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참여에서 지휘로
이번 인사에서 주목할 것은 단순히 ‘최초의 여성 함장’이라는 타이틀만이 아니다. 배 대령은 해군사관학교가 처음 여생도를 선발한 1999년에 입교해 27년 동안 함정 근무와 작전 경험을 축적해 왔다. 그동안 군에서 여성의 진출은 주로 여군의 숫자가 얼마나 늘어났는가, 어떤 병과까지 진출했는가라는 양적 차원에서 설명돼 왔다. 그러나 이번 인사는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변화다. 여성이 군 조직의 주변적·보조적 인력이 아니라 핵심 전력을 책임지는 지휘관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군의 역사는 “여성도 군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여성이 군의 핵심 작전부대를 어떻게 지휘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열렸다고 조직문화가 저절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2025년 국방부 조사에서 여성 군인의 85%, 특히 영관급 여성 장교의 90.9%가 육아와 군 복무를 병행하는 어려움 때문에 전역을 고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배 대령도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워킹맘’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남편과 부모가 육아를 적극적으로 맡아준 덕분에 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복을 입은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과, 육아를 기꺼이 감당해준 가족에 대한 감사도 표현했다.
이 이야기는 여군 확대에서 진짜 중요한 문제가 단순한 ‘모집’이 아니라 ‘지속 복무’임을 보여준다. 여성이 입대할 수 있도록 문을 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들이 장기간 경력을 이어가며 주요 보직을 경험하고 고위 지휘관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배 대령의 함장 임명은 27년 전 여생도에게 문을 열어준 제도적 변화가 오랜 경력 축적과 가족의 지원을 거쳐 하나의 결실로 나타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중 구속을 넘어서는 심리적 자원, 양성성
배 대령의 독도함 함장 취임은 사회심리학에서 활발하게 연구해온 ‘양성성(androgyny)’이라는 개념의 유용성을 다시 한번 주목하게 해준다. 군 조직은 전통적으로 결단력, 공격성, 통제력, 독립성, 자기주장성과 같이 흔히 ‘남성적’이라고 분류돼온 특성을 중요하게 여겨 왔다. 여성 장교가 이런 조직에서 지휘 능력을 인정받으려면 강인함과 단호함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사회는 동시에 여성에게 배려와 온화함, 관계지향성과 같은 전통적인 여성적 특성도 기대한다. 여기서 여성 지휘관이 경험하는 독특한 어려움이 발생한다. 강하게 지휘하면 “너무 차갑고 공격적이다”라는 평가를 받고, 부드럽게 관계를 중시하면 “지휘력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기 쉽다.
이것이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이중 구속(double bind)’의 한 형태다. 남성 지휘관에게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행동이 여성 지휘관에게는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상황이다.
필자는 대학원 과정에 입학한 유능한 장교들을 지도했다. 국방부와 각 군은 필요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장교를 선발해 일반 대학원에 위탁교육생으로 보낸다. 필자의 전공인 심리학 분야에도 여러 장교가 와서 대학원 과정을 밟았다.
그 가운데 한 여성 장교가 ‘여성 군인의 양성성’을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다. 당시만 해도 여성이 군인이 되면 여성성이 낮아지고 남성성이 높아져 ‘여성다운 매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적지 않았다. 여성들이 군인의 길을 선택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심리적 요인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연구에서 던진 중요한 질문은 매우 단순했다.
“과연 여군은 남성성이 높고 여성성은 낮은가?”
연구 결과는 흥미로웠다. 여군들은 독립성, 결단력, 자기주장성과 같이 전통적으로 남성적이라 여겨지던 특성을 높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온정성, 공감성, 관계지향성과 같은 여성적 특성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여군 장교들은 여성성뿐만 아니라 남성성도 동시에 높았다. 즉 여군은 ‘남성화’된 것이 아니라 ‘양성화’되고 있었다. 여성성을 잃고 그 자리에 남성성이 들어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심리적 특성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심리적 자원을 더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은 서로 반대인가
이 연구의 학문적 의미는 단순히 “여군도 여성성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 있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서로 반대되는 하나의 축으로 보아온 전통적인 성역할 관점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여성성과 남성성을 하나의 막대기 양끝에 있는 단일 차원의 특성처럼 생각해 왔다. 마치 어린이 놀이터에 있는 ‘시소’처럼 한 쪽이 올라가면 다른 쪽은 자동적으로 낮아지는 것을 생각했다. 따라서 여성성이 높아지면 남성성은 낮아지고, 남성성이 높아지면 여성성은 낮아진다고 여겼다.
그러나 양성성 이론에서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서로 독립된 두 차원으로 본다. 한 사람이 남성성도 높고 여성성도 높을 수 있고, 반대로 둘 다 낮을 수도 있다. 이 가운데 남성성과 여성성이 모두 높은 사람을 ‘양성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결단력과 공감 능력, 독립성과 관계지향성, 통제력과 돌봄 능력은 서로를 감소시키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다. 한 사람 안에서 함께 발달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심리적 자원이다. 여군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바로 이 사실을 정확히 확인해 주었다.
sex와 gender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
이 논의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심리적 성(gender)의 차이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Sex는 염색체와 호르몬, 생식기관 등 생물학적 특성에 근거한 성을 의미한다. 반면 gender는 사회와 문화가 남성과 여성에게 부여하고 기대하는 역할, 행동양식, 성격 특성과 관련된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sex와 gender를 혼동할 경우 사회적으로 학습된 성역할을 마치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본성처럼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이다. “여성은 본래 지휘력이 약하다”거나 “남성은 본래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식의 통념이 여기에서 나온다. 물론 그렇다고 생물학적인 성차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차이가 생물학적 조건과 관련돼 있고, 어떤 차이가 사회와 문화의 학습을 통해 형성됐는지를 구별하는 것이다.
현대의 리더에게 필요한 능력
양성성이라는 개념은 오늘날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과거의 리더십은 명령과 통제, 결단과 추진력을 중심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대 조직은 훨씬 복잡하다. 좋은 지도자는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하게 판단하고 단호하게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평소에는 구성원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목표를 향해 조직을 강하게 이끌어 가면서도 갈등이 발생하면 관계를 조정해야 하고, 성과를 요구하면서도 구성원의 소진과 정신건강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인 성역할의 언어를 빌리자면 앞의 능력은 ‘남성적’이고 뒤의 능력은 ‘여성적’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좋은 지도자는 이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사람이 아니다. 단호하면서도 따뜻하고, 추진하면서도 경청하며, 경쟁하면서도 협력하고, 지휘하면서도 돌볼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은 양성성이 중요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에는 남성에게서 감수성이나 부드러움, 공감과 같은 특성이 나타나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평가하곤 했다.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되고,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 결과 많은 남성이 자기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거나,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며,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하는 능력을 충분히 발달시키지 못하기도 했다. 여성에게 결단력과 자기주장성이 더해지는 것이 성숙이라면, 남성에게 공감과 돌봄 능력이 더해지는 것 역시 성숙이다. 양성성이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 성의 차이가 한 사람이 발달시킬 수 있는 심리적 가능성의 한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앞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은 여성 함장의 탄생이 더 이상 특별한 뉴스가 되지 않는 사회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는 남성과 여성 모두가 성역할의 좁은 틀을 넘어 자신 안의 다양한 가능성을 충분히 발달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해진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