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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호르무즈 vs 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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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겸 주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것은 1869년이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193km의 수로인 수에즈 운하는 지구촌의 물류에 실로 엄청난 혁명을 몰고 왔다. 유럽과 아시아의 운항은 이 수에즈 운하로 인해 비용과 기간이 크게 줄었다. 수에즈 운하는 단순한 물길을 넘어 인류의 야망과 지정학적 갈등이 점철된 역사의 현장이다. 미국과 이란 전쟁이 터지면서 이 물길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란과 가까운 예멘의 반군이 홍해 봉쇄카드를 꺼내면서 수에즈 운하가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운하를 뚫으려는 인류의 노력은 수천 년 전 파라오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19세기 이집트 제12왕조의 세누스레트 3세는 나일강 지류와 홍해를 잇는 운하를 구상했다. 그후 네코 2세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등에 의해 '파라오의 운하'라 불리는 초기 형태의 수로가 실제로 일부 건설되기도 했다. 나일강 삼각주의 제일 동쪽 끝에 흐르는 한 지류와 홍해를 연결했다. 두 척의 배가 동시에 지날 수 있을 정도로 넓게 판 운하로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해 양쪽 바다의 함대를 통합 운영하려 했다. 이 공사는 도중에 중단되고 만다. 운하가 완성되면 적들이 유리하게 이용하리라는 신탁이 나오면서 더 이상 파지 않기로 한 것이다. 저주의 신탁 때문에 공사는 완성되지 못하고 중지되었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 (재위 : BCE 550 - BCE 486년 경)가 이집트를 정복한 후 또 한번 운하 공사가 있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이집트를 지배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로마 제국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2세기 초의 트라야누스 황제 시대 그리고 초기 이슬람 시대에도 운하가 재개통됐지만 그때마다 침니(沈泥) 현상이 일어나 물길이 이내 다시 막혔다. 이 소규모 운하들은 매몰과 재건을 반복하다 8세기 경에 완전히 폐쇄되었다.

오늘날 현대적 의미의 수에즈 운하는 19세기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드 레셉스의 집념으로 탄생했다. 레셉스는 이집트 총독 사이드 파샤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1858년 만국 수에즈 해양운하회사를 설립했다. 1859년 착공 이후 10년간 무려 150만 명의 노동자가 투입되었다. 공사 도중에 콜레라가 번지면서 수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1869년 11월 17일 마침내 운하가 개통됐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로는 희망봉 우회 시보다 약 8,000~10,000km 단축된다. 건설 당시의 운하는 길이 164 km, 깊이 8m였다. 그후 여러차례 확장 공사를 받아 현재는 길이 193.30km, 깊이 24m, 폭 205m로 늘어났다. 북쪽의 포트사이드에서 시작되어 남쪽의 수에즈시에 위치한 투피크항까지 이어진다. 이곳을 통과하는 선박 수는 연간 3만 척을 넘어선다. 하루 평균 100척 내외의 배가 통과하고 있다.

수에즈 운하의 소유권은 제국주의 시대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오랫동안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 통제되어 왔다. 1956년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며 '수에즈 위기'가 터지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운하의 관리권은 이집트로 완전히 넘어갔다. 지금은 이집트 국영 기구인 Suez Canal Authority (SCA)가 운영을 전담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수에즈 운하의 폐쇄는 늘 세계 경제의 시계바늘을 멈춰 세웠다.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8년간의 폐쇄나 2021년 에버 기븐호 좌초 사고는 이 좁은 수로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절대적 위상을 증명했다. 후티 반군의 봉쇄 위협이 고조되는 지금, 우리는 수에즈 운하가 단순히 이집트의 자산이 아닌, 인류 공동의 번영을 지탱하는 '평화의 동맥'임을 다시금 되새겨야 한다. 이란과 최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봉쇄 엄포는 단순한 지역적 분쟁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혈관을 압박하는 거대한 지정학적 변수로 부상했다.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잇는 이 좁은 물길은 전 세계 해상 교역량의 약 12%가 통과하는 ‘경제의 대동맥’이다. 이곳이 차단될 때 발생하는 충격파는 전 세계의 식탁과 공장, 그리고 주머니 사정을 단숨에 뒤흔든다.

홍해와 수에즈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선 과거의 사례를 반추할 필요가 있다. 1956년 수에즈 위기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수에즈 운하는 장기간 폐쇄되었다. 1967년부터 8년간 이어진 폐쇄 기간 동안 세계 무역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최단 경로가 사라지자 선박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우회해야 했다. 이는 운송 거리의 급증과 물류비용 상승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다. 역사는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남겼다. 이 좁은 통로가 막히는 순간, 세계 경제의 효율성은 마비되고 물가는 통제 불능의 영역으로 진입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또 다시 홍해 봉쇄가 현실화될 경우, 그 충격은 과거보다 훨씬 복합적이고 치명적일 것이다. 가장 큰 타격은 물류비용의 기하급수적 상승이다. 희망봉 우회 노선은 항해 거리를 약 9,000km 늘리며, 이는 10~14일의 추가 시간을 소모하게 한다. 연료비 상승은 물론 선박 회전율 감소로 인한 선복량 부족 사태는 해상 운임을 폭등시킨다. 이는 결국 공산품 가격에 전이되어 '공급망 인플레이션'을 재점화할 것이다. 에너지 안보의 위기도 빨간불이다. 중동발 원유와 LNG(천연가스)가 유럽으로 향하는 주 통로가 차단됨에 따라 국제 유가는 요동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에게 유가 상승은 무역 수지 악화와 경기 침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전조가 된다. 글로벌 제조업의 마비도 심각하다. 오늘날 제조업은 대부분 '적기 생산(Just-In-Time)' 시스템에 의존한다. 핵심 부품의 운송 지연은 자동차, 반도체, 가전 등 주요 산업의 가동 중단으로 이어진다. 이는 단순한 비용 문제를 넘어 전 세계 생산 네트워크의 붕괴를 의미한다. 지난 수십 년간 세계 경제가 추구해온 '최저 비용과 최대 효율'의 논리가 지정학적 리스크 앞에서 한꺼번에 무너질 수 있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휴전 또는 종전에 대한 기대로 뉴욕증시와 코스닥 코스피 등 금융시장은 벌써 큰 폭의 랠리를 보이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안심하기에는 아직이르다 전쟁에는 변수가 많다. 휴전과 종전에 합의해 놓고도 다시 전쟁을 벌이는 사례도 적지않다. 홍해 봉쇄까지도 감안한 플랜 B와 플랜 C도 필요한 시점이다. 홍해 봉쇄는 호르무즈보다 그 충격이 훨씬 클 수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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