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에 도전하기 위해 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우위를 보였으나 바이든 대통령이 중도 하차하면서 바통을 이어받은 카멀라 해리스 후보에게 대체로 밀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가 외국에 거주하는 미국 유권자를 겨냥한 감세 카드까지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역대급 초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가운데 초과근무 수당과 접객업 종사자의 팁에 물리는 세금을 대폭 손질하겠다는 공약을 이미 내건 것도 모자라 재외국민의 표심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 트럼프 “재외국민에 대한 이중과세 끝내야”
트럼프 후보는 9일(현지시각) 미국 유력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해외거주 미국인에 대한 이중과세 제도를 폐지하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말해 재외국민에 대해 이중과세하고 있는 미국의 현행 조세제도를 대폭 개혁하겠다는 공약을 사실상 발표했다.
WSJ는 “트럼프 후보는 더 이상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으나 재외국민의 한 표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상황이 됐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그가 이중과세 철폐 문제를 거론한 것은 외국에 거주하는 미국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오기 위한 전략이라는 얘기다.
WSJ는 “트럼프 선거캠프 관계자들에 따르면 트럼프의 이 같은 행보는 특히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미국 유권자를 겨냥한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은 약 20만 명의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재외국민 밀집국가다.
WSJ는 “트럼프가 재외국민에 대한 이중과세까지 손질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선 것은 대통령 재임 시절 밀어붙여 시행한 대대적인 법인세 및 개인소득세 관련 감세정책의 연장일 뿐만 아니라 이번 대선에서 승기를 잡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 美, 전 세계 유일의 이중과세 국가
외국에 사는 미국 시민권자들에게도 과세하는 경우는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사실상 유일하기 때문이고, 상당수 재외국민들이 이에 대해 불만을 표시해왔기 때문이다.
‘시민권 기반 과세’ 제도로도 불리는 미국 고유의 이중과세 제도는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거주자 기반 과세’ 제도와는 다르게 전 세계 어느 지역에 거주하든 관계없이 미국 국세청에 모든 소득을 신고하도록 의무화한 독특한 제도.
당초 노예제 폐지 문제를 놓고 1861년 터진 남북전쟁으로 발생한 막대한 전비(戰費)를 조달하기 위해 1864년 외국에 사는 미국인들에게까지 소득세를 물리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그 이후에는 초부유층과 미국 기업들이 세금을 회피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되면서 명맥을 유지하게 됐다.
◇ 美 재외국민 유권자의 영향력
트럼프의 이 같은 행보는 이번 대선에서 투표권을 가진 미국 재외국민을 다분히 겨냥했다는 지적이다.
현재 미국 외의 국가에서 거주하는 미국인은 900만 명 규모로 추산되고 있고, 미국의 전체 등록 유권자 규모가 약 1억7000만 명 규모로 알려져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재외국민 모두가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가정해도 이들이 전체 유권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 수준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중으로만 따지면 영향력이 크기 어렵다고 볼 수 있으나 문제는 이번 대선에서 역대급 초박빙 승부가 펼쳐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일 뿐만 아니라 특히 주요 경합주에서 예측 불가능한 수준의 각축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후보나 해리스 후보나 경합주에서는 한 표가 아쉬운 상황이기 때문에 재외국민의 선택이 생각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