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3개국 원전 '예산 블랙홀' 전락… 노르웨이, 48년 만에 '신중론' 선회
한국, 기술력 넘어 공기·비용 리스크 해소할 '금융·패키지 전략' 시급
한국, 기술력 넘어 공기·비용 리스크 해소할 '금융·패키지 전략' 시급
이미지 확대보기폴란드 경제 매체 방키에르(Bankier)는 12일(현지시간) 노르웨이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보고서'를 인용해 이를 보도했다. 1978년 이후 48년 만에 작성된 이번 보고서는 최근 탄소 중립과 에너지 수요 급증으로 다시 불붙은 노르웨이 내 원전 도입 논의에 제동을 거는 모양새다.
이미지 확대보기유럽 원전의 잔혹사, 3조 원 사업이 19조 원으로 '둔갑'
노르웨이 정부가 원전 투자에 경계심을 드러낸 배경에는 유럽 각국에서 벌어지는 '예산 블랙홀' 현상이 있다. 보고서는 유럽 대형 원전 건설 현장이 당초 계획을 비웃듯 천문학적으로 불어난 비용과 끝없는 공기 지연 탓에 국가 재정의 늪으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노르웨이 정부가 분석한 유럽 3개국의 사례는 원전 투자가 안고 있는 구조적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장 먼저 지목된 핀란드의 올킬루오토 3호기는 기술적 결함과 안전 기준 강화로 공사비가 3배 이상 뛰었다. 원전 종주국을 자부하는 프랑스의 플라망빌 3호기 역시 설계 변경과 시공 오류가 반복되며 초기 예산 대비 4배에 가까운 자금이 쏟아졌다. 특히 영국의 힝클리 포인트 C는 공사비가 80조 원에 육박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건축물'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① 핀란드 올킬루오토 3호기, 13년의 기다림, 3배의 비용
가장 먼저 지목된 사례는 핀란드의 올킬루오토 3호기다. 지난 2005년 착공 당시만 해도 2010년 가동을 목표로 약 30억 유로(약 5조 2200억 원)가 투입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기술적 결함과 안전 기준 강화 등의 악재가 겹치며 실제 가동은 당초 계획보다 13년이나 늦어진 2023년에야 이뤄졌다. 그 사이 공사비는 110억 유로(약 19조 1600억 원)로 치솟으며 초기 예산의 3배를 훌쩍 넘어섰다.
② 프랑스 플라망빌 3호기, 종착역 보이지 않는 '공사비 폭등'
원전 강국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다. 2007년 첫 삽을 뜬 플라망빌 3호기는 2012년 준공을 목표로 33억 유로(약 5조 7500억 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그러나 설계 변경과 시공 오류가 반복되면서 준공 예정일은 2024년으로 밀려났고, 투입 비용은 현재 130억 유로(약 22조 6500억 원) 이상으로 집계된다. 초기 예산 대비 무려 4배에 가까운 자금이 쏟아진 셈이다.
③ 영국 힝클리 포인트 C, 80조 원 투입되는 '세계 최대 공사'
영국의 힝클리 포인트 C 프로젝트는 유럽 원전 리스크의 정점을 보여준다. 2016년 착공 시점에 산정된 예산은 약 210억 유로(약 36조 5900억 원)였으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최대 460억 유로(한화 약 80조 1500억 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2025년으로 예정됐던 준공 시점 역시 2030~2031년으로 연기되면서, 영국 정부와 사업자 모두 막대한 재무적 부담을 떠안게 됐다.
노르웨이 정부는 이처럼 유럽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공기 지연→이자 비용 상승→공사비 폭등'의 악순환이 단순한 개별 국가의 문제가 아닌, 원전 산업의 체계적 위험이라고 진단했다. 대형 원전 건설이 국가 경제의 가시가 될 수 있다는 경고다.
특히 영국의 힝클리 포인트 C 프로젝트는 공사비가 우리 돈으로 약 80조 원(460억 유로)에 육박하며 초기 계획 대비 2배 이상 불어난 상태다. 노르웨이 전문가들은 "원전 건설 경험이 없는 국가에서 이러한 대규모 투자를 감행할 경우, 국가 재정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SMR도 아직은 모험"… 노르웨이, '수력 현대화' 가닥
보고서는 차세대 대안으로 주목받는 소형모듈원자로(SMR)에 대해서도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SMR이 대형 원전보다 유연하고 저렴할 가능성은 있지만, 기술적 완성도와 상용화 측면에서 여전히 '불확실한 도박'이라는 평가다.
노르웨이 정부는 원전이라는 불확실성 대신 현실적인 에너지 안보 강화를 선택했다. 현재 전력 수요의 99%를 담당하는 ▲수력 발전소의 현대화 ▲국가 송전망 확충 ▲에너지 소비 효율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확정했다. 2018~2019년 경제적 이유로 기존 연구용 원자로를 폐쇄했던 노르웨이로서는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인프라와 전문 인력 부재도 거대한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K-원전 향한 시사점, '공기 준수와 예산 내 집행' 입증이 수주 결정
이번 노르웨이의 보고서는 체코, 폴란드 등 유럽 시장 확대를 노리는 한국 원전 산업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글로벌 원전 시장의 신뢰도가 비용 리스크로 인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다음 세 가지 지표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첫째, 공기 준수(On-Time)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프랑스·영국 등의 사례로 극대화된 '공기 지연 공포'를 한국 특유의 시공 능력으로 안심시켜야 한다.
둘쩨, 금융 패키지의 경쟁력 확보다. 천문학적 공사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국가들을 위해 저금리 금융 지원 및 운영 수익 공유 등 입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필수적이다.
셋째, SMR 실제 가동 실적이다. 노르웨이가 지적한 SMR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동 실적을 조기에 확보하는 것이 차세대 수주전의 핵심이다.
노르웨이의 변심은 단순한 '에너지 믹스'의 변화가 아니라, 원전 산업이 직면한 '비용 통제 불능'에 대한 전 세계적 경고다. 원전 강국을 지향하는 한국으로서는 유럽 국가들이 느끼는 재정적 공포를 기술력과 자본력으로 어떻게 상쇄하느냐가 향후 'K-원전' 르네상스의 향방을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