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그러나 이 거인이 몸을 한번 뒤척이면 세계 경제는 천지가 뒤흔들리는 대혼돈에 빠져들게 된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미국의 국채금리가 흔들리면서 뉴욕증시는 물론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채권을 처음 접할 때 가장 혼란스러운 대목은 "금리가 올랐는데 왜 채권 투자자는 손실을 보는가?"라는 점이다. 흔히 금리가 오르면 이자를 더 많이 받으니 이득이라 생각하기 쉽다. 채권 시장의 원리는 철저한 '시소게임'이다. 한쪽이 올라가면 반대편은 반드시 내려앉는다.
직관적인 예시를 한번 들어보자.어느 날 액면가 1만 달러, 연이율 2%짜리 10년 만기 미국 국채를 샀다고 가정하자. 매년 200달러의 이자를 받으며 만기에 원금을 돌려받는 구조다. 은행 예금 금리가 1%도 안 되던 시절에는 충분히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이때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자 재무부가 새로 찍어내는 국채 금리를 5%로 책정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누구나 1만 달러로 매년 500달러의 이자를 주는 새 국채를 살 수 있게 되었다. 손에 쥔 2%짜리 구형 국채는 액면가인 1만 달러에는 아무도 사지 않는다. 500달러를 주는 신제품이 넘쳐나는데, 200달러만 주는 헌 채권을 제값에 살 매수자는 없다. 결국 이 채권을 팔아 현금화하려면 가격을 깎아야 한다. 1만 달러짜리를 7천~8천 달러로 낮춰 팔아야만, 매수자 입장에서 "가격이 저렴하니 만기까지 보유하면 총수익률이 5%에 맞춰진다"고 판단해 거래에 응한다. 이것이 바로 "채권금리가 폭등하면 기존 채권의 가격은 폭락한다"는 채권 이론의 제1원칙이다.
미국 국채금리가 1~2%대에서 4~5%대로 치솟았다는 것은, 안전자산이라 믿고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사 모았던 미국 국채의 평가 가치가 대규모로 삭감되었음을 의미한다. 지금 미국 국채금리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어 요동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인플레 때문이다. 미국 정치권의 과도한 재정 지출과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의 귀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채도 본질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부채 증서다. 수요보다 공급이 많으면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른다. 미국 정부는 팬데믹 이후에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등 천문학적인 재정 지출을 지속했다. 세수는 부족하고 지출은 늘어나니 재무부는 매주 막대한 국채를 찍어냈다.
과거 이 물량을 받아주던 핵심 주체들은 국채시장을 이탈했다.연방준비제도(Fed)는 양적완화(QE)를 멈추고 보유 자산을 매각하는 양적긴축(QT)을 단행하고 있다.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도 미국 국채에서 손을 떼고 있다. 미·중 갈등 속에 중국은 미 국채 보유량을 대폭 줄였다. 일본은 자국 통화 방어를 위해 매수 여력이 제한되었다.공급은 쏟아지는데 대형 매수자가 줄어드니 국채 가격을 낮추고 금리를 올려야만 물량이 소화되는 국면이 전개되었다.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의 부활도 국채파동의 요인이다. 기간 프리미엄은 "만기가 긴 채권을 보유할 때 감수해야 하는 미래 불확실성에 대한 보상금"이다. 내일 돌려받는 돈과 10년 뒤 돌려받는 돈의 위험은 완전히 다르다. 향후 물가가 얼마나 오를지, 정부 재정 건전성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과거 저물가 시대에는 장기적인 안정에 대한 신뢰 덕에 이 프리미엄이 거의 0에 가까웠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와 물가 변동성을 목격한 채권 투자자들은 태도를 바꿨다. 10년 동안 달러 가치가 보존될지 불확실하므로, 장기 채권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더 높은 위험 프리미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 보상 심리가 장기 금리를 밀어 올리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세계 금융 시장에서 모든 자산 가치평가의 기준점이자 글로벌 무위험 수익률로 통한다. 이 금리의 급등은 전 세계 자산 시장에 '중력'을 복원시켰다.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 가치로 환산할 때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할인율이 바로 국채금리다. 분모인 금리가 1%에서 5% 수준으로 치솟으면, 먼 미래의 성장성에 기대던 기술주와 혁신 기업의 현재 가치는 대폭 하락한다. 회사채 발행 금리는 국채금리에 기업 신용 가산금리를 얹어 결정된다. 기준선 자체가 올라가자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은 7~8%대로 치솟았다. 이익으로 이자도 내지 못하는 한계기업들의 생존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달러 빚을 진 신흥국들은 상환 부담으로 통화 위기 압박을 받았다. 각국 중앙은행 역시 자본 유출과 환율 방어를 위해 금리를 높여야 했고, 이는 곧바로 일반 가계의 주택담보대출과 자영업자의 차입 비용 부담으로 이어졌다.
공짜 점심은 없다. 정부가 자국 통화로 빚을 무한정 늘려도 문제가 없다는 환상은 깨졌다. 무분별한 포퓰리즘 재정 지출은 국채 공급 과잉과 물가 불안을 부르고, 결국 금리 폭등이라는 시장의 응징을 초래한다. 방만한 부채의 대가는 더 높은 차입 비용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온다. 절대적인 안전자산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국채가 디폴트 위험에서 자유롭다고 해서 가격 변동 위험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산의 만기 구조와 유동성을 철저히 관리하지 않고 단지 '미국 국채'라는 이름만 믿는 투자는 치명적인 위험을 낳는다. 리스크 관리는 신용 위험뿐 아니라 듀레이션 관리까지 포함해야 완성된다.
초저금리와 무제한 유동성에 의존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자본은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확보할 수 있는 희소 자원이다. 실질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하는 사업 모델은 도태되며, 높은 이자 비용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는 냉정한 환경이 정착되었다. 1990년대 백악관 정치 참모 제임스 카빌은 "다시 태어난다면 채권 시장으로 태어나고 싶다. 채권 시장은 누구든 위협하고 굴복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채권이 그만큼 무섭다는 이야기다.
케빈 워시가 잭슨홀에서 금리인상의 신호를 낸 것도 알고 보면 국채 때문이다. 워시는 기본적으로 대왕 비둘기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인하 요구에 부응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역설적으로 케빈워시의 무리한 비둘기파 행보가 국채의 반란에 불을 지폈다. 인플레 상황에서도 연준이 계속 비둘기파 신호를 내자 시장에서는 물가가 오히려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장기 국채를 마구 던진 것이다. 트럼프의 과도한 개입이 국채 폭탄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당황한 케빈 워시가 뒤늦게 잭슨홀에서 금리인상의 매파 신호를 냈으나 이미 늦은 감이 있다. 장기 국채금리는 연준의 금리인상만으로 돌아서지 않는다. 인플레를 잡겠다는 확실한 시그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시장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