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설비투자 981조 원, 빅테크 현금흐름 갉아먹다
월가 전문가 3인 "반도체 장비·메모리·고배당주로 분산하라“
월가 전문가 3인 "반도체 장비·메모리·고배당주로 분산하라“
이미지 확대보기기술주 중심 나스닥 종합지수는 올 들어 5.9% 하락하며 공식적인 조정 국면에 진입했고, 월가에서는 "기술주 변동성이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경제 전문지 배런스(Barron's)가 4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로벌 기술주 재편의 구조와 대응 전략을 분석했다.
'자산 경량주'의 신화가 깨지다
아마존닷컴, 메타 플랫폼스, 알파벳 세 기업이 올해 데이터센터와 AI 하드웨어에 쏟아붓겠다고 약속한 금액은 합산 6500억 달러(약 981조 원)에 이른다. 불과 2~3년 전 이들 기업을 세계 최고의 투자처로 만들었던 비결은 공장도 없고, 창고도 없이 현금흐름을 쏟아내는 '자산 경량' 모델이었다. 그 공식이 지금 정면으로 부정당하고 있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Interactive Brokers)의 수석 전략가 스티브 소스닉(Steve Sosnick)은 배런스와의 인터뷰에서 "기술 기업들은 자산을 거의 보유하지 않으면서도 막대한 매출과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기업으로 평가받아 왔는데, 그 이야기가 이제 달라졌다"고 말했다.
야누스 헨더슨 인베스터스(Janus Henderson Investors)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조나선 코프스키(Jonathan Cofsky)는 더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빅테크 기업들의 현금흐름이 0을 향해 가는 동안, 메모리와 광통신 등 관련 기업들에는 오히려 풍년"이라고 말했다.
이는 단순한 하락 국면이 아니다. 가벨리 펀드(Gabelli Funds)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존 벨튼(John Belton)은 "시장이 위험 회피 국면으로 전환되면 베타(시장 민감도)가 높고 밸류에이션이 고평가된 종목부터 먼저 팔아치운다"며 "기술주는 그런 국면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첫 번째로 팔리는 자산군"이라고 진단했다.
“밸류에이션은 내려왔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그대로다”
벨튼은 "단기 주가 방향을 맞히기는 어렵지만, 장기 관점에서 보면 실적이 뒷받침될 경우 주가는 언젠가 따라간다"며 낙폭이 커진 대형 기술주를 장기 매수 기회로 볼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나 장밋빛 해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스닉은 "이번 조정이 정말 불안했다면, 본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위험을 지고 있다는 뜻"이라며 베타가 낮고 배당 수익률이 높은 종목, 특히 잉여 현금흐름으로 배당을 직접 충당할 수 있는 기업 쪽으로 눈을 돌리라고 조언했다.
US 뱅크 자산운용의 수석 주식 전략가 테리 샌드번(Terry Sandven)은 "이란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상황이 나아질 때까지 시장은 횡보하면서 변동성이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투자 역설이 낳은 새 승자, 반도체 장비·메모리
월가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략은 AI 투자의 수혜를 직접 받는 '공급망 하단 기업들'을 겨냥하는 것이다. 코프스키가 말한 "곡괭이·삽(picks and shovels)" 전략이 바로 이것이다.
반도체 장비, 메모리, 광통신 등 초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의 설비투자 수요를 직접 흡수하는 기업들은, 발주처인 빅테크가 현금을 쏟아부을수록 오히려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비비엑 아리아(Vivek Arya) 애널리스트는 2026년 유망 반도체 종목으로 엔비디아, 브로드컴(Broadcom), 램 리서치(Lam Research), KLA, 아날로그 디바이스(Analog Devices),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Cadence Design Systems) 6개 기업을 제시하며 "마진 구조로 입증되는 경쟁적 해자를 가진 기업에 주목하라"고 말했다.
이 구조는 한국 반도체 산업과도 직결된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최대 공급사인 SK하이닉스는 HBM3E 이후 차세대 규격까지 엔비디아와 독점적 공급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AI 칩 수요가 오를수록 실적이 동반 상승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빅테크의 AI 설비투자 확대가 HBM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이것이 다시 국내 메모리 기업들의 수주 증가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당분간 유효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 기술주를 사도 될까…세 가지 판단 기준
현시점에서 기술주 투자를 재점검하는 투자자라면 세 가지 변수를 함께 봐야 한다는 게 월가의 중론이다.
첫째, 이란전쟁 종전 시점이다. 나스닥은 이미 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하며 공식적인 조정 국면에 진입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올 1분기 낙폭이 25%를 넘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이후 최악의 분기 성적을 기록 중이다.
전쟁이 장기화 될 수록 기술주에 가해지는 하방 압력도 이어질 공산이 크다.
둘째,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경로다. 유가 급등이 물가를 자극하면 연준의 긴축 기조가 강화될 수 있고, 이는 미래 현금흐름 할인율 상승으로 이어져 성장주 성격이 강한 기술주에 직격탄이 된다.
셋째, AI 투자의 수익화 가시성이다. 아마존, 메타, 알파벳이 올해만 6500억 달러(약 981조 원)를 AI 인프라에 쏟아붓는 동안, 월가는 이 투자가 언제 이익으로 돌아오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 수익화 시점이 불투명한 한, 이들 주가에는 구조적 불확실성이 남는다.
벨튼은 배런스와의 인터뷰에서 "큰 그림을 유지하고, 장기 관점이 있다면 단기에 과잉 반응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역으로, 단기 대응이 필요한 투자자에게는 지금이 포트폴리오 위험을 재점검할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기술주의 변동성이 단기에 해소될 명확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빅테크의 투자가 클수록 이득을 보는 공급망 상단의 기업들과 저베타·고배당 자산으로의 분산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