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추석이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오직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있다. 오곡백화가 무르익는 연중 가장 풍성한 축제의 장이다. 음력 8월 15일을 전후하여 아시아의 밤하늘은 장엄한 만월(滿月)로 물든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의 농경인들은 가을밤 떠오르는 둥근 달을 바라보며 한 해의 결실을 가늠하였고, 하늘과 조상 앞에 고개를 숙였다.
한 꺼풀 벗기고 속으로 들어가보면 추석도 나라마다 문화와 전통이 사뭇 다르다. 달빛이 지상에 닿아 빚어낸 것이지만 막상 땅에 내려와서는 나라마다 많이 달라졌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세 문명의 의례와 식탁의 풍경은 경이로울 정도로 궤를 달리한다.
한국인은 만월의 한복판에서 떡을 접어 굳이 날렵한 ‘반달(半月)’ 모양의 송편을 빚어 올린다. 중국인은 하늘의 달을 그대로 지상으로 복제해 낸 듯 완벽하게 닫힌 구형의 ‘만월’ 과자인 월병(月餅)을 나누며 가족의 결손 없는 봉합을 확인한다. 반면 열도의 일본인은 음력 8월 15일의 달맞이(츠키미, 月見)를 한갓 풍류와 미학의 영역으로 물려버린 채, 양력 8월 15일 전후의 ‘오봉(お盆)’이라는 조상 위령의 장으로 민족적 대이동을 단행한다.
왜 한국은 가득 찬 보름달 밤에 미완의 반달을 삼켰을까? 중국은 왜 그토록 지독한 원형(圓形)의 대일통(大一統)에 매달렸는가. 그리고 일본은 왜 전통의 음력을 내던지고 양력의 산업 일정 속에 조상의 혼백을 불러들여 실용적 재충전의 계기로 전환하였는가. 이것은 결코 세시풍속의 단순한 변형이나 입맛의 차이가 아니다. 쌀과 밀, 집약적 수전농업과 대륙적 상업자본, 그리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근대화 충격이 교차하며 만들어낸 한·중·일 삼국의 문명사적 암호이자, 오늘날 글로벌 경제 패권 전쟁의 향방을 가늠케 하는 제도 경제학적 거울이다.
한국=가배 중국=단원 일본=오봉
가을 명절을 대하는 한·중·일 삼국의 태도는 제각기 구축해 온 사회정치적 지향점에서 출발한다.한국의 추석(秋夕)은 서기 32년 신라 유리이사금 때 제도화된 ‘가배(嘉俳)’에 그 시원을 두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가 생생히 기록하듯, 왕녀 둘이 각각 수도 6부의 부녀자들을 절반씩 거느리고 음력 7월 16일부터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길쌈(삼베 짜기)을 겨루었다. 8월 15일에 이르러 공정하게 품질과 생산량을 평가한 뒤, 진 편이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을 극진히 대접하고 온 도성이 밤새 춤과 노래를 즐겼으니, 이를 일러 ‘가배’라 불렀다. 패배한 쪽의 여인이 일어나 “회소, 회소(會蘇 會蘇)”라 탄식하며 춤을 춘 데서 그 유명한 신라의 가악 ‘회소곡’이 유래하였다.
신라의 가배는 사적 영역에 매몰되기 쉬운 가내 노동을 국가적 생산 증대 프로젝트로 승화시킨 거대한 제도적 유인책이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경제학적 핵심은 그 사후 처리에 있었다. 경쟁을 통해 노동 생산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되, 결과가 나온 직후에는 패자가 승자에게 음식을 베풀고 승자가 패자를 부둥켜안는 대동(大同)의 연회를 통해 승자독식의 사회적 균열을 완벽히 봉합하였다. 추석의 본질은 경쟁과 화합이 선순환하는 ‘개방적 연대’이자, 수평적 공동체 생산력의 결집이었다.
