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 사태 속에서 미국의 노동 시장이 탄탄한 상태지만, 핵심 노동 연령층인 25~54세 남성 노동자의 노동계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미 경제 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는 28일(현지 시각) 핵심 노동 연령층에서 남성의 노동 참여율이 1950년대에는 96%에 달했으나 최근에는 86%로 내려갔다고 보도했다. 노동 시장에서 이탈한 남성은 자신감 상실 등으로 정신건강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미국에서 남성의 노동 참여율은 경기 침체기 이후에 내려가는 경향을 보인다. 지난 1953년 경기 침체 이후에 핵심 노동 연령층에서 남성의 노동 참여율은 침체 전에 96%였다가 침체기를 지난 이후에는 92.8%에 그쳤다. 또 대침체 당시에도 88%였던 비율이 80.6%로 내려갔다가 86.7%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는 기존 패턴과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팬데믹 당시인 2020년 7월에 핵심 노동 연령층 남성 노동 참여율이 78%까지 내려갔다가 팬데믹 이후에는 다시 회복됐다. 그 이유는 그 전에 있었던 경기 침체기와 달리 팬데믹 당시에 정부가 과감한 경기 부양책을 동원하고, 재난 지원금 등을 살포해 경제를 살렸기 때문이라고 이 매체가 전했다.
일부 남성 노동자들은 경기 침체기에 실직, 임금 감소 등을 경험하면 경기가 회복된 뒤에 기대 임금에 미치지 못하면 취업을 아예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또한 침체기 동안 이들 남성 노동자의 고립 기간이 길어질수록 구직을 포기하는 비율이 올라간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보장 장애연금 수혜자가 늘고 있는 것도 남성 노동 참여율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1960년에는 장애연금 수령자가 45만5000명가량이었으나 2022년에는 76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 중 25~54세 핵심 연령층 남성 수령자가 130만 명에 달했다. 이 연금 수령자 중 상당수가 구직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2023년 핵심 연령층 남성과 여성의 노동 참여율은 83%였으나 장애연금 수령자의 참여 비율은 44%에 그쳤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연은)은 장애가 있는 핵심 노동 연령층 남성의 40%가량이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팬데믹 당시에 널리 유행한 원격근무제로 인해 장애인 고용이 증가했다. 지난해 장애인의 취업 비율은 2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핵심 노동 연령층 남성의 취업률이 낮아진 또 다른 이유는 석박사 과정 이수자, 가사(家事)를 하는 전업주부 남편, 연로한 부모를 돌보는 남성 등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매체가 지적했다. 세계화 진전과 기술의 발달, 자동화 등으로 남성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로봇을 비롯한 기계가 남성이 하던 일을 대신하는 비율이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미국의 탄탄한 고용 시장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마이클 가펀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6일 투자 메모에서 “노동 시장이 둔화할 조짐이 나타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올해 4월에 비농업 분야 신규 일자리가 25만 개가량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4월 실업률은 3월과 같은 3.8%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 매체가 전했다. 지난 3월에는 미국의 신규 일자리 수가 예상을 뛰어넘어 전월 대비 30만3000건 증가했다. 올해 1, 2월에도 고용 증가 폭이 전문가 예상을 크게 웃돌았고, 3월에는 12개월 월평균 증가 폭(21만3000건)을 뛰어넘었다.
미국의 2월 구인 건수는 2개월 연속으로 880만 건을 기록해 노동 시장이 여전히 견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2월 기준으로 실업자 1인당 일자리 수 1.4건이 유지됐다. 이 비율은 2022년 최고치인 2.0에서는 감소했으나 팬데믹 이전 수준인 약 1.2보다 아직은 높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