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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D에 밀려 잊혔던 HDD의 귀환"… 日 소재·부품 연합, AI 데이터 폭증 타고 '초호황'

'유일한 미디어 독립 공급사' 레조낙 230억 엔·'서스펜션 1위' NHK스프링 350억 엔 대대적 증설
TDK(헤드)·니덱(모터)·닛토덴코(기판) 등 핵심 부품 독과점… 나노급 정밀 기술로 진입장벽 구축
수년간 구조조정 버텨낸 日 기업들 '공급 과점' 결실… 차세대 HAMR 기술로 초고용량 시장 선점
AI 데이터 폭증에 힘입어 일본 소재·부품 기업들이 독점 공급 중인 HDD 핵심 메커니즘. 사진=TDK이미지 확대보기
AI 데이터 폭증에 힘입어 일본 소재·부품 기업들이 독점 공급 중인 HDD 핵심 메커니즘. 사진=TDK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의 대중화로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 산업이 생성형 인공지능(AI) 붐에 따른 데이터 폭증을 계기로 화려하게 부활하면서, 관련 핵심 부품과 소재 공급망을 사실상 독점해 온 일본 기술 기업들이 기록적인 수혜를 누리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관심이 고성능 연산을 처리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집중되는 사이, 천문학적인 AI 학습 데이터셋과 추론 결과물을 저장하는 대용량 니어라인(Nearline) HDD 수요가 폭발하자 이를 지탱하는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생산 능력을 대대적으로 늘리기 위한 증설 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플래터(기록 미디어) 분야 세계 유일의 상용 공급업체인 레조낙 홀딩스(Resonac Holdings)를 필두로, 자기 헤드 1위권인 TDK, 정밀 서스펜션 시장을 장악한 NHK스프링, 스핀들 모터의 니덱(Nidec)과 미네베아미츠미 등 일본 정밀 제조 연합이 혹독한 구조조정 끝에 구축된 독과점 지배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AI 스토리지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우뚝 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10월 3일(현지시각) 일본 종합 경제 미디어 닛케이 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일본 주요 전자·화학 부품 제조사들은 급증하는 AI 데이터센터 스토리지 주문에 대응하기 위해 동남아시아 거점을 중심으로 대규모 설비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레조낙 230억 엔·NHK스프링 350억 엔… 동남아 생산 라인 급격한 증설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레조낙이다.

레조낙은 연간 2억 3,000만 장 수준의 디스크 생산 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싱가포르 공장에 약 230억 엔(약 1,950억 원)을 전격 투자하고 있다.

2027년부터 순차적으로 신규 라인을 가동할 예정이며, 투자 비용 회수를 위해 공급 판가 인상도 병행할 방침이다. 원가 절감을 위해 지난 2023년 침체기 당시 폐쇄했던 대만 공장의 제조 장비들을 싱가포르 공장의 유휴 공간으로 이전 재배치하는 효율화 작업도 마무리 단계다.

자기 헤드의 위치를 나노미터 단위로 미세 제어하는 정밀 스프링인 '서스펜션' 분야에서 세계 1위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NHK스프링 역시 태국 생산 기지에 신규 제조 동을 건설하고 있다.

NHK스프링은 총 350억 엔(약 3,000억 원)을 쏟아부어 현재 생산 능력을 최대 60%까지 대폭 끌어올릴 계획이다.

"제트기가 지상 2mm 위 활공"… 日 기업 간 밀착 협력이 만든 '진입장벽'


HDD는 반도체 못지않게 기술적 진입장벽이 극도로 높은 정밀 기계의 정점으로 꼽힌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알루미늄·유리 재질의 플래터 표면과 데이터를 읽고 쓰는 자기 헤드 사이의 간극은 불과 수 나노미터에 불과하다.

마카베 야스시(Makabe Yasushi) 레조낙 하드 디스크 사업 총괄은 이 미세한 간격을 가리켜 "거대한 보잉 점보 제트기가 지상에서 단 2~3mm 높이로 스치듯 활공하는 상태와 같다"고 묘사했다.
헤드가 미디어에서 조금만 멀어져도 기록 밀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너무 가까우면 미디어 표면과 직접 충돌해 데이터가 파괴되는 치명적인 위험이 따른다.

데이터센터들이 좁은 서버랙 면적당 더 많은 정보를 밀어 넣기 위해 극한의 저장 밀도를 요구하면서, 부품 간 정밀 공차 기준은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한 원동력은 일본 특유의 '기업 간 수직·수평 협력 생태계'다.

세계 유일의 외부 미디어 공급사인 레조낙과 헤드 제조사인 TDK, 서스펜션의 NHK스프링, 고정밀 회전 모터를 만드는 니덱·미네베아미츠미, 고성능 플렉서블 회로 기판의 닛토덴코 등 일본 공급업체들은 설계 초기 단계부터 긴밀한 평가와 데이터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부품 간 매칭을 극한으로 미세 조정(튜닝)해 왔다.

수십 년간 축적된 복합 소재 합성 및 기계 제어 노하우가 서방이나 중화권 후발 주자들이 쉽게 넘볼 수 없는 철옹성 같은 기술 장벽을 완성한 셈이다.

혹독한 'HDD 겨울' 버텨낸 생존자들… 차세대 HAMR로 과점 체제 굳히기


현재의 호황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인내 끝에 찾아온 열매다.

2010년대 이후 개인용 PC와 노트북 시장에서 빠른 속도를 앞세운 SSD가 HDD를 완전히 밀어내면서, 하드 드라이브 산업은 장기간의 극심한 수요 절벽을 겪었다.

글로벌 세트 제조사는 미국의 시게이트와 웨스턴 디지털, 일본의 도시바 등 단 3개 사로 재편됐고, 부품 공급망 역시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거나 사업을 철수했다. 레조낙 역시 2023년 대만 공장을 닫는 등 가혹한 감산과 긴축을 견뎌내야 했다.

그러나 2024년 이후 생성형 AI 혁명이 본격화되면서 데이터 생성량이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자 시장 판도가 180도 뒤집혔다. 플래시 메모리 기반 SSD 대비 가격이 20배 저렴한 니어라인 HDD가 초대형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의 필수 저장 매체로 재조명받으면서, 시장에 살아남은 소수의 과점 공급업체들이 가격 협상력과 폭발적인 수익성을 독점하게 된 것이다.

이제 일본 부품사들의 시선은 단순한 생산량 확대를 넘어 '기록 밀도 혁신'으로 향하고 있다.

레이저 광선으로 디스크 표면을 순간 가열해 자화 기록 밀도를 비약적으로 높이는 '열 보조 자기 기록(HAMR)'과 고주파 마이크로파를 활용하는 'MAMR' 등 차세대 고밀도 기술이 30TB를 넘어 65TB, 100TB급 초고용량 드라이브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일본 소재·부품 연합의 입지는 대체 불가능한 글로벌 전략 자산으로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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