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의 관세 폭탄은 요즘 뉴욕증시에서 회자되고 있는 미란 보고서와 많이 닮았다. 바로 이 때문에 트럼프의 관세 폭탄 배후에 미란 보고서가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란 보고서가 주목받는 이유다. 미란 보고서를 잘 들여다보면 앞으로 트럼프의 향후 정책 행보를 예측할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한마디로 미란 보고서는 트럼프의 성경인 셈이다.
미란 보고서는 하버드대 출신 경제학자 스티븐 미란이 작성했다. 그는 지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트럼프가 발탁한 인물이다. 미란 보고서는 41쪽짜리 아주 짧은 논문이다. 원래 제목은 ‘글로벌 무역시스템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다. 요즘에는 아예 미란 보고서로 불린다. 그 내용이 자못 도발적이다. 관세와 기타 정책을 결합해 새로운 무역체제를 도입하자는 구상을 담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하의 금융질서를 근본적으로 뒤엎으려는 엄청난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미란 보고서의 핵심은 구조적인 강달러를 해소하면서도 달러의 세계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과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다. 동맹국 압박을 위해 관세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트럼프 관세 폭탄의 이론적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초만 해도 미란 보고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 “황당하다”고 평가받았다. 트럼프가 미란 보고서에 힘을 실어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트럼프 정부가 추진해온 관세 정책을 비롯해 다소 모호해 보이는 경제·통상·외교전략에 의미를 부여하고 트럼프 정부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트럼프의 경제 교과서로 인식되고 있다.
미란 보고서는 미국의 제조업 부진 원인을 구조적인 강한 달러에서 찾는다. 기축통화 노릇을 하느라 달러화 수요가 과도하게 증가했으며, 이로 인해 “미국 수출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입품은 싸져 미국 제조업이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미국 제조업이 쇠퇴하고 미국인들은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거나 마약에 중독된다고 진단하고 있다. 고전파 경제이론에 따르면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많은 나라는 통화의 가치가 낮아지게 된다. 통화 약세는 수출 경쟁력을 높여 결과적으로 수출을 늘린다. 환율의 자율조정 시스템으로 국가 간 무역수지 균형을 이룰 수 있다. 이 환율을 통한 무역 균형의 논리가 미국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미국은 전 세계에 준비자산인 달러를 제공하는 달러 기축통화국이다.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아무리 커져도 국제사회에서 미국 달러와 국채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달러 기축통화국인 미국으로서는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국채를 찍어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수출품은 다른 나라처럼 비행기·자동차가 아니다. 미국 경제는 다른 나라에 국채를 팔고 그 대가로 다른 나라의 상품을 받아들임으로써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감당해야 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트리핀의 딜레마'라고 한다. 미란 보고서는 환율관리 시스템 자체를 재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준비통화로서 달러 사용을 끝내는 대신 다른 국가들이 우리의 준비금 제공을 통해 받는 혜택의 일부를 되찾는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미란 보고서가 추구하는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구조적인 강달러를 해소하고,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며, 동시에 미국의 기축통화국 및 패권국 위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목표는 상충한다. 기축통화 공급국이 자국 통화의 약세를 추구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물건을 사는 사람은 없다.
미란 보고서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소비시장의 위상과 안보 리더십을 활용해 동맹국에 이 부담을 공동으로 지우면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외국이 보유한 달러 자산을 영구채로 전환하는 것이다. 국채는 거의 무이자 조건이다. 동맹국이 영구채 등을 무이자로 매입한다면 미국은 이자 부담 없이 기축통화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기업이 무상으로 자본 투자를 받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협정은 트리핀의 딜레마에 몰린 미국이 세계 금융시스템의 원칙을 바꾸는 행위란 점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1971년 금태환 중지와 ‘제2 플라자 합의’에 비견된다.
미란 보고서는 이를 실행하기 위한 채찍이자 당근으로 바로 관세 폭탄과 미국의 안보 우산 카드를 언급하고 있다. 관세 부담을 줄이고 미국의 안전보장을 받으려면 기축통화 발행 비용을 분담하라는 것이다. 미란은 이 보고서에서 미국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 관세율을 20~25%로 제시했다.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현재 2%대다. 이보다 열 배 수준까지 관세가 올라도 미국 경제에 큰 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란 위원장은 블룸버그TV에 출연해 이 보고서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양한 옵션을 제시하는 ‘요리법 모음집’”이라고 묘사했다. 미란 보고서가 실제로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미란 위원장은 보고서가 실행되면 “브레턴우즈 체제와 그 종말만큼이나 큰 글로벌 시장의 변화를 의미할 것”이라고 말한다. 관세를 이용한 당근과 채찍 전략은 미란 플랜을 작동시키는 중요한 무기다.
미란 보고서의 핵심은 구조적인 강달러 해소다. 지난 반세기 동안 강세를 유지해온 미국 달러는 미국 수출품을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게 만들었고, 반대로 수입품은 미국 소비자에게 너무 저렴해져 미국의 제조업과 산업 생산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제조업 약화의 원인을 중국 탓으로만 돌리는 데서 벗어나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 핵심은 동맹국들이 보유한 미국 단기 국채를 100년짜리 초장기 무이자 채권으로 바꾸는 것이다.
미란 보고서는 미국이 ‘공공재’로서 달러를 제공하고 국채를 팔아 세계의 돈을 빨아들이며 금융 패권을 유지해온 구조가 더는 지속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동맹국들이 그 비용을 분담하는 새로운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환율·금리·무역 모두를 재조정하겠다는 포석이다. ‘강달러 해소-제조업 부흥-기축통화 유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일종의 절묘한 외교·경제 혼합 기술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일을 ‘해방의 날(Liberation Day)’로 선포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 폭탄을 터뜨렸다. 트럼프는 “미국이 수십 년간 착취당했다”면서 “이제는 돈(Money)과 존중(Respect)을 되찾을 시간”이라고 주장했다. 미란 보고서는 그 ‘돈과 존중’을 되찾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트럼프 2기 경제정책의 행동 지침서인 셈이다. 우리가 미란 보고서를 읽어봐야 하는 이유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