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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미국 정부, '불법 고용주'와 전쟁 선포…현대차 공장 급습해 하청업체까지 수사

'솜방망이 처벌' 옛말…대기업·하청업체 동시 겨냥, 고용 책임 전방위 압박
E-Verify 허점 속 '고용주 책임' 강화…투자유치 정책과 정면충돌 불가피
지난 6월 6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연방 건물 앞에서 경찰이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섬광탄을 사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고용주 단속 강화 방침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6월 6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연방 건물 앞에서 경찰이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섬광탄을 사용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고용주 단속 강화 방침에 따라 미국 전역에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 9월 4일 수백 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체포된 현대차 조지아 배터리 공장 급습 사태는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 정책 기조가 노동자 개인을 넘어 '불법 고용주'를 직접 겨냥하는 중대 전환점을 맞았다는 신호탄이라고 USA투데이가 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과거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1986년 이민개혁통제법(IRCA)의 집행 관행에서 벗어나 복잡한 하청 구조의 최상위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미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 '솜방망이' 처벌 관행 깨고 고용주 정조준


IRCA 법안에 따라 미국 내 모든 고용주는 직원의 취업자격을 확인하고(Form I-9 작성) 위반하면 3000달러(약 416만 원) 벌금과 최대 6개월 징역형에 처하지만 그동안 단속은 주로 노동자 개인에게 집중됐다. '반복적·고의적 고용 관행(pattern or practice)'이라는 까다로운 입증 책임 탓에 고용주들은 "몰랐다"고 주장하며 처벌을 피하는 일이 잦았고, 지난 10년간 불법 고용으로 연방 검찰에 기소된 고용주는 200건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는 다르다. 올해 들어 캘리포니아 세차장·마리화나 농장, 루이지애나 경마장, 플로리다 건설 현장, 네브래스카 육가공 공장 등에서 연쇄 단속을 벌였고, 최근에는 콜로라도 청소 용역업체 두 곳에 각각 620만 달러(약 86억 원)와 100만 달러(약 13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톰 호먼 국경 최고책임자는 "그 누구도 선한 마음으로 불법 체류자를 고용하지 않는다"면서 "더 낮은 임금으로 미국 노동 시장의 경쟁을 왜곡하는 고용주들을 겨냥해 사업장 단속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조지아 공장 급습을 지휘한 국토안보수사국(HSI)의 스티븐 슈랭크 특수요원 역시 "이번 작전은 시스템을 악용하는 자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분명한 메시지"라고 강조하며 수사의 초점이 고용주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 구멍 뚫린 E-Verify…유명무실 검증 시스템


고용주들이 불법 고용의 방패막이로 삼는 연방 'E-Verify' 시스템의 허점도 이번 사태로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E-Verify는 직원의 합법적 취업자격을 온라인으로 확인하는 시스템이지만, 사용 의무화 여부가 주마다 다르고 위조 서류에 취약하다는 치명적 약점을 안고 있다. 미국 전체 제조업 종사자의 약 6%, 조지아주의 경우 7%가 미등록 노동자로 추산될 만큼 현장에서는 불법 고용이 만연하다.

실제로 최근 메인주의 한 경찰서가 E-Verify를 통과한 불법 체류자를 경찰관으로 채용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국토안보부의 트리샤 맥러플린 차관보는 "E-Verify 사용이 합법적 신분을 확인하기 위한 기본적인 신원 조사를 소홀히 한 책임을 면제해주지 않는다"고 밝혀 시스템의 한계를 사실상 인정했다. 기업들은 정부 시스템을 믿었다는 주장만으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특히 연방 수사당국은 이번 사건의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복잡하게 얽힌 하청 구조를 정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수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발부한 수색영장에는 히스패닉계 이름 4명만 특정했으나 실제로 체포한 475명 중 대다수인 약 300명은 한국인 기술 인력이었다. 원청인 현대차나 LG에너지솔루션이 직접 고용한 인력 외에 다수의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체포된 만큼, 수사의 칼날은 이들을 현장에 투입한 하청업체들로 향하고 있다.
슈랭크 특수요원은 "현장에는 하청업체와 그 하청업체의 하청업체로 이뤄진 네트워크가 존재했다"면서 "정확히 누가 어떤 회사에서 일했는지에 대한 조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사당국은 단순히 현장 노동자를 추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불법 고용을 가능하게 한 다단계 하청 구조 전체를 파고들어 원청의 관리 책임까지 묻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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