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가치가 38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지면서 일본 가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수입 물가 상승으로 식료품 및 에너지 비용 부담이 커져 연간 9만 엔(약 77만 원)의 추가 지출이 예상된다.
29일(현지시간) 닛케이 아시아에 따르면 지난 금요일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61.20엔까지 치솟으며 1986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 정부는 환율 방어를 위해 칸다 마사토 재무관을 교체했지만, 엔화 약세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엔저 현상은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미즈호 리서치 앤 테크놀로지스는 엔/달러 환율이 160엔대를 유지할 경우 가구당 평균 지출이 작년보다 9만 엔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미국산 소고기, 유럽산 돼지고기, 노르웨이산 연어 등 수입 식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이 커지고 있다. 일부 스시 레스토랑은 연어 가격 상승으로 저렴한 대체재를 사용하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은 일본의 구매력을 약화시켜 국제 경쟁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업체들은 가격 상승을 따라잡지 못해 수입량을 줄이고 있으며, 유럽산 돼지고기 확보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다.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은 1995년 4월 정점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역대 최저치에 근접했다.
일본은행 기업물가지수 데이터에 따르면 5월 수입물가지수는 엔화 기준으로 전년 동월 대비 6.9% 상승한 반면 계약통화 기준으로 3%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엔화 약세로 인해 수입 비용이 크게 상승했고, 기업들은 국제 가격 하락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실질실효환율의 하락은 국내 수출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만, 제조업체들이 해외로 생산을 이전했기 때문에 일본 경제는 수출 증가의 혜택을 많이 받지 못한다.
엔저 현상이 지속되면서 일본 경제는 수출 증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