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V·수율 장벽에 막힐 머스크… 독자 생산 전 삼성 파운드리에 '수주 기회' 될 수도
빅테크 칩 자급화 서사 가속화 속 한국 반도체 ‘위기와 기회’ 공존
빅테크 칩 자급화 서사 가속화 속 한국 반도체 ‘위기와 기회’ 공존
이미지 확대보기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최고경영자(CEO)가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연간 1테라와트(1조 와트)급 컴퓨팅 인프라를 직접 구축한다는 자체 인공지능(AI) 반도체 메가팹 '테라팹(Terafab)' 청사진을 전격 공개했다.
지난 30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는 스페이스X가 우주용 칩과 지상 로봇용 에지 칩을 아우르는 듀얼 아키텍처를 내재화해 대만 TSMC와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체제를 겨냥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스페이스X가 최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S-1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해당 구상은 재무적·법적 구속력이 없는 초기 단계로 확인되어 시장에 미칠 실질적 충격과 기술적 실현 가능성을 두고 냉정한 검증이 요구된다.
궤도 데이터센터·로봇 자급화 천명… 인텔·테슬라 협력 가능성 거론
스페이스X가 공시를 통해 밝힌 테라팹의 지향점은 명확하다. 지구 대기권 밖에 궤도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장기 구상을 제시하는 동시에, 지상에서는 자율주행과 차세대 휴먼노이드 로봇에 탑재할 핵심 반도체를 직접 설계·제조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1테라와트'는 전력 기준 인프라 용량 개념으로, 실제 반도체 생산능력과는 직접적으로 대응되지 않는다. 스페이스X는 노광 마스크 제작부터 로직 공정, 메모리, 첨단 패키징까지 하나의 폐쇄형 공장에서 소화해 제품의 개발 주기를 극단적으로 단축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머스크 생태계 중심의 연합체 구성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이스X는 지난 3월 테슬라와 반도체 엔지니어링 통합을 위한 일반 프레임워크 협정을 맺었으며, 4월에는 파운드리 고객 유치에 사활을 건 인텔의 14A(1.4나노급) 공정 및 패키징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이 파트너십 형태로 제기됐으나, 양산 시점과 수율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텍사스주 그라임스 카운티 공청회 자료 등에서는 프로토타입 팹의 초기 투자 규모가 최소 550억 달러(약 82조 원)에서 전체 단계별 공정 구축 시 최대 1190억 달러(약 179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 나오기도 했다.
극자외선(EUV) 확보·첨단 패키징 병목… 단기간에 넘기 어려운 진입장벽
그러나 반도체 업계와 외신 분석가들은 테라팹의 제조 수직계열화가 단기간에 실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한다. 네덜란드 ASML이 독점 공급하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의 확보 경쟁에서 후발 주자인 스페이스X가 우선순위를 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첨단 공정의 핵심인 CoWoS(칩온웨이퍼온서브스트레이트)나 포베로스(Foveros) 같은 고난도 첨단 패키징의 수율 안정화와 병목 현상 해결은 TSMC 등 글로벌 선두 기업들도 수년 이상 소요된 구조적 진입장벽이다.
실제로 스페이스X가 작성한 S-1 서류의 '리스크 요인' 항목을 보면, 테라팹 구상은 구체적인 설비투자(CAPEX) 집행 계획이나 생산 이정표가 확정되지 않은 원안 상태다. 인텔 및 테슬라와의 파트너십 역시 언제든 파기될 수 있는 비구속적 합의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스페이스X는 독자 생산 체제로의 전면 전환 대신, 기존 파운드리 기업들과의 외주 계약을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소싱 모델을 유지하겠다고 명시했다.
반전의 열쇠 쥔 삼성전자… 기술 검증 및 완충재로서의 ‘수주 기회’
초기 자본 유동성 압박과 제조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스페이스X의 영악한 계산도 삼성전자의 틈새 수주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빅테크의 자체 제조 진입이 선단 공정 가동률 병목에 직면할 때마다, 시장 내 유일한 대안 파운드리로서 삼성전자가 누릴 완충재 역할의 가치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국내 반도체 업계 미칠 영향… 리스크와 기회가 공존하는 흐름
이번 이슈는 당장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을 갉아먹는 단기 실적 훼손 요인이라기보다,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빅테크의 칩 자급화 서사가 확장됨에 따라 발생할 멀티플(valuation multiple)을 압박하는 중장기 할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엔비디아와 애플 등 핵심 빅테크 고객사들을 강하게 묶어둔 록인(Lock-in) 구조의 TSMC와 달리, 상대적으로 고객 기반이 제한적이고 다변화 과제를 안고 있는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는 리스크 민감도가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초기 제조 공백을 메울 파트너로서의 수주 기회가 열려있다는 점은 분명한 상쇄 요인이다.
앞으로 반도체 투자자들이 내 계좌의 자산 가치를 지키기 위해 추적해야 할 3대 체크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스페이스X가 향후 집행할 테라팹의 실질적인 팹 부지 확보와 장비 발주 현황이다. 텍사스 프로토타입 부지 외에 실제 조 단위의 계약 예산이 집행되는지 확인해야 구상의 실재성을 입증할 수 있다.
둘째, 인텔 및 테슬라와의 비구속적 동맹이 구체적인 지분 투자나 법적 구속력을 갖춘 합작법인(JV) 설립 계약으로 전환하는지 여부다. 정식 계약서가 체결되어야만 공정 설계 공백과 기술 리스크를 상쇄할 동력이 확보된다.
셋째,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미세공정 가동률과 글로벌 대형 팹리스 고객사 추가 수주 성과다. 빅테크의 자체 제조 진입 시도를 무력화할 수 있는 독보적인 공정 수율과 단가 경쟁력을 검증하는 것이 본질이다.
머스크의 테라팹 구상은 반도체 제조 영역의 빗장을 열려는 글로벌 빅테크의 상징적 도발이며, 결국 승부는 구상이 아니라 자본과 시간의 투입 속도에서 갈린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