중국 중추절(中秋節)의 핵심 지향점은 ‘단원(團圓, 퇀위안)’이다. 주나라 시기 군주가 서늘한 가을 달에 제를 올리던 ‘제월(祭月)’에서 비롯된 이 의례는 제국의 확장과 함께 철저히 가부장적 가족 단위의 폐쇄적 결속으로 변모하였다.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대륙의 공간 속에서 군역과 과거 시험, 장거리 보부상 활동으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중국인들에게, 일 년에 단 한 번 온 가족이 흠결 없이 둥근 식탁에 모여 앉는 것은 생존의 절대적 가치였다.북송의 대문호 소동파(蘇東坡)가 「수조가두(水調歌頭)」에서 "달에는 어둡고 밝음, 차오름과 이지러짐이 있으니 이 일은 예로부터 온전하기 어려웠네(月有陰晴圓缺 此事古難全)"라고 한탄하며, 오직 "천 리 밖에서도 저 아름다운 달빛을 함께 나누기만을 바란다(千里共嬋娟)"고 읊조린 것은 유랑과 이산(離散)이 일상이었던 대륙적 고통의 문학적 표현이었다. 신라의 추석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와 겨루는 생산의 축제였다면, 대륙의 중추절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혈연의 완전무결성을 확인하는 ‘내향적 밀실’의 제례였다.
이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곳이 바로 일본이다. 일본에도 당나라 문화를 흡수하며 음력 8월 15일 밤을 ‘쥬고야(十五夜)’라 부르고 달을 완상하는 ‘츠키미(月見)’가 존재했다. 둥근 쌀경단인 츠키미 당고(月見団子)를 빚어 가을 억새(스스키)와 함께 바치며 수확을 기리는 풍습이다. 그러나 메이지유신(1868년)이라는 거대한 문명사적 단절을 겪으며, 일본 사회는 이 음력의 가을 명절을 국가 공휴일의 지위에서 가차 없이 폐기하였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기치로 내걸고 서양의 양력을 전면 채택하면서, 농경 달력에 기반한 세시풍속을 국가 발전의 비효율적 걸림돌로 간주한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실질적인 민족 최대의 명절이자 귀성 전쟁의 시기로 기능하는 것은 양력 8월 15일 전후의 ‘오봉(お盆)’이다. 본래 불교의 우란분재(盂蘭盆會)에서 유래하여 조상의 영혼을 기리던 오봉은, 근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며 철저히 세속적이고 기능적인 ‘국민적 재충전의 연휴(오봉 야스미)’로 재편되었다. 일본은 명절마저도 조상 숭배의 신비주의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근대 공장제 기계공업과 기업 활동의 리듬에 맞추어 국가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쉬고 재도약하는 거대한 ‘산업적 휴식 시스템’으로 탈신화화(脫神話化)시켰다.
송편의 반달과 헝그리 혁신
가을 명절의 음식은 세 나라가 선택한 역사적 운명의 갈림길을 가장 선명하게 시각화한다. 한국인이 한가위에 반달 모양의 송편을 빚어 먹는 내력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의자왕 20년(서기 660년) 조에 등장하는 처절한 국가 흥망의 설화와 직결되어 있다.망국의 그림자가 드리우던 사비성의 대궐 안뜰, 땅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오른 거북의 등껍질에 기이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백제는 둥근 달과 같고, 신라는 반달과 같다(百濟如滿月 新羅如半月).”의자왕이 무당을 다그쳐 점을 치게 하자, 무당은 피할 수 없는 파멸의 이치를 아뢰었다.“둥근 달은 이미 가득 찬 것이니 이제 기울어질 일만 남았다는 뜻이요, 반달은 아직 차지 않은 것이니 날마다 점점 차올라 마침내 가득 차게 된다는 뜻입니다.”
분노한 의자왕은 무당을 베어버렸으나, 역사의 준엄한 심판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하였다. 전성기의 영화에 도취하여 방심했던 대국 백제는 거북의 예언 직후 나당연합군의 공격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고, 한반도 동남부 척박한 땅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던 약소국 신라는 마침내 차오르는 반달의 기세로 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성하였다.
