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론 CEO, 가격 폭등 책임에 애플 겨냥… "과거 단가 인하 압박이 부메랑"
미국 시장서 3사 상대 담합 소송 제기… GM 등 자동차 업계는 장기 계약으로 우군 확보
미국 시장서 3사 상대 담합 소송 제기… GM 등 자동차 업계는 장기 계약으로 우군 확보
이미지 확대보기인공지능(AI) 수요 폭증으로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이 빅테크 기업에서 메모리 제조사로 이동하는 구조적 흐름이 뚜렷하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치솟자 가격 결정권을 쥔 공급자와 비용 부담이 커진 고객사 사이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메모리 단가 상승 책임을 애플을 비롯한 대형 고객사의 과거 단가인하 압박 탓으로 돌리며 공개적으로 책임 공방에 나섰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번 갈등이 시장 전체 수급과 가격 체계에 미칠 파장을 정밀 분석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과 직결되는 핵심 변수이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서 터진 담합 소송과 마이크론의 자동차 공급망 재편 움직임은 한국 기업의 수익 구조와 시장 전략에도 거대한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가격을 후려치던 고객사가 자초한 공급 부족"
수미트 사다나 마이크론 최고영업책임자도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대형 고객사들의 공격적인 단가 인하 요구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고 꼬집었다.
업계에서는 마이크론이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나 사실상 애플을 정면 겨냥한 것으로 해석한다. 애플은 강력한 구매력을 무기로 공급망을 압박해 장기 계약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가격에 메모리를 조달해 왔다. 실제 2022년 고점 대비 2023년 저점 당시 메모리 고정거래가격은 3분의 1 수준까지 폭락했다.
이에 메모리 업계는 극심한 적자에 시달리며 설비투자를 줄여야 했다. 팀 쿡 애플 CEO는 최근 고성능 기기 가격을 올리며 메모리와 저장장치 비용 상승을 원인으로 댔으나, 정작 호황기에 가격을 묶어 이익을 독점하던 빅테크가 수급 위기 책임은 회피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HBM이 흡수한 생산능력… 가격 결정권 바꾼 '생산 패널티'
빅테크의 압박 속에서 공급자 우위로 시장 판도가 바뀐 핵심 동인은 고대역폭메모리(HBM) 공정의 특수성이다. HBM은 단순히 칩을 많이 파는 구조가 아니라, 일반 범용 D램(DDR5 등) 생산능력을 대거 희생시켜야 만드는 고난도 제품이다.
업계에 따르면 동일한 양의 메모리 용량(GB)을 생산할 때 HBM은 DDR5보다 약 3배 수준의 웨이퍼 공간을 소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칩 내부에 미세한 구멍을 뚫는 관통전극(TSV) 영역이 자리를 차지하는 데다, 얇게 깎아낸 실리콘 웨이퍼가 부러지는 등 미세 공정이 복잡해지며 발생하는 '비트 생산량 손실(Wafer Penalty)' 탓이다.
여기에 인공지능 서버 수요가 폭발하자 제조사들은 기존 범용 D램 라인을 HBM으로 대거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스마트폰과 개인용 컴퓨터(PC)에 들어가는 일반 메모리의 실제 공급 가능 용량이 물리적으로 축소됐다.
과거 고객사가 가격을 정하던 장기 고정가 체제는 무너졌고, 공급이 달리는 틈을 타 현물시장과 단기 계약 중심으로 가격 결정권이 제조사로 완전히 넘어왔다.
미국 법정으로 번진 소송… 2018년과 다른 실질 리스크
공급 부족과 가격 폭등은 법적 분쟁으로 번졌다. 미국 소비자와 소규모 유통상들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고의로 공급 물량을 조절해 범용 메모리 가격을 올렸다며 지난달 25일 미국 연방법원에 담합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일부 구간 기준으로 최대 700%에 달하는 가격 상승이 발생했다며 3사가 인공지능 수요 대응을 빌미로 범용 D램 생산을 줄였다고 주장한다.
시장을 장악한 3사가 동시에 소송에 휘말렸으나 실제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증권가 상황이다. 지난 2018년에도 미국에서 동일한 구조의 D램 가격 담합 소송이 제기됐으나, 미국 법원은 항소심에서 이를 기각했다. 3사 간 명시적 공모를 입증해야 하는 반독점 소송 특성상 입증 난이도가 높은 데다, 제조업체의 생산량 변화가 담합이 아닌 자유 시장 환경에 따른 독자적이고 합리적인 경영 판단이라는 이유였다.
이번 소송 역시 인공지능 구조 변화에 따른 공정상 웨이퍼 손실과 제품 전환이라는 명백한 기술적 근거가 존재한다. 사법 리스크가 기업 실적을 뒤흔들 실질적 위험이라기보다 투자 심리에 잠시 영향을 주는 단순 서사성 위기에 그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시장 판도 변화 속 국내 양사의 수혜 온도 차
시장 주도권이 공급자로 이동한 흐름 속에서 국내 메모리 양사의 수혜 크기는 제품 포트폴리오와 HBM 진입 속도에 따라 갈린다.
엔비디아 등 핵심 인공지능 고객사 구조에 집중도가 높은 SK하이닉스는 고부가가치 제품 판매 증가와 범용 D램 단가 상승의 이익을 동시에 누린다. 공정 전환에 따른 D램 공급 부족 효과를 가장 강력한 영업이익 성장 동력으로 흡수하는 구조다.
반면 HBM 시장 진입이 상대적으로 늦어진 삼성전자는 범용 D램 가격 상승 수혜는 받으나, 최고마진 제품인 HBM 매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단기적인 평균판매단가 상승 폭이 제한적일 수 있다. 다만 파운드리와 모바일 세트 사업을 아우르는 수직계열화 효과를 바탕으로 기초 체력을 다지며 라인 전환 속도를 올리는 상황이다.
자동차 장기 계약으로 진입장벽 구축… 수익 굳히기
마이크론은 공식 발표를 통해 제너럴모터스(GM)와 차량용 메모리를 장기 공급하는 전략적 고객 협정(SCA)을 맺었다고 밝혔다. 불안정한 IT 기기 시장을 넘어 자동차 분야로 공급망을 넓히며 지배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취지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일반 소비자용 제품과 달리 가혹한 주행 환경을 견뎌야 하므로 인증 기간이 매우 길고 까다롭다. 부품 결함이 인명 사고와 직결되는 만큼 완성차 업체가 한 번 채택한 공급업체를 교체할 때 치러야 하는 비용과 리스크가 극도로 커 사실상 락인(Lock-in) 효과가 강력하다.
즉 마이크론이 버지니아주 마나사스 공장에 20억 달러(약 3조 원)를 투자해 차량 전용 고성능 메모리 공급망을 미국 내에 구축한 행보는, 단순한 매출 확보를 넘어 경쟁사가 쉽게 뚫지 못할 독점적 진입장벽을 세운 셈이다.
가격 변동성이 큰 범용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고 장기적으로 고마진 수익 구조를 굳히겠다는 전략이다. 마이크론은 이번 분기에만 이 같은 성격의 독점성 장기 공급 계약을 16건이나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