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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칩 수출에 '전자발찌' 단다…美 하원, AI 반도체 위치추적 의무화 법안 추진

AI 반도체 수출 통제 패러다임 전환…'성능 제한'에서 '위치·용도 검증'으로
하원 외교위 통과한 '칩 보안법', 엔비디아·AMD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 공급전략 전면 재편 불가피
중국 내 미국산 칩 수입 중단론 확산…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기술 블록화' 직격탄 우려
미국이 해외에 수출한 인공지능(AI) 반도체는 앞으로 팔린 뒤에도 위치가 추적된다. 칩 안에 심어진 위치 검증 장치가 반도체가 어느 나라, 어느 시설에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허가받지 않은 곳으로 이동하면 제조사가 이를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이미지=제미나이3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이 해외에 수출한 인공지능(AI) 반도체는 앞으로 팔린 뒤에도 위치가 추적된다. 칩 안에 심어진 위치 검증 장치가 반도체가 어느 나라, 어느 시설에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허가받지 않은 곳으로 이동하면 제조사가 이를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이미지=제미나이3
미국이 해외에 수출한 인공지능(AI) 반도체는 앞으로 팔린 뒤에도 위치가 추적된다. 칩 안에 심어진 위치 검증 장치가 반도체가 어느 나라, 어느 시설에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허가받지 않은 곳으로 이동하면 제조사가 이를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미국 의회가 추진 중인 '칩 보안법(Chip Security Act, H.R.3447)’이 설계하는 새로운 반도체 감시 체계의 핵심이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지난 26(현지시각) AI 반도체 수출 통제의 패러다임을 바꿀 '칩 보안법'을 찬반 토론 끝에 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마크업 심의(조항별 심사와 표결)을 거쳐 통과시켰다. 미국 입법은 5단계 흐름으로 진행된다. 법안 발의 → 위원회 마크업(현 단계) → 하원 본회의 표결 → 상원 표결 → 대통령 서명(법률 성립) 순이다. 지금 이 법안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한 것으로, 법률 성립까지는 아직 3단계가 남아 있다. 입법 절차를 남기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미 글로벌 AI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킬스위치가 아닌 '전자발찌'…법안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


이 법안을 둘러싸고 국내외 일부 매체에서 '원격 킬스위치 의무화'라는 표현이 확산되지만, 이는 법안 내용과 정반대다. 의회 공식 법안 텍스트(Congress.gov)를 확인하면 칩 보안법은 "킬스위치나 지오펜싱 메커니즘처럼 칩의 기능을 저해할 수 있는 어떠한 보안 메커니즘도 요구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안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원격 차단이 아니라 '위치 검증(Location Verification)'이다.

구체적으로 법안은 수출 규제 대상 첨단 칩(ECCN 3A090 )에 소프트웨어·펌웨어·하드웨어 가운데 가능한 방식으로 위치 검증 메커니즘을 탑재하도록 규정하고, 제조사가 법 시행 후 180일 이내에 이를 이행하도록 했다. 또한, 칩이 승인되지 않은 지역으로 이전되거나 변조 시도가 감지되면 제조사가 이를 당국에 즉시 보고해야 한다는 의무도 담겼다.

이 방식의 가장 유력한 구현 수단 가운데 하나로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PBLV(Ping-Based Location Verification), 즉 핑 기반 위치 검증이다. 신호 왕복 시간을 이용해 칩의 물리적 위치를 약 80km 오차 범위에서 확인하는 방식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적용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네트워크 지연환경이나 중계 서버를 활용할 경우 정확도가 저하될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칩 작동 자체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킬스위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위치를 파악한다는 것과 기능을 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며 "현재 법안은 추적이지 차단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법안이 나온 배경, 우회 밀수 15100억 원의 실패한 통제


이 법안이 탄생한 직접적 계기는 딥시크(DeepSeek) 사태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중국 수출이 금지된 엔비디아 첨단 칩을 활용해 AI 모델을 개발했다는 의혹이 하원 중국특별위원회 보고서를 통해 제기됐고, 이를 계기로 20255월 법안이 발의됐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 등에 따르면 중국이 수출 통제를 위반해 빼돌린 미국산 칩 규모는 10억 달러(15100억 원)를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기존의 성능 제한 방식은 사실상 우회로가 뚫려 있었다. 엔비디아가 중국 전용으로 성능을 낮춰 설계한 H20 등의 제품도 중동·동남아시아를 경유하는 재수출 경로를 통해 중국 군사·연구 기관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법안 심의 당일인 지난 26일에도 캘리포니아 하드웨어 업체에서 수백만 달러 규모의 규제 칩을 불법 조달하려 한 피의자 3명이 공모 혐의로 기소되며 법안의 시급성을 뒷받침했다.

