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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미란 보고서 vs 마러라고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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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사진 =SBS BIZ 출연 방송
미국 최고의 부자 도시 플로리다 팜비치에 '마러라고'라는 리조트가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저가 바로 마러라고 리조트 안에 있다. 마러라고는 스페인어 Mar-a-Lago에서 나왔다. '바다에서 호수까지'라는 뜻이다. 마러라고 리조트는 대서양과 대서양 연안 수로의 일부를 형성하는 월스 라군이라는 호수 사이에 있다. 바다에서 호수까지가 모두 마러라고 땅이다.
이 집은 시리얼의 원조 포스트그룹의 상속인인 마저리 메리웨더 포스트가 1927년 만들었다. 땅 구입과 건축비로 당시 7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닉슨 대통령 시절이던 1973년 포스트가 사망하면서 미국 대통령의 겨울 별장으로 사용하도록 마러라고 사용권을 백악관에 기증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플로리다 키 비스케인에 위치한 겨울 백악관 별장을 더 선호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 역시 마러라고에 관심이 없었다. 대통령 별장이라고 하지만 오랜 세월 빈 채로 있었다. 백악관은 대통령이 찾지 않는 마러라고 리조트의 엄청난 유지·보수비를 부담스럽게 여겼다. 그러다가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던 1981년 포스트 재단에 사용권을 반납했다.

포스트 재단은 마러라고 리조트를 2000만 달러에 매물로 내놨다. 그때 부동산업자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1500만 달러에 인수하겠다고 제안했다. 포스트 재단은 싸게 팔 수 없다며 거절했다. 트럼프는 마러라고 리조트와 바다 사이의 땅을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FC) 소유주 잭 C. 매시에게서 200만 달러에 사들였다. 그런 다음 마러라고의 오션뷰를 가로막는 집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바다 쪽 경관이 막혀버린 포스트 재단은 1985년 울며 겨자 먹기로 당초 가격보다 아주 싼 700만 달러에 마러라고 리조트를 팔기에 이른다. 트럼프의 교활한 알 박기 작전에 당한 셈이다.

트럼프는 2016년 대통령이 된 후 마러라고 리조트를 겨울 별장이라고 불렀다. 대통령 선거에서 낙선한 2020년 이후에는 트럼프 부부의 거주지로 사용해왔다. 트럼프는 오랫동안 트럼프 타워가 위치한 뉴욕주 뉴욕시 맨해튼에 거주해 왔으나 2016년 대선 직후 민주당이 장악한 뉴욕주와 시의회가 자신을 부당 대우한다며 플로리다주의 이곳으로 거주지를 아예 옮겨버렸다. 트럼프의 둘째 딸인 티파니 트럼프는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트럼프 가족은 장식용 돌고래로 둘러싸인 집과 땅의 폐쇄된 별도 공간에 거주해왔다. 마러라고 리조트에는 126개의 방이 있다. 트럼프는 2021년 1월 백악관을 떠나면서 대통령 기록법에 따라 보관 중이던 엄청난 양의 대통령 기록물을 마러라고로 옮겼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무역적자 해소와 제조업 부흥을 위해 관세 폭탄에 이어 환율 압박 카드를 꺼낼 것이라는 풍문이 미국 월가에서 나돌고 있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미란 박사가 쓴 미란 보고서에도 무역흑자국의 통화가치 평가절상을 통해 무역적자를 줄이는 방안이 제시돼 있다. 미란 박사는 투자자문사 허드슨베이 캐피털의 수석전략가였던 2024년 말 ‘국제무역체제 재구조화를 위한 가이드’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미란의 풀 네임은 스티븐 미란이다. 스티븐 미란은 하버드대 출신 경제학자다. 지금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발탁한 인물이다. 미란 보고서는 41쪽짜리 아주 짧은 논문이다. 원래 제목은 ‘글로벌 무역시스템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다. 요즘에는 아예 미란 보고서로 불린다. 그 내용이 자못 도발적이다. 관세와 기타 정책을 결합해 새로운 무역체제를 도입하자는 구상을 담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브레턴우즈 체제하의 금융질서를 근본적으로 뒤엎으려는 엄청난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미란 보고서의 핵심은 구조적인 강달러를 해소하면서도 달러의 세계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동맹국과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다. 동맹국 압박을 위해 관세를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도 제시했다. 트럼프 관세 폭탄의 이론적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란 보고서는 미국의 제조업 부진 원인을 구조적인 강한 달러에서 찾는다. 미국이 기축통화 구실을 하는 과정에서 달러화 수요가 과도하게 증가했으며, 이로 인해 “미국 수출품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입품은 싸져 미국 제조업이 손해를 보는 상황이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제조업이 쇠퇴하고 미국인들은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거나 마약에 중독된다는 것이다.

달러 기축통화국인 미국으로서는 무역적자 속에서도 인위적인 달러 약세가 어렵다. 결국은 만성적인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국채를 찍어내 왔다. 미국 경제는 다른 나라에 국채를 팔고 그 대가로 다른 나라의 상품을 받아들임으로써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감당해야 하는 모순에 처하게 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트리핀의 딜레마'라고 한다. 미란 보고서가 추구하는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구조적인 강달러를 해소하고, 미국 제조업을 부흥시키며, 동시에 미국의 기축통화국·패권국 위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목표는 상충한다. 기축통화 공급국이 자국 통화의 약세를 추구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물건을 사는 사람은 없다. 미란 보고서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소비시장의 위상과 안보 리더십을 활용해 동맹국에 이 부담을 공동으로 지우면 세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외국이 보유한 달러 자산을 영구채로 전환하는 것이다. 국채는 거의 무이자 조건이다. 동맹국이 영구채 등을 무이자로 매입한다면 미국은 이자 부담 없이 기축통화국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협정은 '트리핀의 딜레마'에 몰린 미국이 세계 금융시스템의 원칙을 바꾸는 행위란 점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1971년 금태환 중지와 레이건의 제2 플라자 합의에 비견된다.
미란은 미국의 무역흑자국이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안보 우산’을 채찍으로 꺼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욕증시에서는 미란의 이런 일련의 구상을 트럼프의 플로리다 별장 이름을 따서 ‘마러라고 합의’라 부르고 있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이던 1985년 ‘플라자 합의’를 본뜬 것이다. 그때 미국은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일본·독일·영국·프랑스를 압박해 달러 약세 유도 합의를 이끌어냈다. 플라자 합의는 요즘 뉴욕증시에서 회자되고 있는 미란 보고서와 많이 닮았다. 바로 이 때문에 트럼프의 관세 폭탄 배후에 미란 보고서가 자리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한마디로 환율·금리·무역 모두를 재조정하겠다는 포석이다. 강달러 해소-제조업 부흥-기축통화국 유지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일종의 절묘한 외교·경제 혼합 기술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마러라고 협정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마러라고 협정의 추진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미란조차 마러라고 협정은 하나의 가설일 뿐이라고, 실제로 추진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마러라고 협정 체결 가능성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그만큼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그리고 국가부채 상황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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