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치가 37년여 만에 최저 수준인 ‘슈퍼 엔저’ 장기화로 엔테크(엔화+재테크)족 비명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엔화 투자 수단인 국내 엔화예금 잔액이 계속 불어나고 있는데 엔화 가치는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저금리도 지속되면서 투자자들은 환차익뿐 아니라 이자수익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바닥일 줄 알았던 원·엔 환율이 850원대 마저 위태로워 지면서 목돈을 넣거나 추가 매수(물타기)를 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엔화 예금 잔액은 1조2928억엔(약 11조1105억원)으로 집계됐다.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해 4월 말 5978억엔 정도였다. 하지만 엔화 가치가 본격적으로 하락 곡선을 타기 시작한 5월부터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해 원·엔 재정환율이 100엔당 800원대에 진입한 같은 해 9월 말엔 1조엔을 돌파했다.
지난해 하반기까지만 해도 엔화 투자를 우려하는 시각은 적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엔화가 더 떨어지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엔화는 반등하기는 커녕 기록적인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엔화 환율은 1년 전만 해도 100엔당 900원 초반대였다. 9월 중 800원대를 찍고 등락을 거듭하다가 11월 850원대까지 내리기도 했지만 주로 900원대 초반대에서 움직였다. 올해 들어서는 주로 800원 후반대에서 움직이다가 지난 5월 860원대까지 내려왔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 최근엔 860원선 마저 붕괴디면서 850원대로 급락했다.
대부분의 엔테크족은 850~870원대를 엔화 가격의 저점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다시 엔화 환율이 이 구간에 진입하면서 마지막 저가 매수 타이밍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만연하다. 이 때문에 환차손을 본 투자자들이 엔화예금을 확대하는 경우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물타기'이다.
그러나 원·엔 환율이 850원대 마저 붕괴되면서 최근 엔화 투자에 대한 신중론이 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900원선 무너졌을 때만 해도 '언젠간 오른다'는 심리가 만연했지만 엔저가 장기화되고 하락폭도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엔화를 보유하면 이자가 없기 때문에 다른 통화를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자수익도 포기해야 한다.
전규원 하나증권 연구원은 "7월 이후 일본은행(BOJ)의 연속적 금리 인상 유인이 크지 않아 통화 긴축 기대감은 제한적일 것이고, 구조적인 엔화 약세 요인도 상존한다"면서 "달러·엔 환율은 점진적으로 하락하겠지만 이를 감안할 때 환율은 연말까지 150엔 근방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하연 대신증권 연구원도 "대내외 변화에 취약해진 엔화 가치에 시장의 일본은행 통화정책 정상화 기대는 여전하지만 높은 물가 수준에도 일본 가계 실질소득 감소, 정부 부채 부담 등에 일본은행은 통화정책 정상화에 소극적인 모습"이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