신라인들은 이 뼈아픈 역사의 교훈을 음식 속에 각인시켰다. 햅쌀을 곱게 빻아 반죽을 빚는 물리적 행위를 들여다보라. 손바닥 위에서 굴려진 쌀가루 반죽은 처음에는 완벽하게 둥근 구형, 즉 만월(滿月)의 형상이다. 그 둥근 중심을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 깊은 홈을 파고, 그 안에 꿀과 깨, 콩과 밤을 채워 넣는다. 비어 있던 결핍의 공간에 알찬 생산의 결실을 채워 넣는 과정이다.그 다음 조형 작업이야말로 한국 문화의 정수다. 조상들은 속을 채운 둥근 떡을 그대로 닫아 만월로 유지하지 않았다. 양 끝의 피를 맞잡고 힘주어 눌러 접음으로써, 둥근 형태를 깨뜨리고 날렵하게 솟구쳐 오르는 반달의 궤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가득 찬 것은 머지않아 기운다는 주역(周易)의 ‘항룡유회(亢龍有悔)’를 경계하고, "우리는 아직 배고프며, 우리는 더 채워져야 한다"는 미완의 성장 의지를 음식의 형태로 고착화한 것이다. 송편의 반달은 기득권의 나태를 거부하고 더 높은 도약을 갈망하는, 대단히 능동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동적(動的) 혁신 철학’의 상징이었다.
월병의 만월: 주원장의 봉기 밀서와 대륙의 '닫힌 완결성'
중국의 월병은 타협 없는 만월의 완결성을 고집한다. 흠집 하나 없는 완벽한 원형의 표면에 정교한 목형(木型)으로 ‘복(福)’, ‘수(壽)’, ‘단원(團圓)’의 글자를 압착해 낸 월병의 외형은, 몽골족의 가혹한 지배에 맞서 싸웠던 한족의 가장 처절한 혁명사와 결합되어 있다.
14세기 중엽 원(元)나라 말기, 몽골 지배층의 가혹한 착취에 신음하던 한족 백성들의 분노는 폭발 직전에 이르렀다. 그러나 원 조정의 감시망은 잔인할 만큼 철저했다. 열 가구마다 몽골 병사 한 명을 배치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였고, 흉기로 사용될 것을 두려워하여 열 집이 부엌칼 한 자루를 묶어두고 함께 쓰게 할 정도였다. 세 명 이상 모여 대화하는 것조차 반역으로 다스리던 엄혹한 공포정치 아래서, 봉기를 모의하고 연락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질식할 것 같은 포위망을 돌파한 인물이 명(明)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과 그의 군사 유백온(劉伯溫)이었다. 음력 8월 15일 중추절이 다가오자, 유백온은 거대한 심리전을 기획하여 대륙 전역에 소문을 퍼뜨렸다. “가을철 맹렬한 돌림병이 번질 터인데, 오직 중추절 보름달 밤에 특별히 구워낸 둥근 월병을 사서 나누어 먹어야만 죽음을 면할 수 있다.” 백성들은 다투어 월병을 사들였다. 몽골 관리들의 눈에는 그저 한족들의 흔한 달맞이 과자로 보였을 뿐이다. 그러나 단단하게 구워진 밀가루 피 속에는 천하를 뒤흔들 밀서가 감추어져 있었다.“팔월십오야살달자(八月十五夜殺韃子, 8월 15일 밤 몽골인을 죽이고 의병을 일으키자).”
보름달이 중천에 뜬 중추절 한밤중, 온 집안 식구가 모여 월병을 쪼개는 순간 대륙의 수천만 한족 백성들은 일제히 동일한 거사의 암호를 손에 쥐었다. 그날 밤 대륙 전역에서 일어난 농민 의병의 횃불은 원 제국의 군영을 집어삼켰고, 마침내 몽골족을 북방 초원으로 축출하며 한족의 명 왕조를 개창하는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중국인에게 월병의 둥근 모양은 단순한 가문의 단란함을 넘어서는 정치적 기념비다. 그것은 삼엄한 제국의 감시망 속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개인들을 하나의 거대한 원형으로 결속시켰던 ‘혁명의 매개체’였으며, 이민족의 지배를 종식하고 회복한 중화(中華)의 대일통(大一統)을 상징한다. 대륙의 사람들에게 만월의 원은 결코 깨뜨려져서는 안 되는 제국의 영토적 완결성이자, 분열을 용납하지 않는 절대적 통합의 질서인 것이다.
