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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물가, 25년 만에 최대 급등… 한국 휘발유 2000원, 세계는 더 심각하다

UBS "3월 글로벌 에너지 인플레 월간 5.5%… 러-우 전쟁 때보다 가팔라"
한국 석유류 물가 9.9% 뛰었지만, 최고가격제가 실제 충격 가리고 있다
UBS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5%를 차지하는 45개 주요 선진·신흥국의 물가 데이터를 추적하고 있다. 이 가운데 3월 수치를 보고한 27개국의 에너지 물가 월간 상승률 중간값이 5.5%에 달했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UBS는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85%를 차지하는 45개 주요 선진·신흥국의 물가 데이터를 추적하고 있다. 이 가운데 3월 수치를 보고한 27개국의 에너지 물가 월간 상승률 중간값이 5.5%에 달했다. 이미지=제미나이3
서울 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을 넘겼다. 하지만 정작 한국 운전자가 체감하는 가격은 세계 평균에 견주면 '할인판'에 가깝다.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가 국제유가 급등분의 절반도 국내 가격에 반영하지 않고 있어서다. 그 사이 전 세계 에너지 물가는 25년 만에 가장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다.
마켓워치는 14(현지시각) UBS의 아렌드 카프테인 글로벌 경제·전략 리서치 총괄의 분석을 인용해 보도했다. UBS는 세계 국내총생산(GDP)85%를 차지하는 45개 주요 선진·신흥국의 물가 데이터를 추적하고 있다. 이 가운데 3월 수치를 보고한 27개국의 에너지 물가 월간 상승률 중간값이 5.5%에 달했다. 2022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기록마저 넘어선, 1999년 이후 최대치다. 카프테인 총괄은 "보고 국가의 3분의 2가 자국 역대 에너지 물가 분포에서 97번째 백분위 이상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예외는 이례적 난동(暖冬)으로 에너지 수요가 줄었던 스웨덴 정도에 그쳤다.

에너지 가격 상승 지표.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에너지 가격 상승 지표. 도표=글로벌이코노믹


호르무즈해협 봉쇄, 하루 750만 배럴이 사라졌다


충격의 진원지는 호르무즈해협이다.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 작전 이후 사실상 폐쇄된 이 해협은 세계 해상 석유 수송의 약 20%가 통과하는 관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47일 발표한 단기에너지전망에 따르면 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카타르·바레인 6개국의 원유 생산이 3월 하루 750만 배럴 감소했고, 4월에는 910만 배럴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보고서도 3월 회원국 산유량이 하루 790만 배럴 급감했다고 확인했다.

국제유가는 올해 들어 폭등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는 연초 배럴당 61달러(89700)에서 한때 117달러(172000)를 넘기며 연중 최고 69% 상승을 기록했다. 14일 현재 배럴당 97달러(142600) 안팎에서 거래된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협상 기대가 100달러(147050) 아래로 가격을 잡아두고 있었지만, 주말 21시간 마라톤 협상이 결렬된 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항구 해상 봉쇄를 선언하면서 다시 변동성이 커졌다. 다만 이란 측이 협상 재개 의사를 밝히면서 14WTI97달러 아래로 밀리는 등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다.

유럽 천연가스 기준인 네덜란드 TTF 선물도 메가와트시(MWh)47유로(81500) 안팎으로 올해 들어 35% 이상 올랐다. EIA에 따르면 브렌트유 현물은 1분기에 배럴당 61달러(89800)에서 118달러(173800)로 뛰었고, 이 상승폭은 물가를 감안한 실질 기준으로 1988년 이후 최대다. 카타르의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시설이 3월 초 이란 공습으로 가동을 멈추면서 글로벌 LNG 공급에도 구멍이 뚫렸다.

한국, 가격 통제로 물가 막았지만 수요는 오히려 늘었다


한국도 에너지 물가 폭풍권 안에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42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소비자물가는 전년 같은 달 대비 2.2% 올랐고, 석유류 항목이 9.9% 뛰며 전체 상승을 이끌었다. 교통 부문 물가 상승률은 5.0%로 전 부문 가운데 가장 높았다. 국가데이터처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두바이유가 2월 배럴당 68달러(10만 원)에서 3128달러(188300)로 뛰었지만,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상승폭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313일부터 도입한 석유 최고가격제가 방파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가격을 인위로 억누른 대가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14일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95, 서울은 2024원이다. 이란 전쟁 전 1700원대에서 약 17% 오른 수준이지만, 같은 기간 중동산 원유 가격이 50% 이상 뛴 것에 비하면 절반도 반영하지 못한 셈이다. 한국석유관리원 자료를 보면 최고가격제 시행 뒤 3주간(33~41) 전국 휘발유 판매량은 848619킬로리터()로 지난해 같은 기간(846511)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국제유가가 폭등하는데 소비가 줄지 않는, 교과서에서 경고하는 가격 통제의 전형이다.

정유업계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에 정유사 손실 보전용으로 42000억 원을 배정했지만, 업계는 4월 말이면 누적 손실이 이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본다. 한국은행도 "최고가격제 도입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과 수요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전기요금을 억제해 한국전력 부채가 폭증한 전례가 정유업계에서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가 주시해야 할 세 가지 지표


에너지 물가 충격이 어디까지 번질지 가늠하려면 세 가지를 추적해야 한다.

첫째, 호르무즈해협 통항 재개 시점이다. EIA4월 이후 해협 통행이 점진 재개된다는 전제에서 브렌트유가 2분기 배럴당 115달러(169300)로 정점을 찍은 뒤 4분기 90달러(132500) 아래로 내릴 것으로 전망했다. 반대로 협상 결렬이 반복되면 일부 분석기관은 연중 150달러(22만 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본다.

둘째, 한국의 기대인플레이션이다. 한국은행 3월 소비자동향조사에서 향후 1년 기대인플레이션은 2.7%로 전월 대비 0.1%포인트 올랐고, 석유류를 물가 상승 주요 원인으로 꼽은 응답 비중이 52.7%포인트나 급증했다. 이승훈 메리츠증권 연구위원은 "물가 상승 압력이 기대인플레이션을 건드린다고 인식되면 한국은행도 연내 금리 인상을 검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셋째, 최고가격제의 출구 전략이다. 가격 통제가 장기화하면 정유사 재무 악화와 에너지 수요 왜곡이 동시에 진행되는 이중 부담이 쌓인다. 한국은행이 410일 기준금리를 2.5%로 동결하면서도 인플레이션 전망을 종전 2.1%에서 2.2%로 높인 것은 이 위험을 반영한 신호다.

25년 만에 가장 거센 에너지 물가 충격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한국은 최고가격제로 당장의 소비자 부담을 줄였지만, 그 사이 정유사 손실·재정 부담·소비 왜곡이라는 '보이지 않는 청구서'는 날마다 두꺼워지고 있다. 가격 통제를 해제하는 순간 그동안 미뤄둔 인상분이 한꺼번에 소비자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위기를 얼마나 잘 막느냐보다 출구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더 중요한 국면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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