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정부가 미국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인공지능(AI) 칩 ‘H20’ 구매를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는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의 발언이 “모욕적”이라는 불만을 불러온 데 따른 것이다.
◇ “최고도, 차선도 아닌 세 번째 제품도 안 판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달 15일 CNBC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국에 최고 제품도, 차선도, 심지어 세 번째로 좋은 것도 팔지 않는다”며 “중국 개발자들이 미국 기술 스택에 중독되도록 충분히만 판다는 것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 도입한 수출 통제를 완화해 H20 판매를 허용한 직후 나온 것이었다.
중국 인터넷정보판공실(CAC),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 공업정보화부(MIIT)는 러트닉 장관의 이 발언을 문제 삼아 자국 IT 기업들에 H20 신규 주문을 중단하라는 비공식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CAC는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 주요 기업에 보안 문제를 이유로 구매 중단을 권고했고, 이어 7월 31일 엔비디아 경영진을 불러 보안 우려를 제기했다.
◇ 엔비디아, 중국 시장 압박 직면
엔비디아는 H20가 군사용 제품이 아니며 미국 정부 역시 중국 칩을 공공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듯 중국도 미국 칩을 국가 운영에 쓰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CAC의 개입으로 중국 빅테크 기업들은 사실상 발주를 줄였으며 일부는 자국산 화웨이·캠브리콘 칩으로 대체 테스트를 확대하고 있다.
앞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시장에서 경쟁을 이어가겠다고 약속했고, 이에 따라 대만 TSMC에 H20 생산 라인 재가동을 요청했을 정도로 수요를 확보했었다. 그러나 규제 강화로 H20 주문이 급감하면서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됐다.
◇ 미·중 갈등 속 자립 압박 강화
NDRC는 이미 수년간 반도체 자립을 추진하며 화웨이 등 자국 기업의 점유율 확대를 독려해왔다. 이번 조치로 중국 내 ‘외산 칩 의존 축소’ 기조가 더 강해질 전망이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추론 단계에서 외산 칩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은 국내 공급 부족으로 당장은 어렵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과학·기술·경제·무역 문제는 정치화·도구화·무기화돼서는 안 된다”며 “억제와 압박으로는 중국의 발전을 막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FT는 미국의 추가 규제 여부와 미·중 무역 협상 추이에 따라 향후 제재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