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인공지능(AI) 기술 붐과 미국 대선 구도, 지정학적 변화 등으로 큰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해 하반기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던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이런 변화로 조정을 거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간 반도체 시장의 변화를 분석하고, 향후 이 시장의 변화를 진단하고 전망한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끈다.
최근 ING의 경제 및 재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특히 한국의 ICT 부문이 이러한 글로벌 기술 사이클 상승세를 타고 강력한 성장세를 보이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보고서는 현재 아시아 지역의 반도체 생태계가 변화 과정에 놓여 있다는 분석과 전망을 보였다.
◇ 다시 주목받는 한국 반도체 경쟁력
최근 수출 실적과 시장 점유율 데이터는 한국 반도체의 부활을 말한다.
2023년 상반기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52.2% 증가했으며, 물량 측면에서도 35%의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미국과 칩 무역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는 주로 AI 칩에 대한 강력한 수요에 기인한다. 이 추세는 2023년 중반부터 시작되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상도 강화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3월까지 AI 칩 시장의 약 80%를 점유하고 있는 엔비디아(NVDA)에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단독 공급해왔다. 더욱이 SK하이닉스는 AI 칩셋에 사용되는 HBM 칩이 2023년에 이어 2025년까지도 거의 품절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어, 미래 수요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 혁신 측면에서도 한국 기업들은 선도적인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 3분기에 최신 HBM3E의 양산을 시작할 예정이며, 이는 글로벌 AI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한국의 중요성도 여전히 높다. 한국의 대중국 및 홍콩 반도체 무역은 금액 기준으로 총 반도체 무역의 76% 이상, 거래량 측면에서는 약 52%를 차지하고 있어, 아시아 지역 반도체 산업의 핵심 허브로서 역할을 지속하고 있다.
더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은 미국 등 해외 생산기지를 확대하고 있으며,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하고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다양한 지표와 동향은 한국 ICT 부문, 특히 반도체 산업이 AI 기술 발전과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 아시아 국가들의 역할 변화
이외, 아시아 국가의 반도체 부문 역할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변화의 핵심은 베트남의 부상, 중국과 홍콩의 위상 변화, 그리고 일본의 선전이다.
먼저, 베트남이다. 반도체 산업에서 중요 무역 파트너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는 주로 미중 무역 갈등의 결과로, 많은 기업들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베트남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싼 노동력과 안정적 정치 환경, 그리고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새로운 반도체 생산기지로 주목받고 있다.
중국과 홍콩은 여전히 반도체 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지만, 반도체 허브 국가인 한국과의 거래량이 2022년 이후 축소되는 추세이다. 이것은 미국의 대중국 기술 제재와 글로벌 기업들의 공급망 다변화 노력의 결과로 볼 수 있다.
한국 기업들도 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다른 국가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추세이다. 일본의 경우는 특이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제조 장비 분야에서 여전히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미국의 대중국 기술 제재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이 오히려 증가했다. 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지만, 중국이 미래의 제재를 우려해 선제적으로 일본 장비를 구매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 수출품은 주로 포토리소그래피 장비로, 현재 미국의 기술 수출 금지 목록에 빠져 있다. 중국이 제재를 받지 않는 후공정(패키징, 테스트 등) 분야에 집중투자하면서 관련 장비 수요가 증가한 것이다.
◇ 미래 반도체 시장의 변화 색깔
이런 변화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보여주는 것으로, 각국의 정책과 기업들의 전략이 복잡하게 얽혀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미중 갈등과 기술 패권 경쟁이 이런 변화의 주요 동인이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지역의 반도체 산업 지형은 계속해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ING는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장 변화 속에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강력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시아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과거 트럼프 행정부 시절에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정책을 펼쳤던 경험을 고려하면, 미국의 리쇼어링 노력이 더 가속화될 경우, 아시아 반도체 제조업체들에게 더 많은 장애물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아시아 제조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쉽사리 대체되기 어려울 것이지만,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전문가들은 향후 칩 업사이클이 계속될 것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아시아 수출업체에 더 큰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다만, 일본의 경우, 반도체 산업 투자가 증가하고, 후공정 부분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며, 시장 구도에 변화를 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동향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기술 혁신과 지정학적 변화의 교차점에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시아 국가들이 아직 중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미국의 정책 변화와 기술 주도권 경쟁이 시장 구도를 재편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기업들은 공급망 다각화와 기술 혁신에 더욱 주력해야 함을 암시한다.
특히, 우리로서는 이런 변화를 목도하면서, 남다른 변화 인식과 대응책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기술 혁신과 공급망 다각화, 그리고 미국 등 글로벌 반도체 강국과의 협력 강화가 주요할 것이다. 동시에 지정학적 리스크와 기술 패권 경쟁에 대비한 유연한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향후 변화는 세계 경제와 기술 발전의 향방을 가늠할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며, 한국 경제에도 큰 파장을 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변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