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을 넓히다(Expand your horzions)'란 표어와 함께 개최된 지스타 2023에서 새로운 지평의 역할을 한 것은 '서브컬처'였다. 국내외 주요 업체들이 하나같이 애니메이션풍 미소녀들을 앞세워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부산 벡스코에서 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 동안 진행된 지스타 2023에선 메인 스폰서 위메이드 자회사 위메이드커넥트의 '로스트 소드'를 비롯해 엔씨소프트(NC) 'BSS(가칭)', 넷마블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과 '데미스 리본', 그라비티 '뮈렌: 천년의 여정' 등 카툰 그래픽 캐릭터를 내세운 게임들이 대거 전시됐다.
MMORPG '뮤'로 유명한 웹젠은 기출시작 '라그나돌: 사라진 야차 공주', '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서!' 2종에 차기작 '테르비스'까지 서브컬처 게임으로만 부스를 채웠다. 한국의 빅게임 스튜디오와 중국의 하이퍼그리프, 쿠로게임즈 등은 지난 9월 서브컬처 본산 일본의 도쿄 게임쇼에서 자사 서브컬처 게임을 선보인 데 이어 2개월 만에 한국에서도 비슷한 행보를 이어갔다.
현장 이벤트에서도 매년 볼 수 있었던 코스프레 모델들의 활동은 물론, 넷마블이 유명 버추얼 걸 그룹 '이세계아이돌'을 게스트로 초청하는 등 서브컬처 팬들을 위한 접근이 눈에 띄었다. 지스타조직위원회는 올해 처음으로 '서브컬처 페스티벌' 전용관을 신설, 팬들의 2차 창작 굿즈를 판매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스타와 참가사들이 이렇게까지 서브컬처에 포커스를 맞춘 이유는 게임사들이 서브컬처 게임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한 데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국내 게임업계는 그간 '최고의 매출 효자는 모바일 MMORPG'라는 말이 공식처럼 통용됐다. 상당수의 MMORPG들은 흔히 '공성전'으로 대표되는 이용자들의 그룹 단위 경쟁을 핵심 콘텐츠로 한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들이 보다 쉽게 강해지는 요소를 과금을 통해 제공하는 것이 핵심 비즈니스 모델(BM)이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국내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선 '원신'이나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와 같은 해외 서브컬처 게임들이 모바일 MMORPG들을 꺾고 매출 1위에 오르는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또 넥슨의 '블루 아카이브'나 시프트업의 '승리의 여신: 니케' 등 국산 서브컬처 게임들이 일본 애플 앱스토어 매출 1위에 수차례 오르기도 했다.
앞서 언급한 게임들은 미소년·미소녀들의 캐릭터적 매력을 부각하고, 이들을 수집·육성하는 과정에서 과금이 필요한 형태로 BM을 설계했다. 온라인 상호작용 요소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설령 있다 해도 그룹 단위 실시간 상호작용이 아닌 개개인의 랭킹 경쟁 형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MMORPG가 곧 매출 효자'라는 공식이 깨지고 있는 셈이다.
국산 MMORPG를 대표하는 '리니지' 원작사 NC의 김택진 대표는 개막 당일 지스타 현장에서 "게임 고객들 사이에 새로운 세대가 들어오는 것이 체감된다"며 "서브컬처와 같이 소외됐던 장르가 주류로 편입되는 모습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넷마블이 16일 선보인 이세계아이돌 '데미스 리본' 시연 행사는 1인 미디어 플랫폼 트위치에서 1만2000명이 동시 시청, 당일 국내 최대 시청자 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현섭 넷마블 뉴미디어 팀장은 "올해는 특히 서브컬처 콘텐츠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체감되는 해"라고 평했다.
서브컬처 신작 '테르비스'을 개발하고 있는 웹젠 자회사 웹젠노바의 천삼 대표는 "10년, 20년 후에도 사랑받는 게임사로 자리 잡기 위해 새로운 장르의 게임을 선택했다"며 "다양한 게이머들에게 게임을 알리고 싶으며 한국·일본 등 아시아, 나아가 미국·유럽 등 서구권 시장까지도 진출하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