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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숲에서 보내는 시간

백승훈 시인

기사입력 : 2023-08-0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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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폭우와 폭서의 나날이 지속되는 중이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비지땀이 흐른다. 에어컨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는 열대야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더위를 많이 타지 않는 체질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유엔의 발표대로 이제 지구 온난화를 넘어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게 실감이 나는 요즘이다. 비와 더위 때문에 숲을 찾기도 쉽지 않은 요즘 다시 꺼내 읽는 책 중에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있다.

“‘작은 기쁨’을 누리는 능력. 그 능력은 얼마간의 유쾌함, 사랑, 그리고 서정성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찬사를 받지도 못하며, 돈도 들지 않는다. 고개를 높이 들어라. 한 조각의 하늘, 초록빛 나뭇가지들로 덮인 정원의 담장, 멋진 개 한 마리, 떼를 지어 가는 어린아이들,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 모양. 그 모든 것들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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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면서도 전쟁과 폭력, 비인간화에 대항하는 삶의 태도로, 1·2차 세계대전에 동조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일 문단에서는 세상 물정을 모르고 정원이나 가꾸는 사람으로 규정하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원 생활을 통한 체험과 글쓰기가 조화를 이룬 헤세의 선택은 그의 삶의 양식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과 결속된 소박하고 진솔한 삶을 살고 싶었던,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자족하고, 무수한 속박에서 벗어나 문명과 떨어진 생활에 만족하고자 했던 노력이 뒤따랐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단순히 아름다운 정원을 즐기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의 정신과 이어진 정원사의 즐거움을 단지 정원에서 보내는 행복한 시간의 즐거움만을 탐냈던 게 책을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포도밭을 일구고 정원의 나무와 꽃을 돌보며 자신이 마주한 풍경을 때로는 시인의 감성으로, 때로는 화가의 시선으로 섬세하게 표현한 글들을 읽으며 일견 부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이 부끄러웠다. 농부의 일상에 가까운 단순노동을 하면서 찾아낸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놀랍기만 하다. 나 역시 제법 오랫동안 숲을 오가며 나무와 풀과 꽃에 대해 글을 써왔으나 그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스쳐 지나왔을 뿐 자연과 제대로 교감하지 못하고 살았구나 싶은 자책감이 들었다. ‘통찰’은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을 의미한다. 겉으로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 실체와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통찰에 이르기 위해서는 관심과 질문이 따라야 하는데 난 아름다움만 탐했을 뿐 궁금해하거나 질문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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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을 넘어 삶의 시침이 오후로 기울수록 마음은 고향을 향해 간다. 고향에서 오두막을 짓고 텃밭이나 일구며 노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지 오래되었다. 막연히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던 일이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는 동안 더욱 확고해졌다. 안락한 도시의 생활을 뒤로하고 자연 속으로 돌아가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즐기는 것은 노년기의 로망과도 같다. 하지만 전원생활이 꿈꾸는 것처럼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지 않음을 헤세는 우리에게 일러준다. 그것은 단순한 휴식이나 여생을 보내기 위한 도피처가 아니라 땀 흘리고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삶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농촌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노동의 고단함과 즐거움을 익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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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출 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기후 위기로 지구는 지금 펄펄 끓고 있다. 자연으로의 회귀는 욕망을 멈추는 일인 동시에 자연의 일부가 되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일이다. 아직은 몸의 건강이 나쁘지 않으니 얼마간은 헤세의 삶을 흉내 내어 살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삶을 흉내 내어 살기보다는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는 나만의 온전한 삶을 꾸릴 생각이다. 그리고 자연과 깊이 교감하며 사색하고 성찰하며 초록의 순한 목숨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글을 쓰고 싶다.


백승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