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캐리 청산보다 더 무서운 미국 국채폭... 탄 베센트 공개 압박... 알고보니 " 트럼프 중간선거용"
이미지 확대보기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선이 다시금 미국 워싱턴과 도쿄로 쏠리고 있다. 스콧 베선트(Scott Bessent) 미국 재무장관이 일본은행(BOJ)을 향해 이례적으로 기준금리를 신속히 올리라고 공개 압박을 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표면적으로는 엔화 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져 미국의 무역적자가 늘어나고 있으니 환율을 정상화하라는 통상적인 요구처럼 들린다.
그러나 국제 금융의 복잡한 수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본질이 숨어 있다. 베선트 장관의 칼끝이 향하고 있는 진짜 과녁은 바로 '미국의 장기 국채 시장'이다.미국 정부의 빚더미와 국채 이자 부담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지금, 워싱턴은 자국의 10년물·30년물 장기 국채를 안정적으로 소화해 줄 거대한 전주(錢主)가 절실하다. 일본이 기준금리 인상을 미적거리면서 촉발된 채권 시장의 왜곡이 미국의 국채 판매와 국가 재정을 정면으로 위협하자, 베선트 장관이 직접 나서서 일본의 금리 인상을 강요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겉으로는 동맹국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흔드는 외교적 결례로 보이지만, 실상은 미국 국채 시장의 연쇄 붕괴를 막고 국채를 순조롭게 팔아치우기 위한 고도의 치밀한 '국채 방어 작전'이다.
1. "엔저를 그냥 두면 안 되나?"… 일본이 방치할 수 없는 4대 뇌관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일본이 엔화 가치 하락(달러-엔 환율 급등)을 마냥 방치하면, 일본 정부가 미국 국채를 굳이 내다 팔아 엔화를 지킬 필요도 없고 미국 채권 시장도 평온할 텐데, 왜 굳이 엔저를 기를 쓰고 막아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일본 정부에게 '엔저 방치'는 국가 경제의 숨통을 스스로 끊는 자살골이나 다름없다.첫째, 밥상 물가와 에너지 비용의 폭등이다. 일본은 공장을 돌리고 전기를 만드는 원유·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90% 이상, 매일 먹는 식량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수입한다. 엔화 가치가 바닥으로 추락하면 수입 원자재 가격이 통제 불능으로 치솟아 국민들의 실질 소득을 갉아먹고 내수 소비를 완전히 파괴한다. 이는 현직 내각의 지지율 급락과 정권 붕괴로 직결된다.
둘째, 일본 국가 재정의 '이자 폭탄'이다. 엔저를 방치해 물가가 뛰면 돈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본 국채 매도세가 번지고 결국 일본의 장기금리가 폭등한다. 일본의 국가부채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60%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장기금리가 1%포인트만 올라도 일본 정부가 매년 갚아야 할 국채 이자가 수조 엔 단위로 폭증해 나랏빚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셋째, '엔화 엑소더스(자본 도피)'다. 정부가 통화 가치 하락을 손놓고 방치한다는 신호를 주면, 일본 내 거액 자산가와 대기업들마저 엔화를 버리고 달러나 해외 자산으로 돈을 빼돌리는 국부 유출이 일어난다.
넷째, 국제사회의 무역 보복과 환율 전쟁 위험이다. 엔화 초약세는 일본 수출 대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인위적으로 높여 미국의 무역적자를 키운다. 아울러 원화와 위안화 등 아시아 주요 통화의 연쇄 평가절하를 촉발해 글로벌 금융 시장 전체를 혼란으로 몰아넣는다.결국 일본 정부는 엔저를 결코 방치할 수 없으며, 미국 국채를 팔아서라도 환율을 막거나 기준금리를 올려 엔화를 방어해야만 하는 '외통수'에 갇혀 있는 것이다.
2. 엔화 폭락이 부르는 악몽: 일본 정부의 미국 국채 강제 투매
바로 이 대목에서 미국 재무부의 직접적인 공포가 시작된다.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고 제로금리 수준에 묶어두면, 미국과의 극단적인 금리 격차 때문에 달러 가치는 치솟고 엔화 가치는 160엔을 훌쩍 넘어서며 바닥을 모르고 추락한다.앞서 짚었듯 엔저를 방치할 수 없는 일본 정부는 외환시장에 뛰어들어 엔화를 사들이고 달러를 풀어야 한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보유한 1조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의 대부분은 현금 달러가 아니라 '미국 장기 국채' 형태로 금고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일본 외환당국은 엔화를 사들일 실탄을 마련하기 위해 수중에 쥐고 있는 미국 장기 국채를 글로벌 채권 시장에 수백억 달러씩 강제로 내다 팔아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일본은 전 세계에서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들고 있는 단일 국가 기준 '최대 채권국'이다. 이런 일본이 엔화를 지키겠다고 미국 국채를 대거 투매하기 시작하면, 가뜩이나 발행량이 넘쳐나 취약해진 미국 장기 국채 가격은 곤두박질치고 국채 금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하게 된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국채 금리의 폭등은 곧 국가 부도 위험의 증가이자 천문학적인 이자 비용의 폭증을 의미한다.따라서 베선트 장관은 일본을 향해 "외환보유액인 미국 국채를 내다 팔아 엔화를 방어하는 땜질 처방을 당장 멈추고, 본질적인 처방인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해 엔화 가치를 스스로 끌어올려라"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3. 일본의 물가 통제 실패
두 번째 핵심 이유는 일본 내 물가 폭등이 초래한 '글로벌 국채 매수 세력의 대이동'에 있다.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 시기를 실기(失期)하면서 일본 내 물가가 통제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지 못한다는 불신이 퍼지자 시장의 채권 투자자들은 돈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장기 채권을 내던졌고, 그 결과 일본의 10년물·30년물 장기국채 금리가 수십 년 만의 최고치로 치솟는 기현상이 발생했다.일본 장기국채 금리가 이례적으로 급등하자 글로벌 채권 시장의 자금 흐름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미국 국채의 가장 충성스러운 큰손 매수자였던 일본의 생명보험사, 농림중앙금고, 연기금 등 막대한 자산가들이 더 이상 미국 국채를 살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된 것이다.과거에는 일본 국내 금리가 0%였기 때문에 환전 수수료와 환율 변동 위험(환헤지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미국 국채를 사들였다. 그러나 일본 장기국채 금리가 자체적으로 매력적인 수준까지 오르자, 굳이 막대한 위험 비용을 치르며 바다 건너 미국 국채를 살 필요가 사라졌다. 일본과 글로벌 채권 매수 세력은 미국 국채 매수를 전격 중단하고 일본 장기국채로 눈길을 돌렸다.
