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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 아이의 서툰 그림, AI가 고치기 전에 원본부터 남겨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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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EBS 연구위원
AI(인공지능)는 아이의 서툰 그림을 몇 초 만에 말끔하게 고쳐 주지만, 고쳐진 그림에는 아이가 선을 긋던 흔적이남지 않는다. 그래서 서툰 그림은 고치기 전에 원본부터 남겨야 한다.
원본이 왜 필요한지 알려면, 아이의 창작에 AI가 끼어들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중국의 마카오 폴리테크닉대학교(Macao Polytechnic University)와 장난대학교(Jiangnan University) 등 공동 연구진이 2026년 9월 이 물음을 다룬 연구를 공개했다. 연구진은 논문 검색 사이트 일곱 곳에서 6401건을 찾아 걸러내, 글이나 그림을 만들어 내는 생성형 AI(generative AI)를 아이의 창의적인 활동에 쓴 연구 24편을 추렸다. 연구는 동남아시아·동아시아·북미에서 많이 나왔고, 대상은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이 가장 많았다. 글 중심 도구를 다룬 연구가 12편으로 가장 많았고, 문장을 입력하면 그림을 그려 주는 미드저니(Midjourney)나 달리(DALL-E) 같은 도구를 쓴 연구는 4편이었다. 활동은 5분짜리 대화에서 4개월짜리워크숍까지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교사·부모·연구자가 곁에서 이끌었고, 아이 혼자 AI를 쓰게 한 연구는 없었다.

일부 연구는 AI를 쓴 아이들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힘, 이야기를 지어내는 힘, 창작에 대한 자신감이 나아졌다고 보고했다. 그리기나 글쓰기가 서툰 아이도 AI의 도움을 받으면 창작에 더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연구진이 표로 정리한 연구 가운데 하나는 초등 1~6학년 24명에게 60분 동안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게 하고, 새로 만든 AI 시스템을 쓴 경우와 손으로 직접 그리고 쓴 경우를 견주었다. AI시스템을 쓴 아이들은 백지 앞의 막막함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부담이 덜했지만, 직접 그려내기보다 AI가내놓은 결과물 가운데 고르는 쪽으로 기울었고, 저학년일수록 시스템의 기본 설정에 더 많이 기댔다.

연구진은 이런 변화에 위험이 따른다고 보았다. AI에게 시키는 말에 기대는 경향, 스스로 생각하는 수고가줄어드는 일, 아이만의 목소리를 잃는 일이 그것이다. 그래서 연구진은 AI의 도움으로 낸 성과와 아이의창의성이 실제로 자라는 일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창의성 평가 기준은 AI가 창작 과정에서 한 일을 반영하지 못해 교사가 이 둘을 가려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교사에게는 AI가 창작과정에 언제, 어떻게 관여했는지 기록하고 아이가 혼자 해낸 창의성도 따로 살피라고 권했다. 부모에게는아이와 함께 AI를 쓰며 이야기를 나누라고 당부했다.
필자는 이 처방들이 한 가지 과제로 모인다고 읽는다. 아이가 스스로 해낸 부분과 AI가 거든 부분을 가르는 일이다. 연구들이 다룬 것은 아이가 AI로 글이나 그림을 만드는 장면이지, AI가 아이의 그림을 고쳐 주는 장면은 아니다. 그러나 고쳐 주는 장면에서도 물음은 같다. 이 그림에서 어디까지가 아이의 손이고, 어디부터가 AI의 손길인가. 어떤 방법의 효과를 따질 때 그 방법을 쓰지 않은 집단과 견주듯, AI의 손길을가려내려면 AI가 손대지 않은 그림과 견주어야 한다. 그 그림이 원본이다.

원본은 이 구분의 증거에 그치지 않는다. 말끔하게 고쳐진 그림만 남으면 어른의 눈에는 성과만 보이고,아이가 얼마나 자랐는지는 보이지 않는다. 지난달의 삐뚤빼뚤한 선과 오늘의 안정된 선을 나란히 놓아야비로소 성장이 보인다. 그 사이에 AI가 고친 그림이 끼어들면, 그 변화가 아이의 것인지 도구의 것인지 가려내기 어렵다. 원본이 쌓여야 아이의 성장과 AI의 성과를 따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순서는 손이 먼저, 화면은 나중이어야 한다. 아이가 먼저 그린 그림이 원본이다. AI 앱에 올리기전에 그 원본을 사진으로 찍어 두거나 종이째 보관하고, 날짜를 적어 두자. AI를 거친 그림에는 ‘AI 사용’이라고 따로 표시하고, AI는 그다음에 아이가 말로 지시하며 쓰는 도구로 자리 잡게 하자.

원본에는 아이가 한 말도 함께 남기자. 그림을 마치면 평가하는 대신 무엇을 그렸는지 묻고, 아이가 붙인이름과 대답을 그림 귀퉁이에 그대로 적어 두는 것이다. 어른이 할 일은 이름을 대신 붙여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붙인 이름을 받아 적는 것이다. 고쳐진 그림이 나오면 원본 옆에 나란히 놓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아이가 직접 말해 보게 하자. 물론 손이 서툴러 머릿속에 그린 것을 옮기지 못해 좌절하는 아이에게는 AI가 문턱을 낮춰 줄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에도 원본이 곁에 있으면 말끔한그림이 아이의 선을 통째로 덮어 버리지는 못한다.
말끔한 그림은 앞으로 얼마든지 만들어질 것이다. 서랍에 쌓인 원본은 아이가 자란 기록이자, 훗날 고쳐진그림 옆에 놓을 비교 기준이 된다. 고쳐진 그림은 몇 번이고 다시 만들 수 있어도, 고쳐지기 전의 그림은오직 한 장뿐이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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