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세력과 갈등의 골을 키우고, 대만을 상대로 지정학적 위기감이 갈수록 고조되는 가운데 석유를 비롯한 핵심 자원들의 비축량을 빠르게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석유업계 및 에너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말 동부 지역 항구인 둥잉에 총 3150만 배럴 규모의 원유 저장 시설을 완공한 이후, 올해 초부터 이곳에 대량의 원유를 비축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이 전쟁을 비롯한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전략적인 자원 비축량을 늘리는 중국의 의도적인 노력으로 본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전략적인 원유 비축량을 최소 2억8000만 배럴에서 최대 4억 배럴로 추정한다. 이는 미국의 전략 석유 비축량인 약 3억6400만 배럴을 초과하는 양이다.
중국이 평상시 약 하루 140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하는 것을 고려하면 연초부터 석유 비축량을 급격히 늘리는 것은 충분히 계획적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급증도 주목할 부분이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과 EU 등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등에 대해 수입 제한 및 수출가격 상한제 등의 제재를 가했다.
하지만 거래처가 줄어든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중국이 싼값에 대량으로 수입하면서 러시아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기존 수입처를 제치고 중국의 최대 원유 공급처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러시아의 대중국 원유 수출량은 약 25%나 늘어난 하루 214만 배럴까지 늘었다.
이에 일부 군사 전문가는 중국의 석유 및 자원 비축이 머지않아 대만 침공을 위한 전쟁 준비 및 그에 따라 발생할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에 대비하기 위한 준비라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마이크 스터드먼 전 미 해군 정보국 사령관 겸 인도태평양 사령관은 국제문제 및 분쟁 블로그 ‘워 온 더 록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중국의 최근 에너지 비축 행보가 광범위한 관점에서 전쟁 준비 과정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중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가해진 각종 제재와 그 여파를 목격하고, 세계 각지의 분쟁에서 자주 발생하는 군사적인 봉쇄를 보아온 만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원유를 비롯한 각종 필수 자원의 전략적 비축량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과의 긴장 완화를 위한 미국과 EU 등 서방 국가들의 노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캘리포니아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직접 만난 데 이어, 지난 4월에는 전화 통화로 현재 관계에 대한 안정적인 유지에 뜻을 모았다.
같은 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중국을 직접 방문해 독일과 중국 양국 간 경제협력 방안 등을 논의하는 등 유화적인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하지만 서방과 중국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미국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해 중국의 첨단 군사기술 발전을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첨단 반도체 제품과 관련 제조 장비 등의 중국 수출 규제를 갈수록 강화하고 있다. EU 역시 중국산 전기차와 태양광 및 풍력발전 설비 등에 대해 반보조금 및 불공정 무역 조사 등을 추진하며 견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중국도 러시아에 각종 공산품과 원자재 등의 수출을 늘리며 러시아를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데 이어, 미국과 유럽산 자동차 등에 보복관세를 검토하는 등 맞불을 놓고 있다.
또한, 중국은 리튬과 니켈, 구리, 흑연 등 자국에서 생산 및 가공되는 주요 광물들의 수출을 통제하기 시작했으며, 자국 내 재고를 늘리는 동시에 해외 광산 및 생산 시설을 직접 사들이거나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금 비축량도 더욱 늘리는 동시에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매각하는 등 달러 자산 보유량을 낮추고 있다.
전문가들은 어떤 계기로 국제적인 긴장 관계가 완화되지 않는 한 중국의 석유 및 자원 비축 행보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