화팽창 정책이 미국 경제를 30년 이상 후퇴시킨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불렀다고 평가하는 경제학자들이 적지 않다. 뉴욕 증시에는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라는 말이 있다. 그린스펀이 의장 시절이던 2004년 6월부터 2006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경기 과열과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연방기금금리, 즉 기준금리를 1.00%에서 5.25%까지 여러 차례 인상한 적이 있다. 통상적으로 단기금리가 오르면 시장의 장기금리도 동반 상승한다. 그런데 당시에는 오히려 장기국채 금리가 크게 오르지 않거나 심지어 하락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린스펀 의장은 2005년 의회 증언에서 이러한 현상을 "수수께끼(conundrum)"라고 표현하며 당혹스러움을 나타냈다. 여기서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한 주된 원인으로는 글로벌 저축 과잉이 지목됐다. 중국 등 아시아 국가 중앙은행들이 막대한 외환보유액으로 안전자산인 미국 장기국채를 대규모로 매입하면서 채권 가격이 상승(금리 하락)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연준이 통화관리를 할 때 단기금리에만 너무 치중한 탓에 장기금리가 따로 놀게 됐다는 지적도 있다. 그 당시 형성된 낮은 장기금리는 결국 주택시장 과열로 이어졌다. 그린스펀이 수수께끼를 제대로 풀지 못했기 때문에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졌다는 것이다.
이미지 확대보기최근 들어 뉴욕증시에서는 '그린스펀의 역수수께끼'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제롬 파월의 연준이 기준금리를 계속 내리는데도 장기국채 금리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장기금리가 오르고 있다. 싼 이자로 장기국채를 팔아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답답한 일이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는 기준금리를 인상할 때 벌어졌다. 지금은 기준금리를 내리는데 장기국채 금리가 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때와는 반대 양상이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가 역수수께끼로 바뀐 이유다. 수수께끼이든 역수수께끼이든 기준금리와 장기 실세금리가 서로 따로 논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연준의 금리정책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연준이 금리를 인하해도 달러 강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것도 그린스펀의 역수수께끼 탓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그 첫째가 인플레이션이다. 물가가 아직 잡히지 않은 상태인 만큼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리면 금융시장에서는 인플레의 공포가 증폭된다. 장기국채 금리는 인플레에 가장 민감하다. 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 국채 금리는 인플레 헤지 차원에서 그만큼 더 오를 수밖에 없다. 연준의 기준금리가 장기금리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그린스펀의 역수수께끼가 생겨나는 둘째 요인은 국채 발행 대기 물량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국채 발행을 늘리면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라 국채값은 떨어진다. 국채값 하락은 국채 금리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통화정책보다 재정 확장에 따른 국고채 수급 이슈가 시장금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재정과 통화 정책을 정상화하면 수수께끼는 쉽게 풀린다. 특히 금리를 인하할 때 물가와 고용 두 측면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처럼 인플레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용만 내세우면서 닥치고 금리인하를 강행하면 수수께끼는 더욱 꼬여갈 수밖에 없다. 그린스펀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몰아가는 필립스 곡선에 있다. 금리를 인하하거나 인상할 때는 물가와 고용 지표의 동시 균형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