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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벌거벗은 수영장...시가총액 6000조와 버핏 지수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그동안 누가 벌거벗고 수영했는지 알게 된다”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그동안 누가 벌거벗고 수영했는지 알게 된다”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가치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이 2001년 버크셔 헤서웨어 주총에서 한 말이다. 당시 뉴욕증시는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도처에서 곡소리가 나던 시절이었다. 주가가 오를 때는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지만 막상 수영장 물이 빠자 나간 후에는 수영복도 입지 않고 물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큰 홍역을 치른다는 경고이다. 버핏의 이 서늘한 격언은 강세장의 환희에 취해 리스크를 망각한 투자자들에게 가장 뼈아픈 경고장이다. 모든 자산 가격이 치솟는 유동성의 ‘밀물’ 시기에는 부실한 기업도, 과도한 빚을 낸 투자자도 모두 풍요의 파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거품이 걷히고 ‘썰물’이 시작되는 순간, 펀더멘털이라는 옷을 입지 못한 자들의 민낯은 처참하게 드러나기 마련이다. 좋은 시절에는 누구나 멋진 이야기를 하고 스스로를 포장할 수도 있지만 어려운 시기가 닥치면 그때야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워런 버핏은 물 빠진 수영장에서 허우적 가리지 않으려면 가치투자를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주가수익비율이라는 PER과 주가 순가치 배율이라는 PBR 그리고 배당수익률 지표인 ROE 등을 기초로 밸류에에션을 잘 따져 보라는 것이다. 그는 가치 투자의 방법으로 스스로 버핏지수를 고안해 내기도 했다. 버핏 지수(Buffett indicator) 한마디로 시가총액 대 GDP 비율이다. 특정 시점의 전체 주식 시장이 밸류에이션을 평가하는 가치 평가 배수이다. 명목 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은 증시 과열 여부를 파악하는 대표적 지표이다. 일반적으로 버핏지수가 100%를 초과할 경우 고평가로 간주한다. 버핏은 이 버핏지수를 "주어진 시점의 가치 평가 현황을 측정하는 가장 좋은 단일 지표"라고 불렀다. 워런 버핏은 2001년 포춘(Fortune)지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버핏 지수를 소개했다.

요즈음 코스피와 코스닥 등 대한민국 증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국내 증시(코스피+코스닥)의 시가총액을 GDP로 나눈 버핏 지수는 이미 180%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일부 분석에서는 200%선을 넘었다는 보고까지 나오고 있다. 로나19 이후 유동성 장세가 절정이었던 2021년 당시의 수치인 130%를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정 테마주와 미래 가치를 과도하게 선반영한 성장주들이 시가총액을 밀어 올리면서, 실물 경제의 성장 속도와 증시의 팽창 속도 사이의 괴리는 위험 수준까지 벌어졌다. GDP는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성장하는 반면, 시가총액은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솟구치고 있는 형국이다. 이는 곧 우리가 딛고 있는 지반이 단단한 암석이 아니라 언제든 꺼질 수 있는 거품 위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버핏 지수가 높다고 해서 당장 내일 시장이 폭락한다는 뜻은 아니다. 시장의 광기는 논리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역사는 증명한다. 실물 경제와 동떨어진 자산 가격은 결국 평균으로 회귀(Mean Reversion)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금리 인상이나 글로벌 공급망 쇼크, 혹은 예상치 못한 지정학적 리스크 등 어떤 형태로든 '썰물'은 찾아온다. 그때가 되면 화려한 수익률에 가려졌던 부실한 재무구조, 과도한 레버리지, 근거 없는 낙관론은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노출될 것이다. 지금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옷'을 점검하는 냉정함이다. 내가 보유한 종목이 실질적인 이익을 내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유동성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벌거숭이로 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수영장이 마르기 시작할 때 비로소 누가 진짜 실력자인지 드러난다.

한국 증시가 오르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반도체 업황의 부활, AI 산업의 가속화, 그리고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맞물리며 한국 증시는 그간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털어내는 듯한 모습이다. 주가가 오르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지만 지금의 상승 속도가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Fundamental)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가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버핏지수가 70~80% 수준이면 저평가, 120%를 넘어서면 '거품'의 전조로 해석한다. 2000년 닷컴 버블과 2008년 금융위기 직전 이 지수는 여지없이 위험 신호를 보냈다. 한국의 주가수익비율(PER)이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저평가론'도 존재하지만 그래도 GDP 대비 시가총액이 이토록 가파르게 치솟는다는 것은 유동성의 잔치이거나 특정 섹터(반도체 등)에 대한 '극단적 쏠림'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밥그릇(GDP)은 그대로인데 밥만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각한 문제는 주가를 밀어 올리는 동력과 반대로 가고 있는 잠재성장률의 하락 추세다. 최근 OECD와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26년 기준 1.57%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적 절벽과 신성장 동력의 부재가 맞물린 결과이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나라가 보유한 자본과 노동력을 모두 동원해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치, 즉 경제의 '체력'이다. 체력이 1%대로 주저앉고 있는 상황에서 주가만 '폭발적'으로 오른다는 것은 논리적 불일치를 낳는다. 주가는 미래 수익의 현재 가치다. 잠재성장률의 하락은 기업들이 미래에 벌어들일 이익의 총량이 줄어들 것임을 예고한다. 그럼에도 지수가 오른다는 것은 실물 경제와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는 뜻이며, 이는 결국 작은 외부 충격에도 전체 시장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지금의 코스피 질주를 뜯어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특정 반도체 거인들이 지수 상승의 70% 이상을 견인하고 있다. 이른바 '반도체 착시'다. 반도체 수출이 잘 되니 지수는 올라가지만, 내수 경기는 얼어붙고 가계 부채는 한계치에 다다랐다. 전통적인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실물 경제의 모세혈관은 잠재성장률 하락의 여파로 신음하고 있는데, 반도체라는 거대한 심장만 비대해진 기형적인 구조다. 이러한 양극화된 성장은 지수를 유지하는 힘이 약할 뿐만 아니라, 반도체 사이클이 꺾이는 순간 한국 경제 전체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주식 시장의 상승은 자산 효과를 통해 소비를 진작하고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제의 기초 체력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때의 이야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수의 숫자 놀음이 아니다. 규제 혁파를 통한 생산성 향상, 인구 구조 변화에 대한 근본적 대책 등 낮아지는 잠재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릴 실질적인 '기초 체력 보강'이 시급하다.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폭발적 상승은 축복이 아니라, 거품이 터지기 전의 마지막 섬광일 수 있다. 버핏의 경고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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