오봉의 실용: 혼백을 맞이하는 불길과 근대 산업사회의 규율
일본의 오봉은 어떠한 역사적 궤적을 밟아왔는가.오봉의 기원은 산스크리트어 ‘울람바나(Ullambana,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를 음역한 불교의 ‘우란분재’에 있다. 지옥의 아귀도에 떨어져 거꾸로 매달려 고통받는 망자를 구원하기 위해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던 인도의 불교 의례가 중국을 거쳐 7세기 아스카 시대 일본에 전래되었다. 606년 스이코 천황이 우란분재를 거행했다는 기록이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전하며, 이후 헤이안 시대 귀족 사회를 거쳐 무로마치 시대에 이르러 조상의 영혼을 집으로 모셔 극진히 대접하고 돌려보내는 민간 세시풍속으로 정착하였다.
오봉의 의례는 불(火)을 매개로 한 영혼의 순환 구조를 띤다. 8월 13일 저녁, 집 앞이나 묘지 입구에 마른 삼대를 태워 ‘무카에비(迎え火, 마중하는 불)’를 피운다. 이승을 찾아오는 조상의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어둠을 밝혀 인도하는 불길이다. 그리고 오봉 기간 동안 집안의 불단(부츠단)에 과일과 떡을 올리고 극진히 공양한 뒤, 8월 16일 밤이 되면 다시 ‘오쿠리비(送り火, 배웅하는 불)’를 놓아 영혼을 저승으로 평안히 돌려보낸다. 교토의 다섯 개 산등성이에 거대한 한자 ‘대(大)’ 자나 배 모양의 불길을 놓아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교토 고잔 오쿠리비(五山送り火)’는 이 장엄한 환송 의식의 정점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일본 특유의 민속적 상징이 바로 ‘쇼료우마(精霊馬, 정령마)’다. 일본인들은 오봉 기간에 오이와 가지에 나무 이쑤시개를 꽂아 다리를 네 개 만들어 불단 앞에 놓아둔다.날씬하고 빠른 오이로 만든 말(馬)은 "조상님의 영혼이 저승에서 집으로 오실 때 한시라도 빨리 달려오시라"는 염원을 담은 탈것이다. 뚱뚱하고 굼뜬 가지로 만든 소(牛)는 "오봉이 끝나고 저승으로 돌아가실 때는 짐을 가득 싣고 천천히, 아쉬움을 달래며 느릿느릿 가시라"는 배려를 담은 탈것이다.
이러한 정령 신앙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 자본주의 체제와 결합하면서 놀라운 실용주의적 변모를 겪는다. 일본 정부가 음력을 버리고 서구식 태양력을 국가 표준시로 확립하자, 농촌의 음력 오봉과 도시의 양력 산업 일정 사이에 마찰이 빚어졌다. 일본 사회는 이를 양력 8월 15일 전후의 ‘월체(月遲れ, 한 달 늦춘 오봉)’라는 타협안으로 수렴시켰다.과 오봉은 종교적 제례를 넘어, 일본의 모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장 가동을 멈추고 노동자들에게 일주일가량의 휴가를 부여하는 거대한 ‘하계 휴무(오봉 야스미)’로 제도화되었다. 조상을 위로하는 전통의 제례를 근대 산업 사회의 피로를 씻어내고 소비를 진작시키는 거대한 ‘경제적 휴식 엔진’으로 완벽하게 연착륙시킨 것이다.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취하는 일본 특유의 실용주의적 적응력이 가을 명절의 재편 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 셈이다.
물질문명의 렌즈: 쌀, 밀, 그리고 근대 규격의 기술경제학
한·중·일 삼국의 명절 음식이 보여주는 물질적 실체와 제조 방식은 각 문명이 기반했던 생태학적·기술적 환경을 정밀하게 투영한다. 세 나라의 명절 음식을 물질문명과 경제학적 특성으로 항목화하여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명확한 차이가 드러난다.
