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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겨울 채비

백승훈 시인

기사입력 : 2024-11-0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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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어느덧 가을의 끝자락이다. 초록 일색이던 산빛이 울긋불긋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서 절정으로 치닫다가 샛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가을은 대미를 장식한다. 가을의 감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방학동 은행나무를 찾아간다. 서울시 지정 보호수 중에 수령이 제일 오래된 방학동 은행나무는 어느 때 찾아가도 깊은 감동을 주지만 은행잎이 순금 빛으로 빛나는 만추(晩秋)의 자태는 가히 환상적이라 할 만큼 찬란하다. 천 년 가까운 세월을 살면서도 어찌 저리 곱디고운 찬란한 잎을 내어 달 수 있는지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 절정의 순간은 매우 짧다. 찬란하게 금빛으로 빛나던 은행잎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가지를 떠나 비처럼 떨어져 내리며 가을의 끝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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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들고 물든 낙엽이 바닥으로 내려앉는 것은 나무들의 겨울 채비의 일환이다. 나무들은 겨울 동안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스스로 물기를 줄이고 떨켜라는 세포층을 만들어 물과 양분이 잎으로 가는 길을 막는다. 이 과정에서 잎의 엽록소가 파괴되고 새로운 색소를 합성해 색색으로 물드는 게 다름 아닌 단풍이다. 그러니까 단풍은 겨울 채비를 위한 마지막 세리머니인 셈이다. 그러곤 미련 없이 잎을 떨어뜨린다. 목련이나 동백나무는 겨울눈을 보호하기 위해 솜털이 빽빽이 달린 껍질과 단단한 비늘로 겨울눈을 감싸고 생장을 멈추고 겨우내 잠을 잔다. 새들은 따뜻한 곳을 찾아 떼 지어 먼 거리를 이동하기도 하고, 몇몇 동물은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고 굴속에서 겨울잠을 자기도 한다. 식물이나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겨울은 생존을 위해 숨 고르며 견뎌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는 늘 자연에서 제일 먼저 시작된다. 농경사회에서는 때를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오랜 세월을 두고 자연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여 24절기를 만들고, 거기에 맞춰 씨를 뿌리고 곡식을 가꾸고 추수를 했다. 지금 우리는 고도화된 산업사회 속에 살면서 때를 잊은 철부지가 되어가고 있다. 도심의 밤은 낮보다 환하여 점점 밤낮의 구분이 흐려지고 일하는 시간 또한 낮과 밤이 따로 없을 만큼 제각각이다. 획기적인 과학의 발달은 우리 일상을 편리하게 해주었지만 그만큼 자연과 멀어지게 만들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옛말처럼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며 자연 정복의 만용을 부리게 된 것도 때를 잊은 철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은 우리가 깃들어 살아가야 할 대상이지, 결코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상기온 탓인지 11월이 됐음에도 여전히 바깥 기온은 온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를 잊지 않은 숲의 나무들이 겨울 채비를 하는 덕분에 산은 오색 단풍으로 물들어 가며 가을 정취를 한껏 자아내고 있다. 가로변의 은행나무들은 바람이 불 때마다 금빛 이파리를 거리에 뿌려대고 저녁 햇살을 받은 흰 억새꽃의 춤사위가 눈부시다. 가을의 끝이 가까운 게다. 7일은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이다. 바람의 방향이 한 번 바뀌고 나면 바깥 기온은 변심한 애인의 마음처럼 냉랭해질 것이다.

요즘은 겨울이라고 해서 미리 채소나 먹거리를 쟁여놓지 않아도 되지만 예전엔 김장을 해야 비로소 겨울 채비가 마무리되는 것으로 알았다. 여러 사람이 어울려 겨울 먹거리를 준비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김장 문화는 유네스코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거리에 나서면 바람에 쓸리던 낙엽들이 자꾸 발에 차인다. 더러는 내 발밑에서 부스러지기도 한다. 봄부터 가을까지 가지에 매달려 나무의 생애를 흔들던 이파리들이 낙엽으로 거리를 떠도는 계절, 이파리를 다 내주고 의연히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며 생각해 보는 것이다. 진정한 겨울 채비는 비우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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