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열리는 차기 미국 대통령선거가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공화당 소속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이하 현지시각) 자신의 선거 유세장에서 암살 시도로 추정되는 총격을 받은 사건 때문에 격랑에 휩싸였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수사 진행 중인 이 사건의 용의자는 공화당 당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20세 청년 토머스 크룩스다. 그의 범행 동기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으나 FBI는 아직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크룩스가 최근 미국에서 터진 총격 사건들에서 종종 등장한 AR-15 계열의 소총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미국 사회의 오랜 사회 문제인 총기 허용 문제를 둘러싼 논쟁도 다시 뜨거워질 전망이다.
그러나 크룩스 개인의 범행 동기와는 별개로 이번 사건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극단적인 개인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기보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극단적인 폭력을 쓰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는 미국 사회의 최근 분위기가 더 근본적인 배경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 美 유권자 7~10% “정치적 신념 위해 물리력 행사하는 것 정당”
페이프 교수는 트럼프의 2020년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친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이 지난 2021년 1월 6일 미국 워싱턴DC의 연방 의회 의사당을 점거해 폭동을 일으켜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이후 미국 국민과 정치적 폭력의 상관관계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대표적인 학자다.
그가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그동안 보지 못했던 놀라운 흐름이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서 확인됐다. 정치적 극단주의와 양극화가 미국 사회에서 위험 수위에 달했다는 지적은 그동안 많았으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폭력을 써도 문제가 없다는 여론이 생각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페이스 교수에 따르면 이번 조사에 참여한 미국 유권자의 10%가 트럼프의 재선을 막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응답자의 약 3분의 1은 개인적으로 총기를 갖고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유권자의 7% 역시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에 도움이 된다면 물리력을 행사하는 것에 찬성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같이 답한 공화당 지지자들의 절반도 총기를 휴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美 정치적 양극화, 수년 내 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
페이프 교수는 “트럼프의 이번 피격 사건은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 폭력을 저지르는 일이 유권자들 사이에 얼마나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용의자 크룩스뿐 아니라 정치적 신념에 갇혀 극단적인 폭력을 동원하는 사람이 민주당 지지자든 공화당 지지자든 상관없이 앞으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NYT에 따르면 이같은 주장은 페이프 교수만 내놓고 있지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데이비스캠퍼스 산하 폭력문제 전문 연구기관인 폭력예방연구프로그램(VPRP)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서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폭력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지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약 14%가 향후 수년 안에 미국에서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내전이 벌어지는 것을 예상할 정도로 정치적 반대 세력을 꺾기 위해 물리력을 동원하는 것에 찬성하는 의견이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뜻이다.
VPRP의 조사에 참여한 미국 시민 가운데 약 8%는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미국이 정치적인 신념에 따라 총기 사용을 포함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