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임산업협회가 발표한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이 12월 시행을 앞둔 가운데 국정감사에서 연달아 게임 속 '확률형 아이템'을 법으로 규제하자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정감사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넥슨 '메이플스토리' 확률 조작 사건 관련 질의를 위해 넥슨 창립자 김정주 NXC 전 대표와 강원기 '메이플스토리' 총괄 디렉터를 5일 공정거래위원회 감사의 증인으로 신청하며 '확률형 아이템'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연달아 국정감사가 시작된 1일부터 강신철 게임산업협회장,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 등이 참여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위정혁 학회장 등이 문체부가 직접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나서야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일정 재화를 지불하면 확률 기반 뽑기를 통해 아이템을 얻게하는 방식으로 과금을 유도하는 비즈니스 모델(BM)을 총칭하는 말로 일본에선 '가챠', 한국에선 '뽑기'나 '랜덤 박스', 서양에선 '루트 박스(Loot Box)'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한국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의 역사는 2015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 확률 공개 등을 골자로하는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내놓았고, 연달아 한국게임산업협회,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등이 내놓은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가 그 해 7월 시행됐다.
그러나 당시 개정안은 19대 국회 임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고, 자율규제 역시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넥슨·넷마블·넥스트플로어 등에 시정명령을 내리거나 올해 초 연달아 확률형 아이템 관련 논란이 터지는 등 실효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게임산업협회는 지난 5월 기존 자율규제안의 대상을 아이템에서 콘텐츠로 확대, 규제 범위도 단순 가챠에서 강화, 합성 등 다른 기능으로 확대하는 등 강화 규제안을 발표, 12월 1일 시행을 앞두고 있으나, 업계 내외로 자율 규제를 넘어 법 단위로 규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위정현 학회장은 국정감사에 참여하기 전부터 확률형 아이템 규제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다. 위 학회장은 지난 2월 '메이플스토리' 확률 조작 사건 당시 "로또 등 복권도 당첨확률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며 "자율 규제는 게이머들의 신뢰를 잃었고, 법제화를 통해 이를 보완해야한다"고 설명했다.
21대 국회에서도 여러차례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이상헌 의원이 지난해 12월,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 1월 확률 공개 등을 골자로 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고, 유동수 의원은 공개에 더해 확률 조작, 컴플리트 가챠(뽑기를 통해 특정 아이템를 모두 모아야만 더 좋은 보상을 획득할 수 있는 시스템) 금지 등을 담은 개정안을 3월 내놓았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 논의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챠'의 원조 일본은 2012년 이미 '컴플리트 가챠 금지법'을 내놓았고, 유럽 연합(EU) 또한 관련 규제를 몇 년째 논의 중인 가운데 벨기에, 네덜란드 등은 이미 2018년부터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과 비슷한 콘텐츠로 보고 관련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도 유럽 국가들처럼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규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업계 대다수의 의견이다. 게임업계의 주홍 글씨로 남은 2000년대 초반의 '바다이야기'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동수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본다면, 게임 전체가 도박 산업이라는 낙인이 찍혀 사회적 탄압의 명분이 될 수 있다"며 "게임업계의 잘못된 관행을 타파하는 것이 목표이며, 규제 논의가 게임산업 자체를 적대시하는 방향으로 가선 안된다"고 말했다.
정부 차원의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문체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많은 분들이 법제화에 공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과도한 규제가 산업 발전 저해로 이어질 수 있고, 해외 업체들과 규제 평등성 문제 등도 고려해야 한다"고 신중론을 제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챠 이력을 모두 기록으로 남기는 미호요 '원신' 등 여러 해외 게임이 투명한 확률 공개를 무기로 삼고 있어 국내 업체들도 경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율 규제를 준수하게 될 것"이라며 "법을 통한 강제화는 오히려 업체들이 규제를 우회하는 편법에 집중하게 하는 등 다른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