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영국 옥스퍼드대학교(University of Oxford) 인터넷연구소 등 공동 연구팀이 최근인 올해 1월에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청소년이 온라인 플랫폼의 알고리즘 프로파일링을 이해하고 문제 제기하도록 돕는인터랙티브 시각화 도구(Interactive Visualizations for Adolescents to Understand and ChallengeAlgorithmic Profiling in Online Platforms)」라는 이 연구는, 12~16세 청소년 27명에게 자기가 실제로사용해온 유튜브, 넷플릭스, 틱톡의 시청 기록을 직접 들여다보게 했다. 적게는 100개, 많게는 6만 개에 이르는 영상 기록이 시각화된 화면 앞에서, 아이들은 처음으로 자기가 어떤 데이터로 분류되고 어떤 콘텐츠로 유도돼 왔는 지를 눈으로 확인했다.
반응은 예상보다 강렬했다. 자기의 디지털 발자취가 이토록 정교하게 수집돼 왔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놀랐고, 동시에 그 데이터가 자기를 어떤 모습으로 규정해왔는지를 비판적으로 되짚기 시작했다. 연구팀은이 경험이 아이들에게 디지털 자율성을 향한 내적 동기를 불러일으켰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추상적인 강의나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자기의 실제 데이터를 마주하는 순간에 일어났다는 점이다. 자기이야기일 때, 아이는 비로소 알고리즘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 발견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아이에게 알고리즘을 가르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흔적을 직접 들여다보게 하는 것이다. 추상적인 경고보다 구체적인 자기 데이터가아이를 움직인다.
더 어린 연령대를 다룬 연구도 같은 결론에 닿는다. 2025년 8월 홍콩교육대학교(The EducationUniversity of Hong Kong) 연구팀이 발표한 「영유아기 디지털 시민성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Digital Citizenship Education at the Early Childhood Level: How Is It Implemented?)」는 0~8세아동을 대상으로 한 선행 연구 23편을 종합 분석한 체계적 문헌 고찰이다. 연구팀이 확인한 것은, 디지털시민성 교육이 안전 수칙을 암기시키는 방식으로는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효과가 있었던 방식은 달랐다. 놀이처럼 설계된 활동, 친구와 함께 토론하고 협력하는 과정 속에 디지털 윤리를 자연스럽게녹여 넣은 수업이었다. 아이들은 일방으로 전달받은 규칙보다, 직접 참여하고 또래와 부딪히는 과정에서디지털 세계의 책임을 몸으로 익혔다.
연령도, 방법론도 다른 두 연구가 지니는 함의는 같다. 아이는 설명을 들을 때가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부딪힐 때 비로소 시스템을 의심하는 힘을 기른다. AI 시대의 시민성은 가르쳐서 주입되는 지식이 아니라,몸으로 겪으며 길러지는 태도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며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AI가 다 해주는 시대, 내 아이는 무엇을 할 줄 알아야 하는가'이다. 그 답으로 우리는 이런 아이를 이야기했다. 정보를 검증하고, 질문을 설계하고, 과정을 견디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몸으로 세상을 배우는 아이.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끝에, AI가 짜놓은 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 판은 공정한가"라고 묻는 아이. 그런데 이런 아이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설명해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직접 부딪혀보고, 직접 이상하다고 느껴본 경험이 쌓여야비로소 아이의 그런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이 연재에서 소개한 두 연구가 공통으로 가리킨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자기의 데이터를 눈으로 확인한뒤 처음으로 알고리즘을 의심하기 시작한 아이, 또래와 부딪히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윤리를 몸으로익힌 아이. 두 경우 모두 변화는 강의실이 아니라 경험의 순간에서 시작됐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은 아이에게 정답을 쥐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이상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자꾸 만들어주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게 해야 한다.그 경험이 쌓인 아이는 AI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눈을 가늘게 뜨는 법을 배우게 된다.
AI는 앞으로도 더 빠르게, 더 정교하게, 더 친절하게 진화할 것이다. 그 친절함에 기대는 아이와, 그 친절함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아이 사이의 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AI는 대답하는 기계다. 재차 강조하지만, 질문은 사람이 해야 한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아이가 AI를 도구로 쓰고, 질문을 잃은 아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AI의 도구가 된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EBS 연구위원)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EBS 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