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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빅딜] 러시아, 미국에 '우크라이나 영토'와 '경제 협력' 맞교환 제안

푸틴, 트럼프 '사업가 본능' 겨냥…제재 해제·경제 유인책 제시
우크라이나·유럽 '강력 반발'…실질적 평화 협정 가능성 낮아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과 도널드 트럼프 간의 만남이 하나의 지침이 된다면, 알래스카에서 우위를 점하는 쪽은 러시아 지도자일 가능성이 높다. 사진=A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과거 블라디미르 푸틴과 도널드 트럼프 간의 만남이 하나의 지침이 된다면, 알래스카에서 우위를 점하는 쪽은 러시아 지도자일 가능성이 높다. 사진=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각) 알래스카에서 전격으로 만난다.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가다운 면모를 겨냥해 경제 협력을 내세워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러시아 편에 서도록 유인책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영국 유력 일간지 가디언이 14일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의 요청으로 급하게 성사된 이번 회담은 2007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만난 뒤 18년 만에 러시아 정상이 미국 땅을 밟는 것이다. 회담 장소인 알래스카는 1867년 미국이 러시아에서 사들인 땅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러시아는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과거 영토였던 곳에서 회담을 열어 국내외에 미묘한 신호를 보내려는 계산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갑작스러운 회동 소식에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아무런 전제 조건 없이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음으로써, 우크라이나의 미래를 미국과 직접 논의하는 외교 목표에 한 걸음 다가서는 예비 승리를 거둔 셈이다.

◇ '제재 해제' 카드 꺼내 트럼프 사업 본능 공략


회담의 핵심 의제는 단연 경제 협력이다. 유리 우샤코프 러시아 대통령 보좌관은 목요일 설명회에서 "두 정상이 무역, 경제 분야를 포함한 양국 협력의 거대한 미개척 잠재력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번 회담에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 안드레이 벨로우소프 국방장관과 함께 서방 제재 대응을 총괄해온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이 배석하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크렘린궁은 줄곧 제재 해제를 평화 협상의 핵심 조건으로 내세웠다.

과거 크렘린궁의 한 고위 관리는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하며 "푸틴은 이번 회담으로 조건만 맞으면 평화에 합의할 준비가 됐다는 점을 트럼프에게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을 전쟁을 연장하는 장본인으로 만들려는 속셈"이라며 "푸틴은 트럼프가 세상을 사업 관점에서 본다는 것을 알고, 자기 조건에 따른 평화를 돈벌이 기회로 포장해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외무부와 가까운 한 학자는 "트럼프는 푸틴이 늘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다고 믿는 유형의 지도자"라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등을 예로 들었다.

◇ 우크라이나 반발 속 '빈손 회담' 가능성에 무게


하지만 이번 회담이 뚜렷한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은 이번 회담을 크게 경계한다. 회담 결과가 우크라이나 주권 문제를 해치고 지원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러시아 외무부는 지난 수요일에도 ▲주요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군의 완전 철수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라는 기존의 전쟁 종식 조건에 변화가 없다고 재확인했다. 우크라이나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신중한 태도다. 그는 이번 회담을 "평화 협정이 가능한지 알아보는 탐색전"으로 규정하고 "행운을 빌며 계속 싸우라고 할 수도 있고, 우리가 거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회담을 "의견을 듣는 자리"라고 표현하며 구체적인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지 않았다.
회담을 앞두고 양쪽의 기 싸움도 치열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향해 "헛소리를 한다"고 비난하며 제재 가능성을 경고했지만, 지난 수요일 그의 특사인 스티브 위트코프가 크렘린에서 푸틴 대통령을 만난 뒤 다시 부드러운 태도로 돌아섰다. 이 만남에서 위트코프는 정전을 대가로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와 도네츠크의 완전한 통제권을 러시아에 넘기는 이른바 '영토 교환' 방안을 제시했다고 전해졌다.

모스크바 소식통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과 미국의 공식 인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러시아가 자포리자와 헤르손 등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남부 육상 통로를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전을 대가로 더 많은 영토를 내놓으라는 러시아의 제안에 동의할 수 없다"며 "러시아가 얻은 것을 앞으로 전쟁을 일으킬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한 전직 크렘린 관리는 "모스크바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해 영토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지만, 키이우는 독립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며 현재 처지를 "완전한 막다른 골목"이라고 진단했다.

설사 영토 문제가 잠정 합의되더라도 나토 가입 포기, 비무장화 등 러시아의 다른 요구들이 남아 있어 평화는 멀다는 분석이다.
회담 시점은 러시아에 유리하다. 러시아군은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공세를 강화하며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군사 압박도 함께 하고 있다. 러시아의 한 학자는 "외교가 실패하면 군사적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것이 푸틴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회담이 빈손으로 끝나면 예측하기 힘든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할 위험도 있다. 모스크바의 정치 분석가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푸틴은 시간을 벌고 있지만, 어느 시점에는 무언가를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번 회담이 실질적인 평화 협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가 많다. 결과와 상관없이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린다. 콜레스니코프는 "푸틴은 그가 하는 모든 일에 메시아 같은 면이 있다"며, "그는 트럼프, 시진핑과 함께 세계를 영향권으로 나누고 싶어 한다. 새로운 얄타 회담을 꿈꾼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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