첫째, 명절의 성격과 시간적 기준의 차이다. 한국의 추석은 음력 8월 15일을 기준으로 3일간의 국가 법정 연휴를 보장하며, 조상 숭배(차례와 성묘)와 농경 수확에 대한 감사가 결합된 친족 중심의 혈연 축제다. 중국의 중추절 역시 음력 8월 15일을 기준으로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으나, 조상보다는 살아있는 가족의 화합과 결손 없는 단원(團圓)을 확인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반면 일본은 음력 8월 15일의 츠키미를 달맞이 풍류로 남겨둔 채 공휴일에서 제외하였고, 양력 8월 15일 전후의 오봉을 통해 기업들의 집단 휴무를 유도하며 조상 위령과 근대 산업사회의 실용적 재충전을 결합시켰다.
둘째, 대표 음식의 조형적 형태와 사상적 상징이다. 송편의 반달은 결핍을 딛고 미래를 향해 차오르는 동적(動的) 성장과 혁신의 의지를 대변한다. 반면 월병의 만월은 결손이 없는 원만함과 기득권의 유지, 제국의 분열을 용납하지 않는 정적(靜的)인 대일통의 질서를 상징한다. 일본 츠키미의 둥근 당고(경단)와 오봉의 쇼료우마(오이 말과 가지 소)는 만월에 대한 미학적 관조와, 조상의 영혼을 신속하게 맞이하고 천천히 배웅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기능적인 정서의 발로다.
셋째, 주재료와 농업 생산양식의 기술적 기반이다. 송편은 한반도의 수전(水田)농업이 낳은 집약적 쌀 문명의 산물이다. 갓 수확한 햅쌀을 불려 곱게 빻아낸 쌀가루가 뼈대를 이룬다. 쌀은 물을 대는 공동 노동이 필수적이며 알곡 그대로 쪄서 섭취하기에 용이한 작물이다. 반면 월병은 대륙 북부의 광활한 건조 지대에서 생산되는 밀(小麥)을 기반으로 한다. 밀은 단단한 외피 때문에 맷돌로 빻아 분말(밀가루)을 만든 뒤 글루텐을 형성시켜 구워내는 분식(粉食) 문명의 산물이다. 일본의 츠키미 당고 역시 쌀가루를 사용하지만, 소를 넣지 않고 순수한 구형으로 빚어 제단에 탑처럼 쌓아 올리는 시각적 제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넷째, 가공 및 조리 방식에 담긴 에너지 기술의 격차다. 송편은 솥에 물을 붓고 끓어오르는 수증기를 이용하여 쪄내는 ‘증식(蒸食)’의 정점이다. 물이 풍부한 기후 조건 속에서 곡물의 촉촉한 수분을 보존하며 차진 식감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반면 월병은 물기가 배제된 고온의 화덕이나 가마에서 복사열로 바짝 구워내는 ‘배전(焙煎)’과 소성(燒成)의 기술이다. 이는 화석연료와 내화벽돌을 다루던 건조 지대의 제과 공학을 반영한다. 일본의 당고는 쌀가루를 반죽하여 끓는 물에 삶아내거나 찐 뒤 차갑게 식혀 담백한 질감을 살려내는 수처리 가공의 단순성을 유지한다.
다섯째, 바이오테크놀로지와 보존 과학의 메커니즘이다. 송편은 소나무 잎에서 분비되는 천연 테르펜과 ‘피톤치드(Phytoncide)’ 성분을 이용한 고도의 생물학적 방부 기술을 적용했다. 시루 바닥과 떡 사이사이에 솔잎을 깔아 증기를 통과시킴으로써, 미생물의 번식을 억제하고 늦더위 속에서 떡이 쉬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는 천연 코팅막을 형성시켰다. 반면 월병의 보존 과학은 밀가루 피에 다량의 라드(돼지기름)나 식물성 유지를 혼합하고, 속재료에 설탕과 맥아당, 염장한 오리알 노른자를 고농도로 채워 넣는 ‘고농도 유지·당장(糖藏)’ 방식이다. 내부의 수분 활성도(Aw)를 물리화학적으로 극단까지 떨어뜨려 세균이 증식할 수 없는 불모의 환경을 만든 것이다.
