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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의회, 호르무즈 통행료 법안 공식 승인…유가 전망과 한국 영향은

선박 1회 30억 원·리알화 납부 의무화... 미국·이스라엘 통과 금지 명문화
골드만삭스 "공급 부족 8억 배럴"… 한국 성장률 0.3%p 하락 경고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유조선. 사진=연합뉴스
세계 해상 원유 수송의 20%가 지나는 호르무즈 해협이 이제 법적 근거를 갖춘 '유료 통행 구역'으로 굳어지는 수순에 들어섰다. 이란 의회 안보위원회가 통행료 법안을 공식 승인하면서 본회의 표결만 남겨둔 가운데, 걸프 해역에 발이 묶인 선박 2000척 가까이가 '통행료 청구서'를 받을 현실에 직면했다.
통행료 법제화는 에너지 가격 상승을 더 긴 호흡으로 고착시키는 구조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경고가 월가와 글로벌 에너지 업계에서 동시에 나온다.

이란 국영방송(IRIB)과 반관영 타스님(Tasnim)·파르스(Fars) 통신은 30일(현지시각)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법안을 공식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위원회 승인 완료…5대 핵심 조항 명문화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는 30일(현지시각)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법안을 승인했다고 이란 국영방송(IRIB)이 전했다. 법안은 이란의 '주권적 역할 구현'을 명시하는 동시에 해협 통행료를 이란 화폐인 리알(rial)로 납부하도록 규정했다.

타스님 통신에 따르면 법안은 미국·이스라엘 및 이란에 단독 제재를 가한 국가와 관련된 선박의 해협 통과를 전면 금지하는 조항도 담고 있다.

위원회 소속 의원은 법안이 이란과 해협 반대편 오만 간의 협력 방안도 포함한다고 밝혔다. 이는 해협 전 구간을 이란 단독이 아닌 오만과의 공동 관리 체제로 묶겠다는 구상으로, 국제 해운 질서를 근본부터 흔드는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알라에딘 보루제르디(Alaeddin Boroujerdi) 이란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 위원은 이란 국영 SNN TV에서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곧 의회가 법안을 채택하면 새 체제가 이 수로를 관할하게 된다. 전쟁에는 비용이 들기 마련이고, 우리는 당연히 해협을 지나는 선박에서 통행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3월 초부터 케심 섬과 라라크 섬 사이 통제 항로에서 사실상 운영해 온 비공식 징수 체계가 법적 근거를 얻게 된다.

통과를 원하는 선사는 이미 IRGC 연결 중개인에게 국제해사기구(IMO) 식별번호, 화물 명세서, 선원 명단, 선박 소유 정보, 목적지를 제출한 뒤 항로 코드와 에스코트를 받는 방식으로 운용돼 왔다. 이 과정에서 최소 2척이 중국 위안화로 200만 달러(약 30억 원)를 납부하고 통과한 사례가 확인됐다.

연간 최대 1000억 달러 노린 '경제 전쟁'…국제법 정면 위반 논란


이란이 겨냥하는 경제적 이득은 수치로 명확히 드러난다. 타스님 통신은 평시 하루 약 140척이 통과하는 해협에서 척당 200만 달러(약 30억 원)를 받는다면 연간 통행료 수입이 1000억 달러(약 150조 원)에 달하며, 이는 이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0~25%에 해당한다고 추산했다.

현재 걸프 해역에 발이 묶인 선박 약 3200척이 한꺼번에 통과한다면 이란이 단번에 거둬들이는 금액은 64억 달러(약 9조 7000억 원)에 이른다.
이란은 '수에즈 운하식 주권 행사'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국제법 전문가들은 이 논리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수에즈·파나마 운하는 인공 수로로 이집트와 파나마가 합법적으로 통행료를 받지만, 호르무즈 해협은 자연 국제 해협이다. 168개국이 비준한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은 국제 해협의 통과통항권을 보장하고 통행료 부과를 명시적으로 금지한다.

이란은 UNCLOS에 서명했으나 비준 절차를 밟지 않아 협약에 법적으로 묶여 있지 않다는 논리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 통행료를 '안보 서비스' 제공 대가로 포장하면 협약의 예외 조항을 활용할 여지가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란 측 협상 요구에도 통행료 문제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등 일부 중재국은 호르무즈 통행료를 부과하는 '수에즈 운하식 구상'을 미 백악관에 전달했으며, 튀르키예·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가 호르무즈 내 원유 수송을 관리하는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행량 95% 급감·WTI 102달러…한국 경제도 직격


해상 정보 분석업체 클리플러(Kpler)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행량은 정상 수준보다 95% 급감했다. 통행료 법제화는 해협이 다시 열린 뒤에도 선박 운항 비용을 항구적으로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호르무즈 해협 물동량이 6주 동안 정상 수준의 5%에 머물 경우 누적 원유 공급 부족이 8억 배럴을 웃돌 것"이라며 올해 브렌트유 평균 가격 전망치를 배럴당 77달러에서 85달러로 높이면서 "사상 최대 원유 공급 충격"이라고 규정했다.

마이크 워스(Mike Wirth) 셰브론(Chevron) 최고경영자(CEO)는 28일(현지시각)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에너지 콘퍼런스 '세라위크'에서 "실제 원유 공급 상황은 선물시장 가격이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빠듯하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물리적 충격이 전 세계 에너지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데도 선물 가격은 이를 크게 밑돌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에서는 "두바이유 가격이 연평균 100달러에만 달하더라도 우리 경제 성장률은 0.3%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는 1.1%포인트 상승 압력을 받는다"며 "에틸렌, 포토레지스트 원료, 전해질, 분리막 코팅 소재 등의 공급 차질로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은 물론 생필품 수급에도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원유 도입의 70.7%를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법제화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사실상 운영 중인 IRGC 징수 체계 자체가 에너지 조달 비용을 높이는 요인이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항행 선박의 보험료는 전쟁 전보다 10배 이상 뛰었고, 통행료까지 법적 근거를 얻으면 이 비용은 정유사와 석유화학사를 거쳐 소비자 물가로 전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에너지 시설 파괴 기한을 오는 4월 6일까지 연장한 상태다. 이란이 미국의 15개 항목 휴전 조건을 거부하고 자체 5개 항 역제안을 내놓은 상황에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법제화는 이란이 협상 테이블에서 쥔 가장 강력한 경제적 압박 카드가 됐다는 분석이 월가 안팎에서 나온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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