미국 재무부로서는 가장 든든했던 국채 단골손님을 눈앞에서 빼앗긴 셈이다. 이로 인해 미국 장기 국채를 사줄 사람이 사라지며 미국 국채 가격이 폭락하고 장기 금리가 동반 폭등하는 '전이(Spillover) 충격'이 발생했다.베선트 장관이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하는 속내는 여기에 있다.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적시에 올려 "물가를 확실히 잡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주어야만, 일본 장기채 시장의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발작과 장기금리 폭등을 진정시킬 수 있다. 일본 장기 채권 시장의 비정상적인 발작이 가라앉아야만 미국 국채 시장으로 글로벌 투자 자금을 다시 유인해 올 수 있다는 계산이다.
4. 겉보기의 모순과 미국의 진짜 셈법
금융시장의 일각에서는 이러한 분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일본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엔화 대출을 받아 미국 자산에 투자했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일본으로 돌아가 미국 국채 매수세가 더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다.이것은 일견 타당한 지적이지만, 미국 재무부가 마주하고 있는 '냉혹한 양자택일'의 무게를 간과한 시각이다.
미국 재무부의 시야에는 두 가지 악재가 놓여 있다. 하나는 일본이 금리를 올리지 않아 엔화가 무너지고 일본 정부가 미국 국채를 시장에 마구잡이로 내던지는 '돌발적이고 통제 불가능한 국채 폭락'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이 금리를 올려 민간 자금이 서서히 본국으로 회귀하는 '예측 가능하고 완만한 자금 이동'이다. 베선트 장관의 판단은 명확하다. 일본 정부가 엔화 방어를 위해 수백억 달러의 미국 국채를 일시에 시장에 쏟아붓는 것은 미국 금융 시스템을 일거에 마비시킬 수 있는 핵폭탄급 재앙이다.
이에 반해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하면서 발생하는 민간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회수는 미국의 통화정책과 재무부의 국채 바이백(Buyback, 국채 조기 환매) 프로그램 등을 통해 충분히 관리하고 흡수할 수 있는 '통제 가능한 비용'이다.결국 미국은 국채 시장의 파멸적인 급변동을 피하기 위해, 다소의 자금 유출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을 밀어붙이는 차악(次惡)의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5. 일본 통화정책 회의의 운명과 글로벌 금융시장의 향방
미국 재무부의 노골적인 압박에 따라 공은 이제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이끄는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로 넘어갔다. 일본은행은 그동안 자국 내 경기 회복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금리 인상의 속도를 최대한 늦추며 눈치를 보아왔다.그러나 세계 기축통화국이자 최대 동맹국인 미국의 재무장관이 '국채 시장 안정'이라는 생사가 걸린 국익을 앞세워 공개적인 최후통첩을 보낸 이상, 일본은행이 이를 마냥 외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일본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진통이 불가피하다.
수십 년간 글로벌 시장을 떠돌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청산되면서 미국 주식시장과 고위험 자산 시장에서 일부 가격 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그러나 장기적인 시각에서 미국 정부가 노리는 종착지는 뚜렷하다. 일본의 금리 인상을 통해 엔화 초약세를 진정시키고, 일본 정부의 미국 국채 매각 리스크를 원천 봉쇄하며, 한미일 간의 과도한 금리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렇게 채권 시장의 극단적인 변동성을 가라앉혀야만 미국 재무부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신규 장기 국채를 안정적인 가격에 전 세계에 다시 내다 팔 수 있는 튼튼한 토대를 확보하게 된다.스콧 베선트의 이번 발언은 단순한 환율 잔소리가 아니다. 달러 패권의 핵심 기둥인 '미국 국채 시장의 붕괴'를 막아내고, 거대한 빚을 진 미국 정부의 국채 판매 활로를 뚫기 위해 동맹국의 중앙은행을 정밀 타격한 치밀한 거시금융 전략의 일환이다. 도쿄의 금리 결정 뒤에 숨어 있는 워싱턴의 절박한 국채 수급 계산법을 읽지 못한다면, 앞으로 전개될 글로벌 자금 대이동과 환율 급변의 파고를 결코 정확히 진단할 수 없다. 일본 엔캐리청산보다 지금 더 급한 것은 미국 국채대란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