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한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이 미국 전력망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이에 따라 전력 공급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으며, 전력 산업 혁신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현재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약 33%가 미국에 있으며, 미국 전체 전력 소비량의 약 2%를 차지하고 있다. 전력연구소(EPRI)에 따르면 이 비중은 2030년까지 9%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23년 기준 호주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비슷한 수준으로, 단일 산업 분야의 전력 소비가 한 국가의 총 전력 소비와 맞먹는 수준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미국 전력 시스템에 미칠 영향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특히 이런 심각성은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신규 전력망 구축이 시급한 상황임을 암시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9일(현지시각) 이 같은 미국의 전력 문제를 심층적으로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플랫폼 사용 시 기존 검색엔진보다 최소 10배 이상의 에너지가 소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의 전력 소비량도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급격한 수요 증가를 기존 전력망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많은 지역에서 고압 전선의 용량이 한계에 도달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데이터센터 신규 연결을 거부하고 있다. 버지니아주에서는 새로운 송전선이 완공될 때까지 일부 데이터센터에 전력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
이는 현재 전력 인프라가 급증하는 데이터센터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데이터센터 수도’로 불리는 버지니아주 북부 지역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 지역은 전 세계 인터넷 트래픽의 70%가 통과하는 곳으로, 2023년 기준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주 전체 전력 소비량의 26%를 차지했다. AI 붐 이후 이 비중은 더욱 증가해 2026년에는 32%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지역 전력회사인 도미니언 에너지는 2028년까지 약 78억 달러를 투자해 송전망을 확충할 계획이지만,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신규 데이터센터 설립이 지연되거나 기존 센터의 확장이 제한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AI 기술 발전과 클라우드 서비스 확대에 잠재적인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다른 전력 기업들도 대규모 투자를 통한 인프라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비용이 문제다. 애리조나 전력공사(APS)는 향후 10년간 800마일의 신규 송전선을 건설하거나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빅테크 기업들도 원전 인근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는 등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구글은 지열발전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도입을 검토 중이다. 또한 장기 전력 저장 기술 개발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는 전력 산업과 기술 산업 간 긴밀한 협력이 불가피해졌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아마존은 최근 펜실베이니아의 원자력발전소 인근 데이터센터를 매입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는 소형 모듈형 원자로를 활용한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제 전력 공급 문제를 넘어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규모 투자와 혁신적인 접근에도 불구하고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자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변화는 한국 기업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의 해외 공장 건설 시 전력 공급 문제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반면 한국전력이나 한국수력원자력 등 에너지 기업들에는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수 있다. 특히 소형 모듈형 원자로 등 차세대 에너지 기술 개발에 더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AI 시대 도래로 인한 급격한 전력 수요 증가는 에너지 산업 전반의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히 발전량을 늘리는 것을 넘어 친환경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에너지 생산과 저장, 전송 기술의 발전이 시급하다.
이는 산업 차원 문제를 넘어 국가 경제와 안보와도 직결되는 과제다. 미국 사례를 교훈 삼아 우리나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에너지 정책을 수립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 과감히 투자해야 할 때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