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요즈음 유럽 금융시장은 거대한 폭풍우 전야와 같다. 프랑스의 방만한 재정과 정치적 교착 상태가 유로존 전역을 뒤흔든 직후, 이번에는 남유럽의 '큰 형님'이자 과거 재정위기의 진앙지였던 이탈리아마저 유로존의 새로운 뇌관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조르지아 멜로니 정부가 내놓은 추가 차입 승인과 국방·에너지 지출 확대 계획은 가뜩이나 취약한 이탈리아 경제에 거대한 부채 시한폭탄을 장착한 꼴이 되었다.
조르지아 멜로니 중도우파 정부는 최근 국방 및 에너지 지출 확대를 명목으로 향후 2년간 280억 유로를 추가 차입하는 예산안을 승인했다.이로 인해 이탈리아의 2027년 재정 적자 목표치는 GDP 대비 3.4%, 2028년은 3.2%로 상향 조정되었다. 당초 시장이 기대했던 수치(각각 2.8%, 2.5%)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 같은 재정 적자 확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이탈리아의 국가 부채 비율이 오는 2028년까지 유럽 최고 수준으로 치솟을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고 나섰다. 과거 긴축과 개혁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다지려던 남유럽 국가들의 노력이, 정권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지출 압박 앞에서 무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골드만삭스가 이탈리아 상황을 더욱 우려하는 이유는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폭발력을 품은 정치적 일정 때문이다. 내년 총선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이탈리아 정치권은 표심을 의식해 재정 건전화를 외면하고 있다. 접전이 예상되는 선거판에서 우파와 좌파 진영 모두 안정적인 연정 구성을 위해 '재정 지출을 지지하는 파트너'를 규합해야 하므로, 사실상 재정 긴축은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유럽 이코노미스트 필리포 타데이가 지적했듯, 완화된 재정 정책과 긴축적 금융 환경, 그리고 치열한 선거 구도가 맞물리면서 이탈리아 국채 가격은 극심한 하방 압력을 받고 있으며 재정 위험 프리미엄은 치솟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계 대형 금융기관인 스미토모가 프랑스 국채를 전량 손절매하며 '프랑스 국가부도 공포'를 촉발한 사건은 유럽 전역에 실질적인 경고음을 울렸다. 프랑스의 GDP 대비 재정적자가 5.8%에 달하고 세입 대비 순이자 비용 비율이 한계선을 돌파하며 휘청이는 가운데, 이탈리아마저 대규모 적자 확대 노선을 밟으면서 '유로존 도미노 위기'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 중심의 엄격한 유로존 재정 준칙은 이미 명목만 남았고, 남유럽과 서유럽을 가리지 않고 방만한 포퓰리즘과 저성장의 늪이 깊어지고 있다. ECB(유럽중앙은행)의 고금리 장기화 기조 속에서, 빚으로 빚을 막아온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가 다시 요동칠 경우 이는 단순한 이탈리아 국한의 문제가 아니라 유로화 가치 폭락 및 글로벌 금융시장 전반의 신뢰붕괴로 직결될 수 있다.
프랑스에 이어 이탈리아마저 재정 악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유럽 재정위기의 망령은 더이상 과거의 추억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공포가 되었다.구조적 저성장 속에서 표를 사기 위한 정치권의 재정 팽창, 그리고 이를 제어할 수 없는 정치적 교착 상태는 유로존 전체를 가장 약한 고리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한국 경제 역시 글로벌 자금 흐름의 변동성과 유로화 약세에 따른 달러 강세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가오는 총선과 예산안 발표 시즌, 이탈리아 국채 시장의 맥박을 숨죽여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