하원 외교위원장 브라이언 매스트는 "첨단 AI 칩을 수출할 때 중국 군에 흘러들어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우리는 AI 군비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 전망과 산업계 반발, 32% 통과 가능성의 현실


법안이 실제로 법률이 되기까지의 경로는 순탄하지 않다. 입법 분석 기관 고브트렉(GovTrack)은 이 법안의 하원 통과 가능성을 약 32%, 최종 성립 가능성을 12%로 추산했다. 상원에는 동일한 내용의 S.1705가 코튼(공화워런(민주) 의원 공동 발의로 계류 중이어서 양원에서 초당적 지지 기반이 형성돼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반면 업계의 반발은 거세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3월 성명에서 "검증되지 않고 비용도 막대한 온칩 메커니즘을 강제하는 것은 미국 반도체 기술에 대한 글로벌 신뢰를 훼손하고 수출 경쟁력을 스스로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엔비디아는 젠슨 황 CEO의 주도로 "중국 시장에서 미국산 칩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는 것이 안보에 더 유리하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의원들을 설득해왔다. 이에 대해 대중 강경파 의원들은 "상업적 이해관계가 안보 논리를 압도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있다. 백악관 AI 총괄 데이비드 색스는 이 법안이 미국의 AI 전략적 포지셔닝 능력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고, 트럼프 행정부는 실제로 20261월 이전 행정부가 금지했던 중국향 H200 칩 수출을 재허용하기도 했다.

중국 반응, '기술 분리 가속' vs '독자 생태계 구축'


지난 25일부터 27일 상하이 신국제박람중심에서 열린 '세미콘 차이나 2026'에서 중국 반도체 업계의 위기감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150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한 이 행사는 미국의 수출 통제가 강화되는 상황에서 중국 독자 기술 경쟁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됐다. SEMI 차이나 이사장 릴리 펑은 "22~40나노 성숙 공정 분야에서 중국의 글로벌 생산 비중이 202637%에서 202842%로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내부에서는 위치 검증 기능이 내장된 미국산 칩을 정부 클라우드·금융 데이터센터·전략 AI 연구 시설에 배치하는 행위 자체가 국가 보안에 위협이 된다는 인식 아래, 미국산 AI 칩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충칭 신리안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관계자는 이 행사에서 "중국이 소비자용 칩에서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AI 데이터센터용 반도체에서는 여전히 5~10년 격차가 있다""제조 현장의 AI 도입을 가속해 이 간극을 좁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리바바의 '통의천문', 바이트댄스의 '두바오' 등 자체 AI 모델과 독자적 컴퓨팅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한 폐쇄형 생태계 구축이 중국의 중장기 전략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

기술 통제의 기술적 한계, 완벽하지 않은 감시


이 법안이 실제로 의도한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론도 병존한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기술적 한계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위치 스푸핑(location spoofing) 가능성이다. 신호 지연을 조작해 칩의 실제 위치를 속이는 기술은 이미 알려져 있다. 둘째, 완전히 폐쇄된 오프라인 클러스터 환경에서는 위치 검증 신호 자체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사이버보안 전문가들은 보안 메커니즘 자체가 해킹 취약점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것과 동일한 칩에 이 기능이 탑재되면, 이를 악용한 해킹 시도가 미국 내 핵심 인프라에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안 지지 진영은 "완벽한 통제가 아니라 '충분히 어렵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반박하지만, 이 같은 기술적 불확실성은 법안의 최종 입법 과정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파장 우려, 삼성·SK, '기술 블록화' 파고 넘어야


칩 보안법이 최종 입법될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우선 이 법은 수출 규제 대상 첨단 칩에 집중돼 있어 당장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사업에 직접 적용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AI 데이터센터용 HBM(고대역폭메모리) 사업에서 두 회사가 엔비디아 등 미국 AI 칩 제조사들과 맺고 있는 긴밀한 공급망 관계를 감안하면 파급 영향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 진영과 중국 진영으로 AI 반도체 공급망이 이분화되는 '컴퓨팅 블록화' 시나리오다. 미국의 동맹국이지만 중국이라는 최대 시장을 결코 포기하기 어려운 한국으로서는, 두 진영의 규칙이 충돌할 경우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일 수 있다. 국내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법안 내용 자체보다 미·중 기술 분리가 가속되는 방향성이 더 걱정"이라며 "공급망 전략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대응이 요구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5년 수출 통제 이행 체계를 강화했으나, 미국의 규제가 성능 기준에서 '위치·용도 검증' 방식으로 전환되는 흐름에 맞춰 우리 기업이 규정 준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한미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를 통한 사전 규정 협의, 공급망 리스크 실태조사, 그리고 대중·대미 수출 이원화 전략에 대한 세제·금융 지원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안보 주권 자산'이 된 반도체, 지금 무엇을 봐야 하나


반도체는 더 이상 성능과 가격으로만 거래되는 상품이 아니다. 어디에서 쓰이는지가 법적으로 추적·기록되고, 제조국의 정책에 따라 수출 자체가 봉쇄될 수 있는 '주권이 부여된 자산'으로 변모하고 있다. 칩 보안법이 최종 입법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이 흐름은 이미 멈추기 어렵다.

투자자들이 당장 주목해야 할 체크포인트는 3가지다. 첫째, 상원 심의 동향이다. 코튼·워런 공동 발의의 S.1705가 상원 은행·외교위원회 심의를 어떻게 통과하는지가 법안의 운명을 가른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의 실무 입장이다. 행정부 내 AI 총괄과 의회 강경파의 이견이 어떻게 봉합될지가 입법 속도를 결정한다. 셋째, 엔비디아의 소프트웨어 위치 검증 기술 개발 진전 상황이다. 엔비디아가 자체 블랙웰 세대 GPU에서 소프트웨어 기반 위치 추적 솔루션을 상용화하면, 법안의 '하드웨어 강제' 논쟁의 무게가 달라진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통제권이다. AI 시대의 패권은 더 빠른 칩이 아니라, 어디서 작동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힘에서 갈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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