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원 CPI 예상 웃돌며 9월 인상 확률 85% 넘어…동결 땐 정책 신뢰도 타격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예상보다 강한 미국의 8월 물가가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을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세웠다.
그동안 인플레이션 억제를 연준의 최우선 과제로 강조해온 워시 의장이 오는 15~16일(이하 현지시각)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지지할지 여부가 정책 신뢰도와 연준 내 리더십을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금리 인상을 사실상 기본 시나리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된 뒤 9월 금리 인상 확률은 85%를 넘어섰고 12월 추가 인상 가능성까지 반영되기 시작했다.
CNBC는 예상보다 높은 물가가 워시 의장에게 금리를 올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이끄는 중앙은행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위험을 감수할 것인지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고 12일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도 워시 의장이 다음 주 회의를 앞두고 금리 인상 압박을 강하게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포춘은 이번 물가지표로 월가가 사실상 끝났다고 봤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다시 살아났다고 평가했다.
◇ 근원 CPI 0.3%…하지만 ‘휴대전화 효과’도 커
미 노동부에 따르면 8월 CPI는 전월보다 0.4%, 전년 동월보다 3.4% 상승했다.
식품과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는 전월 대비 0.3% 올라 시장 예상치 0.2%를 웃돌았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물가 상승 압력이 전방위적으로 확산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포춘에 따르면 8월 휴대전화 서비스 가격은 전월보다 5.9% 급등해 미 노동통계국(BLS)이 집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큰 상승률을 기록했다.
휴대전화 서비스 하나가 전체 근원 CPI 상승에 0.077%포인트 기여했다. 근원 CPI 전체 상승 기여폭 0.230%포인트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 항목을 제외하면 근원 CPI 상승률은 약 0.2% 수준으로 낮아진다.
스마트폰 자체의 가격은 오히려 전월보다 1.7%, 전년 동월보다 12.2% 하락했다. 전화기 등 관련 하드웨어 가격도 한 달 사이 2.4% 떨어졌다.
따라서 이번 물가 지표 가운데 일부는 일회성 요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고 휘발유 가격이 8월 한 달 3.9% 상승한 점은 향후 물가에 더 지속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는 요인이다.
유가 상승은 항공료와 운송비, 플라스틱 등 소비재 생산비까지 광범위하게 전달될 수 있다.
◇ 시장 “9월 인상”…12월 추가 인상까지 반영
시장은 물가 지표의 세부 내용보다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에 더 크게 반응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8월 CPI 발표 뒤 연방기금금리 선물에 반영된 9월 금리 인상 확률은 85%를 넘어섰다. 전날 약 70%에서 크게 높아졌다.
포춘도 시장이 다음 주 0.25%포인트 금리 인상 가능성을 약 85%로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시장 지표에서는 인상 확률이 90%에 근접했다.
투자자들은 9월에 그치지 않고 12월까지 두 번째 금리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도 반영하기 시작했다.
CPI 발표 전까지 금리 동결을 예상했던 일부 경제전문가들도 전망을 바꿨다.
TD뱅크, JP모건체이스 등은 물가 발표 뒤 다음 주 금리 인상을 예상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KPMG의 다이앤 스웡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문제는 연준이 금리를 올릴지 여부보다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어느 정도까지 올려야 할지에 있다”고 평가했다.
미 10년 만기 국채금리도 5%에 근접했다.
포춘은 “10년물 금리가 5%를 명확하게 돌파할 경우 2006~2007년 기록했던 5.25~5.35% 수준이 다음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 워시 “물가가 최우선”…이제 말보다 행동 시험대
워시 의장은 특정 금리 결정을 사전에 약속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달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연은 연례 심포지엄에서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둔화하지 않을 경우 연준에 추가적인 긴축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인플레이션은 우리의 2% 목표를 웃돌고 있다”며 현재 연준이 가장 집중해야 할 것은 물가라고 강조했다.
