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버핏은 "전 세계 인구 80억 명 가운데 내가 가장 운 좋은 열 사람 안에 들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20세기 최강대국 미국에서, 그것도 기득권을 쥔 백인 남성으로 태어난 것, 주식 중개인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투자에 눈을 뜬 것, 자신의 재능이 유난히 높은 보상을 받는 시대와 사회를 살아온 것, 건강하게 장수한 것—이 모두가 스스로 선택하거나 노력해서 얻은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배관공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기회는 얻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이를 '자궁 로또(Ovarian Lottery)'라 불렀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당첨 여부가 갈리는 복권이라는 뜻이다.
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자신과 타인의 행동이나 결과에 원인을 부여하는 과정을 '귀인(歸因)'이라 부른다. 시험에 합격했을 때 "내가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라 여기거나, 사업에 실패했을 때 "경기가 나빴기 때문"이라 해석하는 것 모두가 귀인이다. 귀인 이론은 인간이 자신이나 타인의 행동 및 어떤 사건의 결과에 대해 그 원인을 어떻게 추론하고 귀인(attribute)시키는지를 탐구하는 사회심리학의 대표적인 이론이다.
이 이론을 체계화한 심리학자 버나드 와이너(Bernard Weiner)는 성취와 실패의 원인을 능력, 노력, 과제의 난이도, 운으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세 기준으로 살폈다. 첫째는 원인이 개인의 내부에 있는가, 외부에 있는가 하는 '소재'다. 능력과 노력은 내부 요인이고, 과제의 난이도와 운은 외부 요인이다. 둘째는 그 원인이 지속적인가 일시적인가 하는 '안정성'이다. 능력은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노력과 운은 상황에 따라 변한다. 셋째는 개인이 그 원인을 조절할 수 있는가 하는 '통제 가능성'이다. 노력은 상당 부분 통제할 수 있지만, 타고난 조건이나 운은 통제하기 어렵다.
버핏이 언급한 요인들을 이 틀에 대입해 보면 구조가 선명해진다. 미국이라는 국가적 배경, 인종과 성별에 따른 기득권, 주식 중개인 아버지를 둔 가계 환경은 모두 개인의 바깥에 있는 외적 요인이다. 어느 나라에서,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조건으로 태어날 것인가는 의지나 노력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주를 완전히 벗어난다. 반면 그가 11세에 첫 주식을 매수한 이래 수십 년간 기업의 내재 가치를 분석하고 자신의 원칙을 지켜온 것은 내적이고 통제 가능한 노력이었다. 버핏은 그 노력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밭 자체가 이미 사회가 건넨 행운이었음을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귀인이 중요한 이유는 어디에 귀인하느냐에 따라 그다음의 감정과 행동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성공을 노력에 귀인하는 사람은 노력이 스스로 조절 가능한 것이기에 자기효능감과 통제감이 높아지고, 다음에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더 높은 목표에 도전한다. 실패하더라도 노력의 양이나 방법을 바꾸려 한다. 교육에서 능력보다 노력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성공을 지나치게 노력으로만 설명하면 어두운 면도 따라온다. 자신의 성공을 전부 다 노력의 결과라고 믿는 사람은 타인의 실패도 노력 부족으로 판단하기 쉽다. "나도 어려웠지만 노력해서 성공했는데, 저 사람은 왜 못했는가." 부모의 경제력과 교육 기회, 건강, 사회적 차별, 우연한 만남처럼 개인이 선택할 수 없었던 조건은 간과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능력주의(Meritocracy)의 함정이다.
반대로 성공을 운에 귀인하면 감사와 겸손의 마음을 가지기 쉽다. 자신이 누린 기회와 타인의 도움을 기억하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형편도 더 세심히 살핀다. 하지만 모든 결과를 운으로만 설명하면 자기효능감이 낮아지고 수동적이 될 수 있다. "이번에는 운이 좋았을 뿐"이라 생각하면 다음 도전이 두려워지고, 실패했을 때도 자신의 판단과 노력을 돌아보기보다 운만 탓하게 된다.
사람은 보통 이 두 귀인을 공정하게 적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성공은 능력과 노력 같은 내부 요인으로 돌리고, 실패는 운이나 환경 같은 외부 요인으로 돌리는 경향을 심리학에서는 '자기본위적 귀인 편향(Self-Serving Bias)'이라 부른다. 성공하면 "내 실력"이고 실패하면 "운이 없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한다’라는 속담이 정확히 이 편향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편향은 자존감을 지켜주지만, 지나치면 자신의 한계를 보지 못하게 하고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게 한다.
