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이하 블리자드) 게임들의 기약 없는 중국 서비스 중단으로 이어진 넷이즈와의 결별에 있어 '번역 실수'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뉴욕 타임즈는 현지 시각 29일 "게임업계 전문가 4명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넷이즈가 화해의 의미로 보낸 제안을 사측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해 관계 단절을 선언했다"며 "이러한 사태가 일어난 원인은 번역 과정에서 일어난 착오로 짐작된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액티비전과 넷이즈 양측은 지난해 10월까지 블리자드 게임의 중국 서비스 판권 연장 협상을 두고 장기간 어려운 협상을 벌여왔다. 넷이즈 측은 양측 합작 법인을 통한 중국 서비스가 아닌 넷이즈 직접 서비스로의 전환을 요구했고, 액티비전 측은 넷이즈 측이 블리자드 게임과 더 깊이 관여되는 것을 꺼려해 이를 거부해왔다.
딩레이 넷이즈 대표는 "중국 규제 당국의 기조를 고려하면, 직접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이 이후 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협상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의견을 담은 공식 서한을 보냈다. 그런데 이것이 번역 과정에서 "직접 서비스로 전환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오도됐다.
양자 간의 차이는 긍정문이 부정문으로 바뀐 것 뿐이나, 그 뉘앙스가 크게 달라졌다. 전자는 넷이즈가 현지의 사정을 고려한 제안의 형태였다. 반면 후자는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번 인수전을 방해하겠다"는 뜻을 내포한 것으로 읽힐 가능성이 높았다.
바비 코틱 액티비전 블리자드 대표를 위시한 경영진은 이를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넷이즈 측에 "제안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5억달러(약 6495억원)를 지급해라"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결국 양 측의 협상은 11월을 기점으로 중단됐고 액티비전 측은 중국 현지 퍼블리셔사 물색에 나섰다.
양사의 협상 결렬은 넷이즈의 입장문을 통해 대중에 공개됐다. 넷이즈는 11월 중순 "양사 제휴의 주요 조건에 합의할 수 없었다"고 공식 성명했다. 이후 넷이즈는 블리자드 게임 퍼블리셔를 맡아보던 지사를 폐쇄했고, 블리자드가 제시한 "현 계약조건 그대로 계약을 6개월만 연장해달라"는 요청을 "이미 전담 부서를 폐쇄해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부했다.
블리자드의 게임들은 결국 올 1월 23일 계약 종료와 함께 서비스가 만료됐다. 블리자드 중국 지사는 "넷이즈가 우리의 6개월 연장 제안을 거부했다"고 비난하자, 넷이즈도 즉각 "타 게임사들과 3년 단위 협상을 진행한 블리자드의 이러한 주장은 적반하장"이라고 반론하는 등 여론전이 이어졌다.
뉴욕 타임즈와 인터뷰한 관계자들은 지난해 11월 '파국의 날' 이전부터 양사의 관계가 삐걱거렸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넷이즈는 2018년, 액티비전 블리자드와 '심도 있는 논의' 없이 번지 소프트웨어에 1억달러(약 1299억원)을 투자했다. 번지 소프트웨어는 당시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개발작을 전담 퍼블리셔해주던 주요 파트너사였다.
이 외에도 넷이즈는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전 임직원들이 설립한 게임사에 몇 차례 투자를 진행했다. 이로 인해 2019년 라이선스 협상 당시 '넷이즈는 액티비전 블리자드 전 임직원을 고용하거나 그들이 경영진으로 앉은 게임사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추가됐다.
2009년부터 14년간 동행해온 넷이즈와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결별은 중국 게임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넷이즈는 즉각 자사 MMORPG '역수한(영문명 Justice Online)'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W) 전 이용자들을 초청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중국 최대 게임사 텐센트는 현재 '타리스랜드' 출시를 앞두고 있는데, 이 게임은 이른바 '중국판 WoW'라는 평을 받고 있다.
게임 시장 조사기관 니코 파트너스는 "블리자드 게임이 중국에서 새로이 서비스되려면 적어도 내년은 돼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리자드의 게임을 중국에서 새로이 퍼블리셔할 파트너로는 텐센트, 퍼펙트월드 게임즈,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