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럽연합(EU)이 합의한 무역 세부안은 단순히 고율 관세 철회에 그치지 않고 산업별 이해관계를 촘촘히 얽어낸 거래로 평가된다.
21일(현지시각)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표면적으로는 EU산 제약·반도체 관세를 최대 15%로 제한한 ‘타협안’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에너지·AI 칩·군수 분야에서 EU의 전략적 양보를 이끌어낸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 제약·반도체, 미국 내 소비자 부담 줄이고 EU 기업은 손해
트럼프 대통령이 위협했던 100~250% 고율 관세는 철회됐지만 EU 제약사와 반도체 업계는 최대 15%라는 상한선 아래에서 가격 경쟁력 하락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복제약과 원재료,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소비자 부담 완화와 공급망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린 셈이다.
◇ 에너지·AI 칩, 사실상 ‘독점 수출 계약’
EU는 오는 2028년까지 7500억 달러(약 1058조 원) 규모의 미국산 LNG·원유·원자력 제품을 구매하기로 했고, 최소 400억 달러(약 56조3000억 원) 규모의 AI 반도체 도입에도 합의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러시아 에너지 의존 탈피를 명분 삼아 사실상 미국산 에너지·AI 칩을 장기 독점 계약 형태로 떠안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 자동차, 조건부 완화로 불확실성 남겨
이에 따라 독일·프랑스 완성차 업체들은 당장 숨통이 트이지 못한 채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한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는 이 조건부 조항을 새로운 협상 카드로 활용할 전망이다.
◇ 투자 약속, ‘확정’ 아닌 ‘기대치’
EU가 발표한 6000억 달러(약 844조2000억 원) 규모의 미국 내 전략 산업 투자 계획은 합의문에서조차 ‘기대치’로 표현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CNBC 인터뷰에서 “내가 원하는 곳에 투자하게 할 수 있다”며 정치적 성과를 강조했지만 실질적 이행 가능성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유럽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굴복적 합의’라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