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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향기] 아카시아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백승훈 시인

기사입력 : 2023-05-1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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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훈 시인
비 온 뒤의 숲 내음이 그리워 산길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자욱하게 나를 덮쳐오는 향기에 나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말았다. 숨이 멎을 듯한 그 짙은 향기, 다름 아닌 아카시아꽃 향기였다. 낮게 깔린 기류를 타고 마치 안개처럼 사방에서 나를 에워싸며 밀려드는 꽃향기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취할 수밖에. 아카시아 향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향기 중 하나다. 뒤늦게 숲에 관한 공부를 하면서 그동안 내가 아카시아로 알고 있던 나무가 실은 북미 대륙이 원산인 아까시나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지금도 나는 아카시아라고 부르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뒤늦게 알게 된 지식으로 인해 나의 소중한 추억을 포기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인이자 박물학자인 다이앤 애커먼은 냄새에 관한 한 단기적 기억은 없다고 했다. 어떤 향기가 순간적으로 스쳐 가면 마치 덤불 속에 감춰져 있던 지뢰가 폭발하듯 냄새의 뇌관을 건드리는 모든 추억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가 감정을 건드리는 도화선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후각은 추억의 뇌관을 터뜨리는 공이인 셈이다. 그래서일까. 학창 시절, 시오리 하굣길에 함께 아카시아꽃을 따 먹던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이 아니더라도 아카시아꽃은 내게 많은 추억이 서린 꽃이다. 최전방 철책에서 군 복무를 할 때, 여름이 되면 비무장지대엔 아카시아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짙고도 맑은 아카시아꽃 향기는 바람을 타고 무시로 철책선을 넘어와 경계근무를 서던 병사의 가슴에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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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원익청(香遠益淸)이라 했던가. 꽃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은 기운을 더한다. 봄이 저물고 초록이 짙어지면 꽃은 화려한 색을 버리고 향기로 곤충들을 유혹한다. 그 대표적인 꽃이 아카시아꽃이다. 그 그윽하고도 달콤한 향기로 벌들을 불러 모아 벌꿀 생산량의 80%인 연간 약 5만 드럼의 꿀을 생산한다고 하니 그 향기의 힘이 실로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카시아꽃만큼은 아니라 해도 우리의 코를 벌름거리게 만드는 꽃향기는 의외로 많다. 숲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찔레꽃이나 보랏빛 등꽃, 라일락이나 분꽃나무의 꽃향기는 후각이 둔감한 나 같은 사람마저도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꽃향기는 사람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다만 구경꾼에 지나지 않는다. 꽃향기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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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엔 라벤더 축제가 열리는 허브아일랜드에 다녀왔다. 라벤더 외에도 다양한 허브 식물들이 뿜어내는 꽃향기, 풀향기에 취해 봄의 끝자락을 향기롭게 보냈다. 우리는 흔히 꽃이나 향처럼 좋은 냄새를 ‘향기’라 하고, 좀 더 넓은 의미로 후각에서 감지되는 모든 화학적 향을 ‘냄새’라고 한다. 어찌 보면 후각은 화학적 반응에 의한 뇌의 기억이다.

향기는 고립에서 벗어나 다른 대상과의 연결과 친밀을 갈망하는 신호와도 같다. 냄새는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칭하지만 향기는 냄새 중에서도 기분 좋은 냄새를 이르는 말이다. 그래서 불쾌한 냄새는 있어도 ‘불쾌한 향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길을 걷다가 맑고 그윽한 꽃향기를 맡으면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향기의 진원지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사람들이 냄새보다 향기를 좋아하는 것은, 좋은 것을 닮아가려는 속성 때문일 것이다. 꽃들은 저마다 모양과 색깔도 다르고 향도 다르다. 꽃만이 아니라 사람 또한 다르지 않다. 살면서 자신만의 특별한 향기로 세상을 향기롭게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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