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사들이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글로벌 진출'을 주요 목표로 제시했다. 게임 시장 공략을 넘어 서구권 현지 게임사를 인수 합병(M&A), 전초기지로 삼는다는 방침이다.
코스피 상장 게임사 크래프톤의 배동근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26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10명 남짓으로 구성된 인원들이 지난해에만 국내외 게임사 약 350곳을 두고 투자 여부를 검토했다"며 "올해 보다 공격적으로 M&A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크래프톤은 2021년 8월 상장한 이래 미국 게임사 언노운 월즈와 벡터노스, 스웨덴의 네온 자이언트 등을 인수했다. 해외 유명 개발자를 영입해 이들이 중심이 된 해외 법인 스트라이킹 디스턴스 스튜디오, 몬트리올 스튜디오 등을 새로이 설립하기도 했다.
소셜카지노 전문사 더블유게임즈 역시 28일 주주총회에서 M&A를 주요 비전으로 지목했다. 회사는 "지난해 100개 이상 기업을 M&A 후보로 두고 검토했다"며 "핵심 성과 지표(KPI) 기준 1000억원 규모의 M&A를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으며 게임 외 IT 기업을 향한 M&A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임업계 터줏대감 엔씨소프트(NC) 또한 잠재적인 M&A '큰 손'으로 손꼽힌다. 올해 NC는 박병무 이사를 김택진 창업자와 함께 회사를 이끌 대표로 새로이 선임했다. 박병무 대표는 변호사 시절부터 M&A 분야 전문가로 이름을 높였던 인물로 뉴브리지캐피탈, 보고펀드, VIG파트너스 등 자산운용사의 대표직을 역임해왔다.
홍원준 NC CFO는 28일 주주총회 중 M&A에 관해 "크래프톤이 300개 이상의 게임사를 두고 검토했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며, 우리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에 회사를 내놓겠다'는 딜을 수차례 제시받기도 했다"며 "주주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조건으로 좋은 거래를 성사하는 것이 주주들을 위한 업무라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주주총회를 통해 넥슨 코리아 대표에서 일본 넥슨 본사 대표로 승진한 이정헌 대표 역시 "좋은 성과를 내는 기존 글로벌 타이틀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나아가 글로벌 성공작이 될 수 있는 신작에 대한 투자를 더해 넥슨의 새 시대를 열 것"이라고 취임 소감을 말했다. 새로이 한상우 대표가 취임한 카카오게임즈 역시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게임업계가 글로벌 게임사들을 인수하는 것이 낯선 선택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크래프톤 외에도 NC는 '길드워' 개발사 아레나넷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넷마블 또한 카밤과 잼시티, 스핀엑스 등 여러 해외 게임사들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으며 펄어비스는 '이브 온라인' 개발사 CCP게임즈를 산하에 두고 있다.
해외 지사의 게임이 좋은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다. 넥슨의 북미 자회사 엠바크 스튜디오가 지난해 12월 선보인 슈팅 게임 '더 파이널스'는 세계적인 PC 게임 유통망 스팀(Steam)에서 최다 동시 접속 7위에 오르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NC는 주주총회에서 주요 차기작으로 '길드워' 시리즈의 후속작 '길드워3'를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해외 자회사 인수가 더욱 강조되는 이유로는 국산 게임업계의 핵심 매출원인 모바일 게임 시장, 특히 MMORPG를 위시한 RPG 장르가 침체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 손꼽힌다.
앱 통계 분석 플랫폼 센서타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양대 앱 마켓(구글 플레이스토어·애플 앱스토어) 게임 매출은 총 767억달러(약 103조원)을 기록했다. 2022년 대비 2%, 2021년과 비교하면 10.8% 감소한 것이다. 모바일 RPG로 한정한 매출은 2023년 기준 200억달러(약 27조원)로 전년 대비 10% 줄었다.
해외 업체들의 한국 시장을 향한 투자 확대가 역으로 국내 업체들의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다. 텐센트를 위시한 중국 업체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 펀드 등이 국내 게임계에 관심을 보인 대표적인 '큰 손'들이다. 최근에는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소니IE)가 콘솔 게임 업체 중 처음으로 한국 개발사 시프트업과 세컨드 파티(게임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주식시장 전반의 침체로 인해 주주들이 M&A를 통한 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듯 하다"며 "서구권 혹은 신 시장 진출을 위한 글로벌 M&A는 게임사들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카드인 만큼 올해 보다 적극적인 투자 행보가 이뤄질 듯 싶다"고 말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