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NC)가 12년 동안 쌓아온 인공지능(AI) 역량을 산업 전선에 본격적으로 투입한다. 회사를 대표하는 게임 사업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디지털 휴먼(가상인간), 모빌리티, 공공 분야까지 다방면으로 AI 기술 사업 전개에 나섰다.
항공기상청은 최근 항공 운항을 위한 기상 예보·위험 감시 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민간 AI 기술의 힘을 빌릴 것을 결정했다. 지난달 26일 공개된 파트너사는 다름 아닌 NC였다.
이번 협업의 목표는 국내 7개 공항 별 관측·예보 데이터를 손쉽게 처리, 예보문 형태로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NC가 보유한 대규모 자연어 생성 AI 모델은 예보문을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정확한 정보를 담은 문장으로 구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NC는 올해 AI 분야에서 연달아 실질적 사업으로 이어지는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지난달 초에는 차량 운전자를 위한 AI 뉴스 낭독 서비스 구축을 위해 연합뉴스·드림에이스와 3자 협업을 체결했다. 올 3월에는 경상북도연구원(GDI)의 신라왕경 디지털 복원 사업의 핵심 파트너사로 지정됐다.
같은 달 말 미국 GDC(게임 개발자 콘퍼런스)에선 NC의 AI 디지털 휴먼 제작 기술로 김택진 NC 대표를 재구성한 이른바 '버추얼 TJ'와 차기작 '프로젝트M'의 예고 영상이 공개됐다.
이 게임은 세계적인 3D 그래픽 콘텐츠 제작 툴 '언리얼 엔진' 개발사 에픽게임즈의 팀 스위니 대표로부터 "이런 게임을 만드는 곳이 한국에 있을 줄이야"라며 극찬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NC는 1997년 3월 설립된 이래 넥슨·넷마블과 더불어 이른바 '3N'으로 불리는 게임업계 터줏대감이다. 사측의 핵심 IP '리니지'는 1998년 출시된 이래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데, 특히 '리니지M'은 2017년 출시 후 6년 넘게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 톱을 지키고 있다.
게임 사업을 확실한 캐시카우(자금원)로 둔 NC는 오랜 기간 AI 역량을 축적해왔다. 2011년 2월 국내 게임업계에서 처음으로 AI 전담 조직 'AI 태스크포스(TF)'를 설립했다.
AI TF는 2016년 AI센터로 확대된 데 이어 현재 3개 부문, 10개 이상의 랩(연구실)에 약 300명의 전문 연구인력을 보유한 대형 조직으로 거듭났다. NC는 지난해 국내에서 컴퓨터 그래픽(CG)·딥러닝 AI 분야 전문가로 손꼽히는 이제희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교수를 최고연구책임자(CRO)로 영입하기도 했다.
당초 NC가 AI를 연구하던 목적은 게임 분야 기술 고도화에 집중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언급한 '프로젝트M' 외에도 2016년 블레이드 앤 소울(블소)에서 처음으로 AI 기반 콘텐츠 '무한의 탑'을 선보였다. 이는 2021년 리니지 PC판의 '거울전쟁'으로 이어졌다.
무한의 탑과 거울전쟁은 강화학습 등 AI 기술을 바탕으로 보다 사실적인 NPC(이용자가 조종하지 않는 캐릭터를 구현한 콘텐츠였다. NC는 지난해 이를 기반으로 GDC와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에서 연달아 개발자 대상 강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올 하반기 안에 NC는 자체 AI 개발 플랫폼을 통해 임직원 누구든 AI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할 방침이다. 이장욱 NC IR실장은 올 5월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서 이에 관해 "AI 기술이 회사와 고객 모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NC의 AI 조직은 현재 AI센터 외에도 자연어생성(NLP) 센터, 어플라이드(응용) AI 랩까지 크게 3원화 돼 운영되고 있다. 이렇듯 분야별로 전문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게임 외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갈 가능성도 높다.
올 6월 NC가 개최한 사내 학술 행사 NC 개발자 파티(NCDP)에선 △대화기술실: 디지털 휴먼 분야, AI 대화 기술 △비전 AI 랩: 이미지 생성 AI 기술 △그래픽 AI 랩: 얼굴 모델링·애니메이션 생성 △스피치 AI 랩 음성 인식·생성 기술 등 총 5개 생성형 AI 분야 전문 세션 발표가 이뤄졌다.
일반 콘퍼런스 세션에서도 'AI라는 새로운 붓', '생성현 AI 초보가 살아남는 법', '다국어 동시 번역 언어 모델' 등 13개 발표 중 6개가 AI 관련 발표로 채워졌다. 전문 세션을 포함하면 총 18개 중 11개, 과반수가 AI와 관련된 발표였다.
한 AI 업계 관계자는 "NC가 오랜 기간 쌓아온 AI 기술력은 게임업계는 물론 IT업계 전반으로 넓혀봐도 손꼽힐 것"이라며 "AI 기술은 본질적으로 확장성이 뛰어난 만큼, 이를 게임 분야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려는 행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평했다.
이러한 NC의 AI 기술력은 회사의 숙원인 서구권 등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전망이다. 프로젝트M과 같이 서구권에서도 주목할 만한 고품질 게임은 물론 영상·소셜 미디어 분야까지 폭넓게 공략할 수 있는 콘텐츠, 나아가 플랫폼까지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NC 측은 "거대 언어 모델, 자연어 생성, 응용 분야 확장은 물론 감정을 인지할 수 있는 멀티모달(Multi-modal) 인지, 음성 합성을 통한 감정 표현까지 가능하도록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당사의 AI 기술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 분야를 발굴,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