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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결산③] 확장에서 점검으로…배터리 산업의 속도 조절

전기차 캐즘에 배터리 수요 둔화
ESS로 공백 메우는 K-배터리
중국 저가 공세 속 체질 전환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전경(왼쪽)·삼성SDI 기흥 본사(가운데)·SK온 미국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 전경. 사진=각 사이미지 확대보기
LG에너지솔루션 폴란드 브로츠와프 공장 전경(왼쪽)·삼성SDI 기흥 본사(가운데)·SK온 미국법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 전경. 사진=각 사
2025년 글로벌 배터리 산업은 '초고속 성장'이라는 익숙한 공식에서 벗어나 성장의 속도를 스스로 조절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불과 2~3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차 확산을 등에 업고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렸던 시장은 올해 들어 전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의 직격탄을 맞으며 뚜렷한 변곡점에 섰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예상보다 빠르게 둔화되면서 배터리 수요 역시 동반 위축됐다. 완성차 업체들의 재고 부담이 커졌고 신규 전기차 출시 일정이 잇따라 조정되면서 배터리 셀 주문도 줄었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배터리 제조사들은 생산량 조절과 함께 설비 투자 속도를 낮추는 등 전반적인 사업 전략을 '확장'에서 '점검'으로 전환했다.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글로벌 점유율은 전년 대비 하락했고, 단기 실적 부진은 불가피한 현실로 자리 잡았다. 2025년 3분기 기준으로 보면 LG에너지솔루션은 ESS(에너지저장장치) 수요 확대에 힘입어 비교적 안정적인 실적 흐름을 유지한 반면 삼성SDI와 SK온은 전기차 수요 둔화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적자 기조를 이어갔다.

다만 시장 둔화가 곧바로 전략 후퇴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K-배터리 기업들은 외형 성장 중심의 '양적 확대'에서 수익성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질적 성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핵심은 전기차 중심 사업 구조를 보완할 새로운 성장 축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
그 해답으로 떠오른 분야가 ESS 시장이다.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와 재생에너지 비중 증가에 따른 전력 인프라 투자 확대로 전력망 안정화를 위한 대규모 ESS 수요가 빠르게 늘었다. 전기차 캐즘이 만든 수요 공백을 ESS가 일정 부분 메우기 시작한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ESS 시장 확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미국 미시간주 홀랜드 공장에 ESS 전용 라인을 구축하고 리튬인산철(LFP) 기반 배터리 대량 생산 체제를 마련하며 실적 방어의 핵심 축을 확보했다. 삼성SDI는 UPS(무정전 전원장치)용 고출력 배터리와 대용량 ESS 완제품 'SBB 1.5'를 중심으로 제품 포트폴리오 확장에 나섰다. SK온은 전기차 중심 생산 구조를 점검하며 ESS 전용 설비 전환과 LFP 배터리 재활용 기술 확보 등 중장기 반등을 위한 준비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K-배터리 산업의 체질 변화도 뚜렷해졌다. 그동안 삼원계(NCM·NCA) 배터리에 집중됐던 포트폴리오는 ESS를 매개로 LFP 기반 전력용 배터리까지 확장됐다. 단순한 물량 확대가 아닌, 적용 분야와 고객군을 넓히는 방향의 전략적 다변화다.

반면 경쟁 환경은 더욱 거칠어졌다.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저렴한 LFP 제품을 앞세워 내수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빠르게 영향력을 확대했다.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도 CATL과 BYD를 중심으로 중국 업체들의 점유율 상승세는 뚜렷했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산 배터리는 중저가 전기차와 ESS 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침투하며 글로벌 시장의 쏠림 현상을 심화시켰다.
이에 대응해 K-배터리 기업들은 기술 초격차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고에너지밀도를 구현하기 위한 울트라 하이니켈 양극재 개발이 본격화됐고 생산 효율과 안정성을 동시에 끌어올릴 수 있는 건식 전극 공정 도입도 속도를 냈다. 단순한 생산량 경쟁에서 벗어나 기술 난도가 높은 영역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차세대 배터리 개발 경쟁 역시 2025년을 기점으로 본궤도에 올랐다. 전고체 배터리를 중심으로 한 차세대 기술은 파일럿 라인 가동과 핵심 소재 검증 단계에 진입했다.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 측면에서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술 확보가 중장기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여기에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유럽 핵심원자재법(CRMA) 등 자국 중심 공급망 정책이 더해지며 K-배터리는 북미·유럽 현지 생산 체제 구축을 이어갔다. 다만 완성차 업체들의 투자 보수화와 수요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일부 신규 공장과 합작법인(JV) 계획은 연기되거나 재검토됐다. 무리한 증설보다는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를 우선하는 기조가 뚜렷해졌다.

2025년은 배터리 산업이 외형 성장의 한계를 마주한 해였다. 전기차 캐즘과 중국발 저가 공세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단기 성장세는 둔화됐지만 산업의 방향성 자체가 흔들린 것은 아니라는 평가다. 전동화라는 장기 흐름과 ESS 시장의 성장 잠재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연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achel0807@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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