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소비 호조로 순항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CNN 비즈니스가 2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미국 경제에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하며 이 소비는 주로 ‘가진 자’에 의해 이뤄지고, ‘가지지 못한 자’는 낙오하고 있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현재 미국의 경제 상황은 한마디로 ‘두 도시의 이야기’라고 CNN 비즈니스가 강조했다.
미국이 경제 활동이 전반적으로 활발하지만, 이제 그 모멘텀을 잃어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으며 실업률도 3.9%로 올라갔다. 미국에서 기업들이 직원 해고에 나서고 있고, 저소득층은 고물가·고금리 사태 속에서 소비를 줄이고 있다. 소비 증가율도 서서히 둔화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기업과 고소득층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2020년 이후 현재까지 미국에서 40조 달러의 부가 증가했다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레이건 캐피털의 스카일러 와이낸드는 이 매체에 “미국 경제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양극화되고 있다”면서 “중산층도 물가 상승과 임금 상승 둔화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샌텐더 은행의 최근 조사에서 미국인의 60%가량은 미국이 향후 12개월 이내에 경기 침체기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미국인의 62%가 최근에 가계 지출을 현저하게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NN 비즈니스는 미국 경제가 '순차 침체(rolling recession)'로 가고 있는 것으로 일부 전문가들이 진단했다고 전했다. 침체가 산업 전반에 걸쳐 오는 것이 아니라 특정 분야에 한정돼 올 수 있고, 이때 저소득층이 경기 침체에 따른 타격을 가장 심하게 입을 수 있다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순차 침체는 일종의 하이브리드처럼 산업의 한 분야가 위축되면 그것이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미치는 식으로 침체가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현상을 말한다. 순차 침체가 오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몇 분기에 걸쳐 마이너스로 내려가지 않지만, 주택이나 제조업, 기업 이익 등 경제의 일부분이 마치 침체에 빠진 것처럼 느껴진다.
글로벌 투자은행(IB) 파이퍼 샌들러의 수석 글로벌 이코노미스트 낸시 라자르는 전날 인터뷰 전문매체 웰스트랙과 한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가 지금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GDP의 40%를 차지하는 19개 주에서 지난 3개월간 측정한 평균실업률이 최소 0.5%포인트 이상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경제의 현주소를 ‘양극화 경제’라고 진단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지난 14일 발표한 가계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지난 1분기 신용카드 미결제 잔고는 1조1200억 달러(약 1526조2500억원)로 전년 동기 대비 13.1% 늘었다. 지난해 4분기 기준 90일 이상의 연체 상태로 전환돼 '심각한 연체'에 빠진 신용카드 미결제 총액 중 부채비율은 6.4%로 집계됐다.
공공정책 연구기관인 어반 인스티튜트 조사에 따르면 전체 식료품 구매의 약 70%가 신용카드나 직불카드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잔액을 전부 갚을 능력이 없는 소비 행태로 매우 위험하다고 이 기관이 지적했다. 지난해 신용카드 연평균 이자율은 22.8%로 사상 최고치에 달했다.
미국 경제지표와 주식시장이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미국인들은 이를 다르게 받아들이는 바이브세션(vibecession)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바이브세션은 실제 경제 상황과 상관없이 '분위기(vibe)'에 따라 경제 인식이 경기 침체 쪽으로 기울면서 비관론이 나타나는 것을 뜻한다. 영국 가디언지가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해리스폴을 통해 조사한 결과 미국인 응답자 72%가 인플레이션이 상승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로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팬데믹 이후 9.1%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전반적으로 내림세를 보여 지난 4월에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3.4%를 기록했다. 미국 GDP 등의 지표가 호조를 보였으나 미국인 55%는 경제가 점점 침체하고 있다고 인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2023년 가계 재정 행복지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물가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에서 미국 가계는 임대료를 포함한 일상적인 지출을 감당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으며, 물가 상승이 둔화했음에도 많은 사람이 인플레이션에 대해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연준 조사에서 2023년 재정적으로 괜찮거나 편안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응답은 약 72%로, 2022년 73%와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2021년 78%보다는 상당 폭 줄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