요즘 과열되고 있는 주식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단기적으로 성공을 거둔 투자자가 상승장이라는 외적·환경적 요인을 자신의 탁월한 감각으로 착각하는 것을 '기본적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라 하는데, 우연한 성공을 실력으로 오인하는 순간 자신감은 과신으로, 과신은 더 큰 파국으로 이어지곤 한다.
버핏의 고백이 특별한 까닭은 성공한 사람이 흔히 보이는 이 귀인 편향을 정면으로 거슬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평생 수많은 기업 자료를 읽고 분석했다. 군중의 흥분에 휩쓸리지 않았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기업에만 투자했으며, 좋은 기업을 산 뒤에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세계적인 부자가 된 뒤에도 같은 집에서 살고, 출근길에 맥도날드에서 간단한 아침을 해결하며, 콜라와 햄버거를 즐기는 생활 방식을 유지했다. 이를 단순히 억만장자의 검소함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그의 생활과 투자에는 단순함, 일관성, 낮은 과시욕이라는 공통된 성향이 흐른다. 생활에서는 익숙한 도시와 일상을 지켰고, 투자에서는 자신이 이해하는 사업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남보다 화려한 것을 먼저 발견했다는 평가를 받기보다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편을 택했다. 이런 성향이 시장에서 자신의 탁월함을 증명하려는 충동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버핏을 세계적인 부호로 만들어준 복리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계산이 아니라 기다리는 일이다. 시장이 오르면 탐욕이 생기고, 떨어지면 공포가 밀려온다. 버핏의 강점은 감정이 없었던 데 있지 않고, 감정이 판단을 지배하지 못하게 한 데 있었다. 행운이 좋은 밭을 제공했고, 능력과 노력이 그 안에서 싹을 틔웠으며, 단순함과 인내와 절제라는 성품이 그 열매를 수십 년 동안 복리로 키운 것이다.
귀인의 방향은 개인의 도덕적 태도와 사회적 책임감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부가 통제 불가능한 외적 행운에서 비롯되었음을 깊이 인식한 사람은 '부채 의식'과 겸손을 갖게 된다. 자신이 누린 자산이 사회라는 공동체가 마련해준 기회의 장에서 잠시 위탁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에 이르기 때문이다. 버핏이 재산의 99% 이상을 생전이나 사후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고, 2006년부터 해마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주식을 기부해온 행보는 단순한 시혜가 아니다. 이는 자신이 축적한 부를 오직 개인적 능력의 산물로 여기지 않은 데서 나온, 논리적이고 윤리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성공을 전적으로 자신의 공로라 주장하지도 않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지도 않는다. "나는 노력했고 능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노력할 기회와 그 노력이 결실을 거둘 조건까지 내가 만든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이 귀인은 자신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오만에 빠지지 않게 한다. 겸손한 사람은 성공할 때 운과 타인의 도움을 기억하고, 실패할 때는 자신의 판단 착오와 노력 부족을 성찰하되 통제할 수 없었던 환경과 불운의 몫도 구분한다. 그래서 성공 앞에서 교만하지 않고, 실패 앞에서 자신의 존재 전체가 무너졌다고 여기지도 않는다.
버핏의 "나는 운이 좋았다"는 말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 것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조건까지 내가 만든 것은 아니다"라는 성숙한 자기 이해다. 성공의 원인을 오로지 자신에게서만 찾을 때 오만과 격차는 정당화되지만,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이 외부에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연대와 환원의 길이 열린다.
행운은 기회를 주고, 노력은 그 기회를 현실로 만든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행운을 타인과 사회에 돌려주는 책임감이 그 성공을 완성한다. 217조 원이 넘는 부를 이룬 워런 버핏이 한 세기에 가까운 삶으로 보여준 것은, 결국 투자 기술 이전에 자신이 누린 행운을 직시할 줄 아는 통찰과 그에 응답하는 책임감이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우리 사회는 지금 극심한 혼돈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자신의 성공을 능력으로 돌리는 오만함이 횡행하고 편법을 사용해서라도 사익을 달성하는 것이 실력인 것처럼 치부하는 뻔뻔함이 판을 치는 미성숙한 사회에서 워런 버핏이 보여주는 삶의 지혜는 찌는 무더위에 얼음물과 같은 시원함을 선사한다.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