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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IMF 국가부채와 스페인 제국 몰락 역사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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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전 고려대 교수
스페인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 이었다. 황금기에는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다. 스페인어로는 "el imperio donde nunca se pone el sol" 이다. 이 말은 원래 유럽과 아메리카에 영토를 보유한 신성 로마제국 카를 5세의 통일 왕조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후 스페인이 번창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주인도 바뀐 것이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펠리페 2세와 그 이후 스페인 왕들의 스페인 제국이 그 영광의 주역이다.
가톨릭의 스페인 제국은 1492년 공식 출범했다. 그 이전까지 이베리아 반도를 장악하고 있던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면서 가톨릭 제국이 새로 시작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레콩키스타' 즉 가톨릭이 주도한 국토 회복 전쟁이다. 스페인 제국은 전쟁 비용때문에 폭발적으로 늘어난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이단 종교를 믿는 유대인을 추방하면서 그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이때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 17만명이 한꺼번에 추방당했다. 경제권을 쥐고있던 수많은 유대인이 한꺼번에 사라지면서 스페인제국의 금융과 유통산업은 시작부터 엉망이 되었다. 유대인 들을 추방하면서 많은 재산을 몰수했으나 그 돈으로 나라를 꾸려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대인이 떠난 뒤로 경제가 무너지면서 스페인의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는 더 늘었다. 그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외국으로부터 돈을 빌려와야 했다. 주로 제노바와 독일의 금융가에게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과 은을 담보로 맡기고 돈을 빌려왔다.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계속 불어났다. 결국은 이자조차 감당하기 힘들게 되었다. 16세기 중반에는 세금으로 걷은 조세 수입의 65%를 국채 이자 상환에 쏟아부어야 할 정도로 어려워졌다. 그 나마 식민지에서 수탈한 돈으로 재정파탄을 간신히 막고 있었다. .
이때 해적선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영국 해적선들이 스페인 배들을 공격해 금과 은이 스페인에 도착하기도 전에 약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적들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군비를 늘릴 수 밖에 없었다. 재정적자 속에 국방비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재정적자와 국가부채는 위기수준으로 치달았다. 카를로스 5세는 재위 기간인 1516년부터 1556년 40년 동안 부채만 4000만 두카트(Ducat)를 남겼다. 신대륙 식민지에서 들어온 금은보화 3500만 두카트보다도 많은 금액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두카트는 그당시의 기축통화 였던 베네치아 금화의 단위이다.

1568년부터 네덜란드와 전쟁이 벌어졌다. 식민지였던 네덜란드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일어난 이 전쟁은 무려 80년 동안 이나 이어졌다. 다급해진 스페인은 증세 카드를 뺐다. 이때 나온 것이 바로 소비세이다. 서둘렀다. 소비세는 거래가 발생할 때 마다 세금을 부과한다. 한 상품에 보통 세금이 여러 번 부과되었다. 이는 인플레로 이어졌다. 식민지로부터 은의 대량 도입되면서 화폐 유통량의 크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소비세 폭탄까지 터지면서 물가가 무너졌다.

카를로스 5세는 결국 나라를 둘로 쪼개기에 이른다. 1555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자리를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양도했다. 그 이듬해에는 스페인 왕의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줬다. 카를로스 5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아들 펠리페 2세는 막대한 빚까지 물려받았다. 1556년 등극할 때 이미 1561년까지의 미래 국고수입이 모두 저당잡혀 있었다. 견디다 못한 펠리페 2세는 1557년에 국가 파산 즉 디폴트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국가부채에 따른 국가 파산이었다.
디폴트 선언 이후에도 스페인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은 멈출 줄 몰랐다. 펠리페 2세는 식민지 확대로 경제난을 돌파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전쟁을 계속 치르는 바람에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전쟁비용 차입 방식이 특히 문제였다. 금융업자들은 디폴트 상태인 스페인 장기채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결국 차입은 대부분 ‘아시엔토’라는 단기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채무를 단기로 빌리니 만기가 빨리 돌아왔다. 전쟁 중 만기가 되어도 갚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계속 더 큰돈을 빌려 빚을 갚는 악순환에 빠졌다. 단기채 계약을 계속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국유지와 광산이 채권자이던 부유한 상인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펠리페 2세는 견디다 못해 1560년에 다시 파산선언을 했다.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572년에는 군사비 지출이 재정수입의 2배 이상 많았다. 게다가 유대인을 주축으로 한 네덜란드 함선들이 그간 스페인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안달루시아 등 주요 소금 생산지 항구들을 봉쇄하자 막대한 이윤이 남는 소금을 수출하지 못하게 된 펠리세 2세 통치하의 스페인은 또다시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되자 왕에게 돈을 대주던 채권자들도 위험을 감지하고 이자를 천정부지로 올렸다. 스페인에서 추방당한 유대인들이 몰려가 경제를 부흥시킨 네덜란드에서는 이자가 연 3%에 불과했는데 1573년 스페인 왕국은 연 40%의 이자를 물어야 했다. 결국 펠리페 2세는 1575년에 세 번째 파산선언을 해야만 했다.

1576년에 이르러서는 병사들에게 지불해야 할 급료가 국가 수입액의 2.3배에 달했다. 이번에도 더 이상 막대한 부채를 해결할 길이 없었다. 이때 채무자들에 대한 지불중단을 선언하면서 등장한 것이 스페인 공채(juro)다. 채무를 장기융자로 전환한 것이다. 채무불이행 선언은 거의 20년을 주기로 5번이나 더 계속되었다. 메디치가보다도 돈이 많았다던 독일의 금융가문인 푸거가와 제노바의 은행가들이 거덜이 났다.

첫 디폴트를 선언한 지 31년째 되던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에 패하고 만다. 펠리페 2세는 그해 네덜란드 북부의 반란세력을 지원하고 있던 잉글랜드 왕국을 정벌하기 위해 무적함대를 파병했다. 그러나 오히려 칼레해전에서 영국에 대패했다. 이때부터 스페인제국은 완연한 쇠퇴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경제가 무너지먼셔 제국의 군사패권도 붕괴하고 만 것이다. 스페인 함대가 무너지면서 한때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지역까지 합병하고 4개 대륙에 걸쳐 식민지를 운영했던 스페인제국도 사실상 파산한 것이다. 결국 1596년에 또다시 대규모 파산선언을 했다.
스페인 제국의 부상과 몰락은 국가 운영에 있어 재정과 국가부채 관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잘 보여주는 역사의 교훈이다. 요즘 IMF의 한국 국가부채 진단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IMF는 한국의 국가부채 증가 속도가 빠르다며 연일 경고음을 내고 있다.스페인이 디폴트에 빠질 당시 GDP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60%였다. 그때와 지금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국가부채 앞에서는 제국도 무너질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새삼 반추해 볼 필요가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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