여섯째, 시장 유통성과 경제적 교환 가치의 반경이다. 송편은 쪄낸 즉시, 길어도 이틀 안에 가족과 이웃이 나누어 소비해야 하는 ‘단기 소비재’이자 화폐 경제 바깥의 증여물이었다. 유통 기한의 제약으로 인해 시장에서 대규모로 거래되는 상품으로 발전하기보다는 마을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비화폐적 매개체로 머물렀다. 반면 월병은 기름과 당분으로 밀봉되어 수개월 동안 상온에서 변질되지 않는 강력한 ‘장기 보존재’였다. 이는 대륙의 거대한 대운하와 역참망을 타고 수천 리 밖으로 유통될 수 있는 완벽한 ‘상업적 공산품’의 탄생을 의미했다. 오늘날 중국에서 중추절 월병 시장이 수조 원대의 거대한 선물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게 된 물질적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의 오봉은 음식 자체의 유통보다는 백화점과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친지와 거래처에 선물을 보내는 ‘오츄겐(お中元)’이라는 거대한 상업적 기프트 시장과 결합하여, 소비 진작의 강력한 촉매로 기능하고 있다.
송편의 반달, 월병의 만월, 그리고 오봉의 실용이 던지는 문명사적 함의는 오늘날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 생존의 기로에 선 우리에게 준엄한 경종을 울린다.중국은 지금 다시 거대한 ‘월병의 세계관’ 속으로 침잠하고 있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은 내부의 사상적 결속을 극단으로 다지고 대외적으로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외치며, 티끌 하나 없는 보름달처럼 닫힌 대일통의 국가주의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냉혹하다. 스스로를 이미 완성된 만월이라 선언하는 순간, 문명과 국가는 노쇠와 경직의 덫에 걸려든다. 내부의 다양성을 압살하고 시장의 자율성을 옥죄는 완벽주의는 끝내 혁신의 질식을 부른다. 천문학적인 지방정부 부채와 청년 실업, 인구 절벽 앞에서 성장 엔진이 꺼져가는 대륙의 현실은 어쩌면 너무 일찍 만월의 축배를 들어버린 제국의 필연적 역설일지 모른다.
일본은 오봉의 실용주의가 보여주듯, 전통의 껍데기에 연연하지 않고 근대 산업 규율에 맞춰 국가 시스템을 최적화해 온 저력을 지니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침체를 겪었으나, 그들은 기초과학의 두터운 저변과 정밀 제조업의 장인정신, 그리고 탈탈 털어낸 군더더기 없는 실용적 사회 인프라를 바탕으로 다시금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서구의 표준을 두려움 없이 수용하고 산업의 효율을 위해 명절의 날짜마저 과감히 뜯어고쳤던 그 서늘한 현실 감각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일본 경제의 저력이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그야말로 신라의 반달처럼 살아왔다. 6·25 전쟁의 폐허와 절대적 빈곤 속에서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다”는 처절한 결핍감 하나로 중화학공업을 일구고, 허허벌판에서 포항제철의 쇳물을 끓였으며, 세계를 제패한 메모리 반도체 신화를 창조했다. 자동차와 조선, 그리고 K-컬처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는 미완의 반달이 뿜어내는 헝그리 정신이 세계를 향해 전진해 나간 눈부신 팽창의 기록이었다.
보름달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한다. 그것은 태양의 에너지를 반사하고 있을 뿐이며, 그 화려함의 극점에서 필연적으로 어둠을 향해 기운다. 그러나 반달은 다르다. 비록 지금은 어둠에 잠긴 면이 절반을 넘을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더 넓게 차오를 것이라는 무한한 팽창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솔잎 향 그윽한 반달 송편을 베어 물며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 본다. 성장을 멈춘 만월의 나태에 안주하여 쇠락할 것인가, 전통의 허명을 털어내고 산업적 실용을 택한 열도의 기민함을 배울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를 부수어 다시 차오르는 반달의 혁신을 선택할 것인가. 결핍을 정직하게 자각하는 자만이 내일을 향해 활시위를 당길 수 있다. 한국 경제가 가야 할 길은 자명하다. 오만한 만월의 환상을 깨부수고, 다시 처절하고 날렵한 ‘반달의 헝그리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