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플라잉 타이거스 활약 기억… 제2차 세계대전서 양국 승리 이끌어낸 동맹"
시진핑 "피와 불로 맺어진 우정… 험프 수송로와 미군 구출한 中 민간인 희생 잊지 않아"
유엔 '적국 조항' 삭제 요구한 日 다카이치 총리 겨냥… 도쿄 외교가 "미·일 동맹 균열" 우려
시진핑 "피와 불로 맺어진 우정… 험프 수송로와 미군 구출한 中 민간인 희생 잊지 않아"
유엔 '적국 조항' 삭제 요구한 日 다카이치 총리 겨냥… 도쿄 외교가 "미·일 동맹 균열"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10년 만에 열린 공식 국빈 정상회담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어깨를 나란히 했던 '전시 동맹(WWII Allies)'의 역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소환하며 이례적인 연대감을 과시했다.
무역 불균형, 대만 해협 안보, 첨단 반도체 통제 등 전방위적 현안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 속에서도, 양국 지도자가 '항일 공동 전투'라는 역사적 명분을 징검다리 삼아 상호 공통분모를 부각시키고 전략적 긴장 완화에 나선 모습이다.
그러나 최근 유엔 헌장의 '적국 조항' 삭제를 요구하며 미·일 동맹 강화를 모색하던 일본 정부와 언론은, 미 대통령이 대중국 외교 무대에서 일본을 상대로 싸운 과거를 공개적으로 찬양한 데 대해 당혹감과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9월 25일(현지시각) 홍콩 영자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워싱턴발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백악관 로비에서 열린 공식 환영 행사에서 "우리가 공통의 이익에 집중한다면 수많은 위대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양국 관계의 뿌리로 2차 대전을 지목했다.
트럼프 "플라잉 타이거스 맹활약"… 시진핑 "피와 불 속에서 단련된 우정"
트럼프 대통령은 "공통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이 광활한 태평양을 넘어 수많은 차이점을 지닌 두 나라 국민을 하나로 연결해 주었고,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우리를 '동맹'으로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국이 2차 대전에 공식 참전하기 전인 1941년 중국으로 건너가 일본군에 맞서 싸운 미국 의용 비행대 '플라잉 타이거스(Flying Tigers·비호대)'를 칭송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자원했던 용감한 미군 조종사들은 실로 믿기 어려울 만큼 위대했다"며 "양국 국민이 그 전쟁에서 함께 승리를 쟁취했듯, 시 주석과 나 역시 두 나라의 번영된 미래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시진핑 주석 역시 국빈 만찬 연설에서 한층 직설적인 어조로 '항일 연대'의 기억을 되살렸다.
시 주석은 "항일전쟁 기간 동안 중국 군인과 민간인들은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는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도 격추된 수백 명의 미군 조종사를 끝까지 구조해냈다"며 "피와 불 속에서 단련된(Forged in blood and fire) 이러한 우정은 시대를 뛰어넘어 대대로 이어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시 주석은 이어 1942년 일본군이 버마 도로를 차단했을 당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군수 물자를 수송했던 공중 보급로 '험프(The Hump)' 작전을 상기시키며 "양국 병사들이 파시스트 침략에 맞서 어깨를 나란히 싸웠던 역사를 중국 인민도, 미국 국민도 결코 잊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 '적국 조항' 둘러싼 민감한 시점… 日 다카이치 총리에 '직접 타격'
양국 정상의 이번 2차 대전 언급은 최근 동아시아 지정학적 구도와 맞물려 일본 정부에 상당한 외교적 파장을 낳고 있다.
앞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 22일 뉴욕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2차 대전 패전국을 겨냥한 유엔 헌장 내 '전(前) 적국(Enemy State) 조항'의 공식 삭제를 강력히 촉구한 바 있다.
안보리 승인 없이도 과거 침략국에 대한 군사 행동을 허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 해당 조항에 대해 중국 외교부가 "군국주의 부활을 막는 법적 메커니즘으로 지금도 유효하다"고 맞받아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을 만나 중국을 '2차 대전 동맹'으로 추켜세운 것이다.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불안감을 드러냈다.
일본타임스는 "중국과의 역사·영토 갈등이 극에 달해 있고 미국으로부터 통상·방위비 압박을 받고 있는 핵심 동맹국 일본의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 발언은 도쿄 외교가에 깊은 의구심과 당혹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다카이치 총리가 시 주석 방미 직전 뉴욕에서 트럼프를 만나 "미·일 동맹의 굳건한 힘을 세계에 보여주자"고 당부했던 행보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지 워싱턴의 도자기부터 핑퐁 외교까지… '독수리 동상' 선물로 화답
이날 만찬에서 시 주석은 초기 미국 독립 혁명 당시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중국 도자기를 수집했던 일화부터, 1971년 냉전의 벽을 허문 '핑퐁 외교'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선물해 저장성에 뿌리내린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나무 이야기까지 언급하며 양국의 문화·경제적 공생사를 부각시켰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우리가 서로 다른 정치 체제를 대표하고 있음을 잘 알지만, 양국 국민 간의 유대는 그 어느 때보다 돈독하다"며 건국 250주년을 맞은 미국의 역사를 기렸다.
이어 자신이 직접 디자인에 참여했다고 밝힌 미국의 상징 '흰머리독수리(Bald Eagle)' 청동 조각상을 시 주석에게 국빈 선물로 전달하며 "자유롭고 웅비하는 미국의 정신이 베이징에서도 멋진 자리를 찾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시 주석 역시 이에 화답해 미국 애틀랜타 동물원에 판다 한 쌍(핑핑·푸솽)을 파견하고 향후 5년간 10만 명의 미국 유학생을 중국에 초청하는 교류 프로그램을 전격 발표했다.
한편 이날 만찬에는 팀 쿡 애플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미국 대표 테크 리더들이 대거 참석했으나, 딥시크 등 중국의 AI 및 스타트업 경영진은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첨단 기술 분야를 둘러싼 양국의 물밑 신경전은 여전함을 시사했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2차 대전 동맹' 담론은, 통상 전쟁과 패권 대립이라는 현실적 갈등 국면 속에서도 양국이 불필요한 충돌을 관리하고 대내외적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공유된 역사를 전략적 지렛대로 영리하게 활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외교 드라마로 평가된다.
아울러 미·중 밀착 기류 속에서 전통적 우방인 일본이 겪게 될 외교적 고립감과 안보 셈법의 변화도 향후 동아시아 정세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