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년 만의 초유 사태…금융시장도 '충격'

26일(현지시각) 쿡 이사는 변호인을 통해 공개한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유를 들어 나를 해임하려 했으며, 그는 그런 권한이 없다”면서 “나는 사임하지 않을 것이며, 2022년부터 이어온 것처럼 미국 경제를 위해 책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전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공개한 서한을 통해 쿡 이사를 해임했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이 연준 이사를 해임한 것은 연준이 설립된 지 111년 만에 처음이다.
쿡 이사는 2022년 조 바이든 전 대통령에 의해 연준 이사회에 임명됐으며, 연준 역사상 첫 흑인 여성 이사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는 인물이다.
쿡 이사는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한번 소셜미디어를 통해 ‘트윗 해임’을 시도했으며, 그의 이런 폭력적 충동은 잘못됐다"면서 "그의 요구에는 어떠한 절차적 정당성과 근거 및 법적 권한도 없으며, 불법적 시도를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리 인하 속도가 더디다는 이유로 연준을 비판해 온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전격적인 조치는 연준과의 갈등의 골이 한층 깊어졌음을 보여준 단적인 예다.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 관계자들은 최근 쿡 이사가 주택담보대출 사기 의혹에 연루됐다고 주장했고, 미 법무부는 연방주택금융청(FHFA) 국장 빌 풀테가 제기한 이 의혹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앞서 풀테 국장은 팸 본디 법무부 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쿡 이사가 2021년 주거 목적으로 미시간주와 조지아주 부동산에 대해 각각 20만 3000달러(약 2억8300만원)와 54만 달러(7억5500만원)의 대출을 받았으나 이듬해 임대로 내놨다며 사기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의 주거용 주택담보대출은 투자·임대용보다 금리가 낮고 담보인정비율(LTV)이 높게 책정되는 등 조건이 좋다.
다만 쿡 이사에 대해 현재까지는 어떠한 혐의도 공식적으로 제기되지는 않았다.
법적 다툼으로 가나...
CNN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쿡 이사를 해임할 법적 권한이 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현행 미국 법률은 대통령이 연준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를 해임할 수 있는 사유를 “정당한 이유(for cause)”로만 한정하고 있으나, 무엇이 정당한 이유에 해당하는지는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전직 연방검사 션 우(Shan Wu)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법무부가 수사를 개시한 것도 아니고, 쿡 이사에게 혐의를 제기한 것도 아니다”면서 “현시점에서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는 의문스러우며, 이 문제는 반드시 법적 다툼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쿡 이사에게 보낸 서한에서 “당신을 해임할 충분한 사유가 존재한다고 판단했다”면서 “재정적 사안에서의 기만적이고 잠재적으로 범죄적인 행위로 인해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성실성을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CNN은 이번 해임 조치가 법원에서 다퉈질 가능성이 높으며, 최종적으로는 연방대법원까지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한 당장 쿡 이사가 즉각 연준 이사회에서 물러나야 하는지,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후임자를 지명할 권한이 있는지도 아직 불분명하다고 매체는 꼬집었다.
연준 독립성 시험대에
또한 연준의 차기 통화정책 회의가 오는 9월16~17일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연준의 독립성이 위협받고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도 크게 훼손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장 미국 국채 금리가 오르고 달러화가 하락하는 등 자산 시장은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노무라 호주의 앤드루 타이스허스트 수석 금리 전략가는 블룸버그에 트럼프의 행동은 미국 행정부가 "여전히 비전통적이고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면서 시장은 연준 이사회가 "비둘기파로 가득 찰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앨런 블라인더 전 연준 부의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연준은 매우 타당한 이유로 정치로부터 독립되도록 설계됐다”면서“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무너뜨리고 연준을 행정부의 도구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통화정책에는 매우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상원 은행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쿡 이사 해임 시도에 대해 “연준법을 명백히 위반한 권위주의적 권력 장악이며, 법원에서 반드시 뒤집혀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