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해 미-EU 간 통상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함에 따라 EU가 미국에 대한 보복 조처를 할 수 있는 미국산 수입품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5일(현지시각) 보도했다. EU는 이런 리스트를 준비해 미국에 대한 무역 보복이 필요할 때 사용하려 한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EU는 트럼프의 집권 2기가 시작돼도 중국에 대한 대응 등에 있어 미국과 합의를 모색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EU 측 관계자들이 말했다. EU는 미국의 중국산 전기차 수입 규제에 보조를 맞춰 이달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최고 45.3%의 관세율을 부과할 예정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이날 EU가 관세 부과 등을 통해 중국과의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려고 중국과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최근 EU가 트럼프 재집권에 대비해 2단계 대응 전략을 짜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 신속하게 협상을 제안하고, 이 협상이 실패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징벌적 관세를 택하면 EU가 미국산 수입품에 표적 보복을 가하려 한다. EU 집행위원회는 50% 이상의 보복관세 부과를 준비하고 있다고 FT가 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당시인 2018년 3월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유럽을 비롯한 수입 철강에 대해 25%, 알루미늄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고, EU는 강력히 반발하며 보복관세로 맞대응했다. 그러나 미국과 EU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집권 이후인 2021년에 서로 관세 부과를 일시 유예하는 '휴전' 상태에 들어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 관세, 중국산에 60~100% 관세 부과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트럼프는 또 유럽연합이 미국 빅테크를 겨냥해 디지털서비스세를 부과하면 즉각 상응 조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EU의 디지털시장법(DMA)이나 디지털서비스세(DST) 등이 사실상 미국 기업들을 차별하는 보호무역 조처라는 게 미국 측 시각이다. EU는 일반데이터보호규정(GDPR), DMA, 디지털서비스법(DSA) 등을 도입해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장기간 EU 상대로 대규모 무역적자를 내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당시 EU에 대한 무역적자는 당선 시점이던 2016년 1140억 유로(약 170조 원)에서 2020년 1520억 유로(약 227조 원)로 늘어났다. 이 적자 규모가 바이든 정부에서 더 증가해 2023년 기준 1560억 유로(약 233조 원)를 기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상무장관을 지냈던 윌버 로스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보편 관세' 공약이 현실화하면 세계 무역에 1조 달러(약 1359조 원)의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말했다. 로스 전 장관은 전날 미 의회 전문지 ‘서 힐’에 실은 기고문에서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는 지난 13일 폭스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재임 시절 한국과 훌륭한 거래를 했으나 멕시코와 중국, 캐나다, 유럽연합(EU)이 미국을 ‘등쳐 먹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백악관에 복귀하면 미국-멕시코-캐나다 간 무역협정(USMCA) 재협상에 나설 가능성을 예고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