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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상)] 이란-이스라엘 전면전, 한국경제 '퍼펙트 스톰' 경고등

유가·공급망 위험에 주력 산업 '초비상'…4차 석유 파동 현실화 공포
K-방산, 역대급 수출 기회 잡아…에너지 안보 등 근본 체질 개선 시급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17일(현지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화재 현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 장면은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영상에서 확보한 것이다. 사진=SNS 갈무리, 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격화하는 가운데 17일(현지시각) 이란 수도 테헤란의 한 화재 현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 장면은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영상에서 확보한 것이다. 사진=SNS 갈무리, 로이터
수십 년 이어진 '그림자 전쟁'의 막이 내렸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의 본토를 직접 타격하며 전면전의 문을 열었다. 이스라엘 전투기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 하늘을 가르고, 이란의 탄도 미사일이 이스라엘 주요 도시를 향해 날아가는 전례 없는 상황은 중동을 넘어 온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국지 분쟁이 아니다. 세계 경제의 '핏줄'인 에너지 공급망의 심장부를 겨누고, 1970년대 세계를 암흑으로 몰아넣었던 '석유 파동(오일 쇼크)'의 망령을 불러내며 한국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번 충돌은 과거 대리전 양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스라엘은 테헤란의 연료 저장고와 국방부 본부, 나아가 나탄즈와 이스파한의 핵 시설 주변까지 타격하며 이란의 심장부를 겨눴다. 이는 이란의 군사력을 넘어 경제와 국가 체계 자체를 마비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란 역시 수백 기의 미사일과 무인기로 보복에 나서 양측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나오는 등 인명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매우 무거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공언하고, 이란 군 고위 관계자가 이스라엘을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맞받아치면서 두 나라의 강경 발언은 외교로 해결할 가능성을 점점 더 어둡게 한다. 이란의 요청으로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는 양측의 비난전으로 얼룩지며 국제사회의 무력함만 다시 확인시켰다. 과거 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한 200건이 넘는 결의안에도 이스라엘이 아랑곳하지 않았듯이, 이번에도 안보리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중동의 포성은 곧바로 국제 유가 급등으로 이어졌다. 분쟁 격화 소식에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는 하루 만에 4% 넘게 폭등하며 각각 배럴에 74달러, 75달러 선을 가뿐히 웃돌았다. 진짜 공포는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3분의 1이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가능성이다. 만약 이란이 이 해협을 통제한다면, 국제 유가가 배럴에 13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는 한국 경제에 치명적 위협이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2%를 중동에 의존하는 매우 취약한 구조다. 정부는 즉각 관계부처 합동 비상대응반을 꾸리고 24시간 감시 체제에 들어갔다. 국내 주유소 휘발유 가격은 이미 오름세로 돌아섰고, 분쟁이 길어진다면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라는 이중고를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그림자 전쟁'의 종말은 한국 경제에 '4차 석유 파동'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 산업계, 업종 따라 희비 교차…방산 '웃고' 정유·건설 '울고'


중동에서 울리는 포성은 한국 산업계에 극명하게 엇갈린 신호로 다가온다. 방위산업계에는 전례 없는 성공 기회가 열린 반면, 원유에 생존을 의지하는 정유·화학 업계와 중동에 큰 사업장을 둔 건설·플랜트 업계에는 생존의 위기가 닥쳤다.

역설적이게도 중동의 안보 불안은 K-방산에 다시없을 기회를 주고 있다. 이란의 위협에 맞닥뜨린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국가들이 국방력을 강화하려고 한국산 무기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자국 무기 비축을 우선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한국산 무기가 대체재로 떠오르고 있다. 수출 품목도 '천궁-II' 미사일, K9 자주포를 넘어 전차, 전투기, 잠수함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방산 업계의 환호 뒤에서는 한국 주력 산업의 신음이 터져 나온다. 원유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는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원가 부담과 정제마진 악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제2의 중동 붐'을 기대했던 건설·플랜트 업계도 비상이다. 사우디의 '네옴 시티' 등 대규모 사업을 수주한 국내 건설사들은 전쟁이 번지면 공사 지연이나 사업 중단 위기에 놓일 수 있다. 해운업은 물류 대란을, 삼성전자·현대차 등 제조업체들은 물류비 상승과 부품 수급 불안이라는 현실적 위협에 직면했다.

◇ 지정학적 위기 '뉴노멀'…근본적 경제 체질 개선이 생존 해법


이번 사태는 한국의 에너지 안보가 '백척간두'에 섰음을 또렷이 보여줬다. 정부는 단기 유가 관리를 넘어, 에너지 안보의 생각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원유 도입선을 미국, 남미 등으로 다양하게 바꾸고,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서두르는 등 에너지원 구성의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는 에너지 독립 없이는 경제 안보도 없다는 사실을 똑바로 봐야 할 때다.

중동의 위기는 K-방산에 역사적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기회가 일회성 '수출 특수'에 그치지 않고, 한국을 세계 방산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는 발판이 되도록 정부의 전방위 외교 지원이 필수다. 단순히 무기를 파는 '판매상'을 넘어, 운용 교육, 후속 군수 지원까지 아우르는 '믿을 만한 안보 동반자'라는 인식을 심어줄 때, K-방산의 세계 입지는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코로나19 대유행과 미중 패권 경쟁에 이어 이번 중동 위기는 '효율' 중심의 공급망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제 기업들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위기 상황에 대비하는 '회복탄력성' 중심의 전략으로 바꿔야 한다. 분열된 세계는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다. 이번 위기를 한국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드는 기회로 삼는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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