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재무부가 유동성 공급과 수급 개선을 명분으로 국채 조기 환매(바이백) 일정을 공식화하자마자, 뉴욕 채권시장에서는 정반대의 매도 행진이 이어졌다.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발표 직후 하락하기는커녕 단숨에 주요 저항선을 돌파하며 급등했다. 정부가 직접 채권을 사주겠다고 나섰는데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튀어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금융시장의 절대 권력자인 재무장관의 정책 카드가 시장의 차가운 냉소 속에 무력화된 그 결정적 배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베센트 바이백의 한계와 월가의 엑시트(Exit)
베센트 장관이 꺼내 든 국채 바이백은 유통시장에서 거래량이 적고 수급이 꼬인 국채를 재무부가 되사들여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장기 금리의 급등세를 억누르겠다는 계산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월가의 대형 기관투자가들은 발표 직후 계산기를 두드린 끝에 이를 ‘매수 신호’가 아닌 ‘탈출(Exit) 기회’로 받아들였다. 이유는 명확했다. 그, 첫째가 규모의 극단적 비대칭이다. 미국의 연간 재정적자는 2조 달러에 육박하고 국채 발행 쓰나미는 매달 쏟아진다. 이에 비해 재무부가 제시한 바이백 규모는 한 회차당 수십억 달러, 연간 수천억 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거대한 공급 물량을 소화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통화 창출 없는 만기 교환의 효과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미국 재무부는 돈을 찍어내는 연방준비제도(Fed)가 아니다. 장기 국채를 사들일 현금을 마련하려면 단기 국채(T-bill)를 추가로 대거 찍어내야 한다. 결국 장기 빚을 갚기 위해 단기 빚을 늘리는 '차환 돌려막기' 구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정부 매수벽을 향한 물량 투하도 문제이다. 연기금과 헤지펀드 등 큰손들은 정부가 비싼 값에 매수 호가를 받쳐줄 때를 노려, 들고 있던 장기 채권을 재무부에 넘기고 현금을 확보해 발을 뺐다. 정부의 매수벽이 그대로 월가의 매도 물량받이로 전락한 셈이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T)의 구조적 한계와 파탄
이러한 정책 메커니즘은 본질적으로 ‘오퍼레이션 트위스트(Operation Twist)’의 변형이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는 단기채를 팔거나 늘리고 장기채를 사들여 장기 금리를 끌어내리는 기법이다. 1961년 케네디 행정부 당시 처음 도입되었고, 2011년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경기 부양을 위해 단기채를 팔고 장기채를 매입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그 두 번의 OT는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세 가지 구조적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그 첫째가 발행 주체의 신뢰도 차이이다. 2011년에는 통화정책 기관인 연준이 이미 대차대조표에 보유하고 있던 채권 포트폴리오를 교환했다. 반면 지금은 재정적자의 장본인인 행정부(재무부)가 빚을 내서 빚을 비트는 방식을 쓰고 있다. 시장은 이를 건전한 통화정책이 아니라 '재정의 통화 잠식'으로 규정했다. 둘째는 단기채 과다 발행에 따른 차환 리스크이다. 장기 국채를 흡수하기 위해 단기 국채 비중을 급격히 늘리자, 단기 채권의 만기가 돌아올 때마다 시장 금리로 계속 롤오버(만기 연장)해야 하는 위험이 폭증했다. 단기 금리마저 요동치게 만드는 자충수가 되었다.
셋째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의 반란이다. 2011년은 전 세계가 저물가·디플레이션을 걱정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현재는 재정적자 급증, 보호무역 관세, 끈적한 서비스 물가로 인해 인플레이션 불안이 가시지 않고 있다. 10년, 30년 뒤의 미래 가치를 신뢰할 수 없는 채권자들은 장기 보유에 따른 위험 보상(기간 프리미엄)을 더 세게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 금리 상승 압력으로 직결되었다.
'기준금리 인상'이 거론되는 이유?
바이백도 통하지 않고 트위스트 기교도 막히자,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상식을 뒤엎는 역설적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장기 국채금리를 진정으로 잡으려면 연준이 기준금리를 다시 올려야 한다는 논리다. 금리를 낮추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린다는 주장은 언뜻 모순처럼 보이지만, 채권시장의 속성을 들여다보면 현실적인 작동 원리가 존재한다.
지금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 차단이 가장 급하다. 현재 장기 금리가 급등하는 핵심 이유는 연준이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금리를 섣불리 내리거나 방치함으로써 장기 물가를 통제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 때문이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인상하는 결기를 보여야만 시장의 인플레이션 기대가 꺾이고 장기 채권의 위험 프리미엄이 줄어든다. 기준금리를 올려 단기 금리를 장기 금리보다 높여놓으면, 경제 전반의 차입 비용이 증가하면서 경기 둔화 신호가 뚜렷해진다. 역사적으로 확실한 경기 침체 국면에 진입할 때 대규모 자금은 주식과 원자재를 빠져나와 최종 안전자산인 장기 국채로 몰려들며 장기 금리를 강력하게 끌어내렸다.
기준금리 인상은 물론 양날의 칼이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36조 달러를 웃도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미국 정부가 부담해야 할 연간 이자 비용만 수천억 달러 단위로 폭증한다. 상업용 부동산 부실과 중소 은행의 유동성 위기 등 실물 경제 전반이 충격을 받을 수 있어 연준으로서도 쉽게 결단하기 힘든 고육지책이다.
베센트의 바이백 실패와 장기 국채금리 급등은 명백한 사실적 교훈을 던져준다. 정부의 부채와 재정적자가 구조적으로 줄어들지 않는 한, 금융공학적인 만기 조정이나 인위적인 매수 개입은 시장의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에게 통하지 않는다. 장기 국채를 되사기 위해 단기 국채를 증발하는 식의 변형 트위스트는 오히려 재정의 취약성을 시장에 자인하는 꼴이 되었다.
장기 금리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극약 처방까지 회자되는 현 상황은 미국 국채 시장이 더 이상 말이나 잔꾀로 통제되지 않는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지출 삭감과 세입 확충이라는 실질적인 재정 건전화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세계 금융황제의 권위도 거대한 부채의 압력을 버텨낼 수 없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