여름철 일부 물가지표가 예상보다 양호했지만 기조적인 인플레이션 흐름이 의미 있게 개선됐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도 말했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인플레이션인사이츠의 오메어 샤리프 대표는 워시가 잭슨홀에서 그런 연설을 해놓고 다음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지지하지 않을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도 시장이 보내는 신호는 명확하다며 연준이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경우 워시가 시장 참가자들의 신뢰를 잃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CNBC 역시 예상보다 높은 CPI 이후에도 워시가 움직이지 않을 경우 향후 그의 인플레이션 경고가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월러와 노선 차이…연준 내부도 시험대
연준 내부에서는 금리 인상 여부를 둘러싼 시각차가 존재해왔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는 지난 3일 최근 물가에서 디스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추가 지표를 확인한 뒤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남은 데이터를 더 확인하는 데 무게를 둬왔다.
그러나 8월 CPI가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기다리자는 쪽의 입지는 좁아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연준이 올해 다섯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동안에도 내부에서는 금리 인상 지지가 점차 늘어났다.
지난 7월 회의에서는 세 명의 위원이 0.25%포인트 인상에 찬성하며 반대표를 던졌고 투표권이 없는 두 명의 위원도 인상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에버코어ISI는 다음 주 금리 인상 가능성이 이제 상당히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CNBC는 워시가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지 못할 경우 연준 정책 논쟁의 중심이 의장이 아닌 월러 이사에게 옮겨간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 트럼프는 금리 인하 압박…독립성도 시험대
금리 인상은 워시 의장에게 또 다른 부담을 안긴다는 분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워시를 연준 의장에 지명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해왔다.
최근에는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경우 일부 국가와의 교역을 중단할 수 있다는 위협까지 내놨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11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연준이 큰 폭으로 움직이면 대통령이 이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시장 일각에서는 워시가 11월 3일 중간선거 이전에는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정치적 제약을 받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다만 CNBC는 이를 입증하는 증거는 없으며 워시가 통화정책 결정에서 자신의 경제 판단 이외의 요인을 고려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강조했다.
워시 역시 연준의 독립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문제는 이번 회의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자신의 기존 발언과 다른 결정을 내릴 경우 대통령의 압력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자초할 수 있다는 점이다.
◇ 기대인플레도 4.6%…“한두 번으로 끝날까”
금리 인상 압력은 CPI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시간대의 9월 소비자 조사에서 향후 1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4.6%로 전달 4.0%에서 크게 높아졌다.
2023년 이후 처음으로 소비자의 과반이 향후 12개월 동안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실업률은 낮고 안정적이라는 평가가 우세하며 임금이 물가 상승을 직접 부추기는 징후도 강하지 않다.
일부 연준 관계자는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이 당초 예상만큼 수요를 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경기둔화 우려 속에 단행했던 총 0.75%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일부 되돌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가 지난 8~10일 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연준이 다음 주 금리를 올릴 경우 한두 차례의 조정으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더 많은 인상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보기 시작했다.
◇ 증시는 버텼지만 채권시장은 경고
흥미로운 점은 뜨거운 CPI에도 미국 증시가 즉각적으로 급락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포춘에 따르면 물가 발표 뒤 미국 3대 주가지수는 오히려 상승했다.
AI 투자 확대에 힘입은 증시 상승세가 고유가와 국채금리 상승, 연준의 긴축 재개 가능성까지 계속 버텨낼 수 있을지가 새로운 시험대가 된 셈이다.
반면 채권시장은 이미 금융여건을 긴축시키고 있다.
미 10년물 국채금리는 5%에 근접했고 차입비용은 경제 전반에서 높아지고 있다.
워시 의장은 지난 7월 기자회견에서 연준 자체는 많은 일을 하지 않았지만 “시장은 상당히 많은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시장금리 상승이 연준 대신 금융여건을 긴축하고 있기 때문에 정책금리를 올릴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CNBC는 워시가 정확히 그런 뜻으로 말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결국 다음 주 FOMC는 단순한 0.25%포인트 금리 조정 여부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금리를 올리면 트럼프 대통령의 반발과 경기 둔화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동결하면 그동안 강조해온 물가 안정 의지와 정책적 신뢰도가 흔들릴 수 있다.
CNBC는 워시가 결단력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시장이 판단할 경우 투자자들이 트럼프 대통령,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월러 이사 같은 다른 인물을 사실상의 ‘그림자 의장’으로 바라볼 가능성까지 있다고 분석했다.
8월 물가 발표 이후 워시 의장의 선택지는 이전보다 크게 좁아졌다. 다음 주 금리 결정은 연준의 정책 방향뿐 아니라 그가 중앙은행을 실제로 얼마나 주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첫 본격적인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